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이 전하는 삶의 교훈
김 익 택
태양에 호응하는 바다
오늘은 삶의 평등을 강의하고 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생명들이
토사광란을 일으켜도
단한번도 수평을 유지하지 않는 적이 없다
생명이 소중하면 죽음도 소중하다고
삶이 중요하면 경쟁도 중요하다고
피할 수 없는 전쟁은 더욱 필요하다고
내가 살고 너의 영원한 소멸은
나의 소멸이라고
수평이 하는 말 평등을
보석처럼 반짝이는 파도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강의를 하고 있다
건강과 추억 사이
김 익 택
습도가 잔뜩 불쾌지수를 끓어 올리는 여름
장마가 분노조절을 하는 가
비는 오락가락
칙칙한 습도는 에어컨 아니면
조울증으로 몰아넣는다
오래전 자연의 저항을 잃어버린 사람
고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문 밖 외출은 금지
상쾌한 음료수 보다
강력한 비트의 팝 듣지 않으면 기력 소진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여름이 던져 준 삶의 의문이
한두번이 아닌데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젊은 시절은
어쩔 수 없이 견뎌 왔으나
지금은 건강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싸움이다
건강이 부실해질수록 와해되는 정신이
자꾸 먼산을 보고 추억에 젖는다
잘 있지 건강 조심해
짧은 통화 뒤 긴 회상을 남기며
생명의 알을 구르는 파도
김 익 택
날마다 장송곡을 부르는 파도는
단 한번도 슬픈 적이 없다
모래가 구르는 것도
자갈이 구르는 것도
삶이 아프다고 들려도
알고 보면 생명을 생산하는 소리
가만있으면 죽음이라고
생명을 알을 구르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사는
바다는
김 익 택
지금 이 순간 지나고 나면 과거
현재는 있어도 없다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는
현재를 지우고 과거를 쏟아낸다
세상을 포용하고 남을
너그러운 시원한 웃음 소리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근면성
태초부터 지금까지
삶의 가르침의 근원임을
바다는 빛을 걸려 바람의 길을
생명의 다양성을 생산하고 있다
다대포 바닷가에서
김 익 택
바다는 창 없는 마음이다
담아둘수록 쌓이는 추억을
부서져서 돌아가는 파도같이
쥐어서 빠져나가는 것이
바람만이 아님을
파도는 가져가는 것 보다
내려놓고 가는 더 많다
넘쳐서 힘든 것은 권리와 의무
모두 무거운 책임이라고
바다의 웃음소리
김 익 택
여름을 담은 바다가 삶들을 불러들였다
소라의 나팔 소리에
대나무가 웃고 소나무가 웃는다
알몸을 받아드리는 바다
어머니 양수같이 출렁거린다
파도가 치아를 드러내며
일어나고 쓰러질 때마다
파도 등에서 넘어지는
즐거운 비명소리에
발가벗은 웃음소리가 시원하다
파도는 아이의 재롱을 보고 있는듯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그것이 사랑인 줄 처음엔 몰랐지
김 익 택
그것이 사랑인 줄 처음엔 몰랐지
있어도 모르고 없어도 모르는
항상 내 곁에 있는 바람
정신줄을 놓을 만큼 좋은 것도 없고
눈에 거슬릴 만큼 싫은 것도 없었지
이해와 사랑이 있는 것조차 몰랐지
필요에 의해서 의무가 있어서
만나는 것 아니었지
많은 친구들 중에 한 사람
다른 친구보다 만남이 많았다는 것 밖에
그런데
그가 결혼한다고 말 했어
그래 라고 말했지만
정신이 없었지
소유권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지
허락 받아야 할 이유 없고 의논해야 할 일 아닌데도
배신감이 들었지
묘한 기분이었지
가지마 내가 그 말도 할 수 없는데도
이건 아니라는 강한 부정이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지
똑바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왜 말이 없어
그녀의 물음에 벙어리가 되었어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운 말이라서
얼버무렸지만 어색했다
짧은 노래 긴 감동
김 익 택
하루 종일 들어도 더 듣고 싶은 노래가 있죠
사랑한다는 말도 존경한다는 말도
되풀이하면 조롱으로 들리고 식상하지만
나 혼자 듣기가 아까운 노래가 있죠
감동을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인가요
내가 젖은 감동을 제지해서 될 일인가요
누가 시키거나 강조해서 되는 일이라면
감동 아니고 사랑 아니죠
사랑에 인색하고 칭찬에 인색한 나도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리고 고함을 질렸죠
듣고 만 있어도 가슴에 쌓여 있는 카타르시스
눈물로 녹이고 고함으로 빠져나가
목이 춤을 추고 박수가 터져 나왔죠
내가 할 수 있는 고마움은
그의 노래에 나도 모르게 즐기는 것뿐
음악은 짧았고 여운은 길었죠
내가 모르는 죄의 공포
김 익 택
지난밤은 끝도 없는 터널속에서
한줄기 빛을 향해 숨차게 달렸죠
소리치면 들려오는 건
내 목소리보다 더 큰
겁에 질린 내 목소리뿐
보이는 건 아주 멀리 한줄기 빛
이유없이 목적도 없이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터널속에 갇혀 있었죠
누군가 뒤 쫓아오지 않았고
멈추라는 말없었지만
겁에 질린 나는 무조건 달렸죠
아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빨리 갈 수 없었습니다
엎친데 덮진 격
다리는 꼬여서 넘어지기 일쑤였죠
마음 같지 않아 미칠 것 같았고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았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함과 몸부림
덧에 걸린 사슴 같았죠
보이는 것은 저 멀리 밝은 빛과
동굴을 울리는 내 목소리뿐
원인도 모르는 채
왜 내가 여기 있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죠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깨닫고 있을뿐
다대포 해수욕장
김 익 택
소문이 사람을 불러 모우고
사람이 사람을 불러 모았다
호텔이 앞장 썼고
식당이 줄을 섰다
해마다 바다는 변치 않았다
밀물과 썰물에 충실했고
밀물과 썰물에 충실했다
만원의 호텔은 부와 명예가 출렁거렸고
백사장엔 다시없는
비키니 패션전람회처럼
젊음이 활보했다
상전벽해 달맞이 언덕
김 익 택
노을을 담기 위해 미포를 달렸다
불과 20여년전
기차소리에 문을 닫고 기차소리에 문을 열던
가파른 그 언덕의 마을은
길은 가팔라서 위험했고
집들은 바위에 붙은 따닥따닥 붙어있는 조개 같았죠
집집마다 바지랑대에 고기 늘고 거물을 늘려 있었죠
여기가 이탈리아 친퀘테레인가 그리스 산토리니인가
사진으로 봤지만 그곳이 이만큼 아름다울까
건너편 해운대와 광안리 뷰가 환상적이다
겨우 찾은 바닷가 꽤 넓은 주차창
안내원이 개인 주차창이라 한다
출출한 배 채우고 촬영할까 싶어 저녁 메뉴를 물었더니
최하가 십만원이라 한다
민망한 뒤통수 어둠에 숨기고 차를 돌려 세웠다
노을풍경은 임자가 없으나 공짜가 아니었다
기차소리 파도소리 짠바람 고기 비린내가
시대적 착각과 오류를 질타하듯
가난한 카메라 맨 정신을 바닷속으로 빠뜨려버렸다
파도소리가 등 떼밀고 뇌리에 남은 풍경마저
멀리 광안리 빌딩속으로 잠적해버렸다
변심은 무죄임을 입증했으나
아름다움이 노을이 결코 편리한 대상이 아님을
게으름을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