소나무 숲을 거닐며
김 익 택
소나무야 넌 지금 기분이 어때
너의 넓은 그늘에 앉아서
바닷가 바람소리를 듣고 파도 소리를 듣고
소라소리를 듣고 낮잠을 자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끊은 기분이
소나무야 너는 견딜 만 하니
머리엔 태양이 태울 것 같이 뜨겁고
뿌리엔 습기까지 태양이 빨아들여 검은 흙이 하얗게
푸석푸석하게 말라 땅의 생명들이 죽어가는데
소나무야 너는 무섭지 않니
비가 내려도 선성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공해먼지 바람이 불고
겨울은 따듯해 지고
태풍과 더위는 극과 극으로 치달아
죽음을 요구하는
삶의 의심
김 익 택
내가 좋아하는 생활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외식하는 것처럼
맛나게 잘 먹었지만 그만한 값어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
기분이 들뜬 나머지 과유불급하지 않았는지
먹으면서 양심을 살피고 현실을 살피게 됩니다
열정이 매번 만족을 주지 않았지요
사랑이 매번 호응을 받지 않았지요
내가 만족해도 가족이 불편하면 불행의 시작이 되고
내가 즐거워도 친구들이 불편하면 왕따를 자초하는 행위
조율하면서 나의 목적 달성하기에는 시련이 따릅니다
열정의 속성은 눈치보고 할 수 없고
사랑의 진실은 실리를 따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기회는 꾸준한 노력을 좋아하고 적신호는 찰나를 좋아하지요
행운은 무소식을 좋아합니다
이 희망 뜬구름 잡기는
해방꾼이 있고 방관자가 있고 조력자가 있지요
오늘도 난 아슬아슬한 삶과 넘나들며 희망을 쫓고 있습니다
노력을 믿으면 희망을 믿으며 나 자신을 믿으며
여름 선물
김 익 택
머리를 태워버릴 듯한 더위도
대지를 쓸어버릴 듯한 폭우도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태풍도
여름이 우리에게 특별한 사랑이다
고생 모르고 시련 모르면
헤쳐갈 수 없다고 준비하면 살라고
눈물도 아픔도
서로 돕고 서로 나누고 살라고
도우면서 정을 알고 나누면서 사랑을 알라는
여름의 삶들에게 가리켜주는 사랑이다
산통 없이 태어나는 아이 없듯이
아픔 없는 사랑 없다고
여름 없이 가을 기쁨 없다고
여름은 아픔 뒤 결실의 선물이다
여름은 쓸데없는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마저 없다면 나태 해 지기 쉽다고
하나님께서 항상 준비하고 극복하며 살라고
특별히 여름 선물 준 것이리라
맥문동 꽃 길 초대
김 익 택
아이야 지난밤 열대야는
어머니 품이었더냐
모든 삶들이 어깨가 늘어뜨리고 있는데
너만 눈빛이 초롱초롱하구나
가느다란 다리부터 머리까지
조롱조롱 매달린 보라 빛 꽃송이가
지난밤 꿈에서 보았던 하늘나라 꽃길같이
더위에 지친 반겨주고 있구나
그대 피는 6.7.8월은
김 익 택
늙은 소나무 발 아래
푸른 잎새에서 솟은 꽃송이가
보라색을 뿌려 놓은 듯
아장아장 걸어 가는 아이
깔깔대며 웃는 아이
소리가 들리는 듯
송림공원 앞길에는
키 작은 맥문동이 눈길을 빼앗는다
그대 피는 6.7.8월은
태풍 폭우 가뭄 높은 온도
생명 기로의 계절에
나 보란 듯 튼튼히 살아남아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양심의 그늘
김 익 택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
하늘과 땅
그 밖을 벗어나지 못 하는가
바람 따라 낙엽이 굴러가듯
냇물 따라 낙엽이 흘러가듯
구르다가 흐르다가 멈추면
죽음이 다른 삶이 되어 태어나면
과거는 있어도 모르는 것
나 역시
태어나기 이전 삶과 죽음 뒤 삶은
별반 다를지 않을까
생명이 있어 옳고 그름을 자각할 수 있는 나
내 발 밑에 구르다 낙엽과 같을 까
삶을 지배하고 누렸으니 누린 만큼 책임이 있을 터
그 의무 궁금함보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람이
양심을 묻는다
보라빛 맥문동
김 익 택
더운데 고생하신다고
보라빛 아이 손들이
수로왕릉에게 고사리 손을 흔들었다
수로왕릉의 고맙다는 웃음 소리가
소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바람이 일제히
보라빛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라빛 아이들이
고맙다고
초록 옷을 입은 수로왕릉에게
모두 고개를 숙였다
보라빛 향기가
소로왕릉 뜰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