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선비 탐방로 소감

김익택

 

 

산 따라 물 따라 걷다 보면 들어선 정자 농월정은

하늘에 뜬 달이 바위 홈에 고인물에 춤을 추고

경모정 앞 바위 휘돌아가는 물에 아이처럼 웃는다

 

인연과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과 바람 빛과 나무들도 있다는 것

풍경이 알려주고 있다

고맙다 좋다는 말

발걸음 수고에 감사하고 눈과 마음이 기쁘다

 

끝없이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리듬 박자 무시해도

신선하고 맑아 내 정신이 즐겁다

 

오랜만에 외출 헛되지 않았다는 반가움이

가쁜 호흡을 재촉하는 사이

저 멀리 보이는 소나무에 가려진 동호정 풍경이

빨리 와서 쉬라고 손짓을 한다

 

세상에 다시없는 넓적한 거북등같은 차일암

그 앞 징금 돌다리 사이로 흘러가는 물결이 가파르고

건넛산 아래 옥려담은 초록산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이다

 

동호정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늘어진 소나무 사이 펼쳐지는 차일암과 흐르는 물을 벗 삼아

거문고를 뜯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던 옛 풍경의

멋과 흥이 상상으로 부족하다

 

바위에 부딪혀 일어나는 하얀 물거품은

숙녀 조곤조곤 나누는  대화같이 듣고 들어도 궁금하고

우거진 나무숲은 어머니 품 같아 평온하고

단단한 바위는 아버지 믿음같이 든든하다

 

울퉁불퉁 치솟은 바위섬에 오롯이 앉은 거연정은

이 아름다운 풍경 여기 아니면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계곡의 물과 바위와 나무와 집이 어우러진 정자의 미학은

으뜸 중의 으뜸이다

신록 5월 중순을 맞이하며

김익택

 

 

보드라운 산나물이 빳빳한 줄기가 되는 오월

진달래도 연달래도 푸른 잎

 

소녀가 숙녀 되듯 5월의 작약꽃이 피고 지면

뻐꾸기가 밤도 낮도 없이 울어대는 6월은

도둑같이 빨리 가는 한해의 절반 시작 기점

 

홀아비 눈물 같은 장마로 시작하고 망나니 칼춤 같은

태풍이 끝날 때까지 청춘이 겪어야 할 집합 훈련장

 

산하에 삶들이 흘린 눈물을 바람이 닦고 비가 씻는

사랑과 이별이 반복하는 동안

성숙하는 가을의 진심은 5월은 몰라도 은혜는 안다

사랑의 단계를 허물어야 만나는 새로운 사랑

김익택

 

 

긍정과 물음 그사이

내 눈에 콩깍지는 마음을 알아

물음을 이해하고

긍정으로 해석하는

무한대 신뢰는

의심은 죄악이었지요

 

꿈과 영혼 사이에도

사랑은 구해야 할

그 첫째 대상

함께 해야 할 삶의 목적

무조건 사랑은

착각이라는 걸 알게 하고

믿음을 허물게 할 때까지

시간은 의외로 짧았지요

 

그때부터 삶과 사랑 사이

실망은 믿음을 사랑은 의심을

그 의심 허무는 다툼을

타협하고 화합을 거처야

새로운 참사랑이 시작되는 것이었지요

봄이 아프게 할 때마다

김익택

 

 

기다렸던 봄이 몸살을 앓게 했던 청춘은

 

세월이 흘러 사랑이 변해도

내게 봄은

해를 더할수록 이자 붙는 빚같이

온몸이 나른하고

현기증 일어나는 봄이 더 많다

 

병명도 모르고 이유도 모른다

 

그때마다 원망 아닌 소망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앓았으면

봄날은 앓지 말았으면

그런데도 겨울이 오기 전에

내년 봄을 기다리는 건 무슨 마음일까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 그날도 봄일까

그런 생각 들 때면

오는 봄이 반갑기도 한데 서럽다

사월의 연초록 산하

김익택

연초록 나뭇잎이 온 산을 덮은 4월의 산하는

고운 여인이 두른 비단 치마 같기도 하고

신혼 방 이불 같기도 하다

 

그 비단 속에서 금방

날개옷을 입은 천사가 살랑살랑 걸어 나오고

하늘하늘 도포를 펄럭이며 신선이 나오고

알록달록한 새끼 사슴 걸어 나오고

삐악삐악 소리를 내며

포동포동한 병아리가 걸어 나오고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흙을 털며 걸어 나올 것 같다

 

숨은 비밀을 품었지만 경계심이 없는 이웃집

천진난만한 아이 모습

누가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하고

누가 신선함을 말하지 않아도 풋풋해

보고 있는 가슴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게 한다

 

건망증 환자같이 언제 내가 고민이 있었던가

여려서 부드러운 연초록 잎이

내 정신을 말끔히 씻어주고 있다

봄 그리고 세월

김익택

 

 

어제는 봄바람이 불었고

오늘은 갈바람이 불었어

내일은 모르겠어

축복이었는지 기억하지 않고

그리움인지 추억하지 않고

아픔이 올지

예측하지 않았다

행복도 세월이 가고 나니까

잊어버리고

악몽도 세월이 가고 나니까

잊어버리니까

그 물음은 세월에게 맡겨 두고

열심히 사는 것밖에

사랑하는 사람도 원수가 되고

원수도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그것이 인생이니까

초록의 숲속의 삶들

김익택

 

 

저 산의 연초록이 초록으로 짙어지는

그 사이

스스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나무들은

바람으로 즐거움을 소통하고

비로 고충을 얘기하는가

봄에 비추는 태양 봄에 내리는 비는

생명을 품고 삶을 품은 영혼

평범과 보통 상식이

어느 삶을 구별하지 않듯

봄에 내리는 비와 빛은

어느 삶에게 내리는 비가 눈물이 되면

내리비추는 빛이 기쁨이 되고

빛이 눈물을 요구하면 비가 기쁨을

아낌없이 주고 아낌없이 가둬가는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는다

제각각 갖고 있는

DNA를 활용하여 전통과 관습

지식과 지혜는 삶의 몫이다

초록 잎의 선물

김익택

 

 

내가 너에게 평생 준 것 없고

관심 가진 것 없어도

 

소리소문없이 웃게 하는

보드라운 저 초록빛이

아이 미소를 보는 듯

내 마음에 고마움을 싹트게 한다

 

해마다 봄이라는 계절이

살기위해 몸부림일지라도

나에게 없는 기쁨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고 있다

 

귀 없고 눈 없는 너에게 내가 한 것은

고작 고맙다는 말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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