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익은 벼를 바라보면
김 익 택
넓은 들 가득히 벼가 노랗게 익어
고개 숙이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이른 봄 씨앗을 뿌려 모내기를 하고 나면
가뭄이 오면 오는 대로 태풍이 오면 오는 대로
힘든 노동을 고사하고
갖은 고생 갖은 걱정
어찌 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다행이
그 정성 그 사랑을
하늘도 알고 벼도 알아
노랗게 익어 여물때면
지난날 고생은 씻은 듯 잊어버리고
당신의 노력보다 먼저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나님께 조상님에게 감사했지요
나락 한 톨 밤알 하나
김 익 택
반세기 전 우리 할배 할매
마당에 떨어진 나락 한 톨
밥 그릇에 붙은 밥알 하나
아껴 먹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일제36년 독립하고
6.25전쟁 3년으로 인해
삶은 죽음 다름없었지요
그때 그 시절엔
굶어 죽는 사람 많았고
전염병에 죽는 사람 많았지요
디지털 시대 요즘 아이들에겐
거짓말 같고 전설 같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버릴 건 버려야 하지만
알아야 할건 알아야 합니다
전쟁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가난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자문자답
김 익 택
삶보다 죽음이 더 짧은 나
날마다 양심을 저울질한다
아무리 뒤돌아봐도
봉사 협동 희생을 한 일 생각나는 것이 없다
쉽게 도울 수 있는 아프리카 난민을 위한 전화 한통
죽음을 앞 둔 그들의 치료비
월 이삼만원 제공 한적 없다
그렇게 살아도 겨우 입에 풀칠 면할 정도일 뿐
고급 주택 승용차 고급 쥬얼리 한번 가진 적 없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논픽션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감동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행동 지금도 마찬가지
그때 뿐이다
알면서 하지 않는 삶의 기회 삶의 회복을
이유 같지 않고 말 같지 않는
귀찮다는 핑계 여유 없다는 핑계로 살았다
나 보다 먼저 실행을 그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하면서
내가 나에게 자신 있게
진실을 말 할 수 있을까 잘 살았다 말 할 수 있을까
열심히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내가 자식에게 떳떳하게
봉사를 말 할 수 있을까 희생을 말 할 수 있을까
도움을 말 할 수 있을까 베품을 말 할 수 있을까
삶을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을 말 할 수 있을까
죄 지은 삶 아니지만 부끄럽고 미안하다
가난은 가난을 알고 아픔은 아픔을 아는 삶
누구보다 잘 아는 산 경험자 이면서
9월을 맞이하며
김 익 택
살인적인 더위 8월이 위대한 것인가
시원한 추수의 계절
9월이 위대한 것인가를 묻는다면
나는 고생했다 축하한다 라고 말하겠네
고생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나
희생 없는 결실이 어디 있겠나
사랑 없는 미학이 어디 있겠나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공짜는 없다
아이들도 다 아는
그 얘기를 부정하면
8월은 더 지독하고 9월은 더 빈약하다
9월의 바람 9월의 비 9월의 태양은
8월의 장마 8월의 가뭄 8월의 태풍을
눈물 이겨내고 아픔을 이겨낸 선물이다
이 세상의 그 어느 작은 미물도
이를 꽉 물고
죽기 살기로 고군분투한 삶이다
절로 사는 삶은 하나도 없다
9월의 바람속에는
김 익 택
9월의 바람속에는 알게 모르게
고개를 숙여 너를 이롭게 하는
희생이 있고
9월의 바람속에는 조용히 결실을
재촉하는 씨알의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
9월의 나뭇잎과 대화
김 익 택
여름 막바지 처음 창문을 열었다
내리는 비에 바람이 식고 대지가 식어
어제같이 열대야였던 더운 바람이 시원하다
검은 나무 녹색 잎들이
내리는 비에 웃고 부는 바람에 웃는다
그래 잘 참았다 고맙다
인사를 보냈더니 그동안 많은 땀 흘린
볼과 온 몸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내 그리운 날의 초상
김 익 택
내 그리운 날에 초상은
세월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않고
밤이 와도 잠들지 않는다
이렇듯
유독
너의 모습은
현실과 과거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도 생불이 된 채
가슴 깊은 곳에서
미의 극치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