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꽃이 되기까지
김익택
기다림 밖에 모르고
사랑밖에 몰랐던
그 옛날 숙녀
참고 참았던 눈물로 핀 걸까요
애간장이 까맣게 탄
가슴으로 핀 걸까요
붉게 핀 꽃송이마다
싱그러움 속에 허물지는 아픔이 느껴집니다
그대 사랑이 이야기가 꽃이 되고
그대 죽음이 향기가 되기까지
사랑도 그리움도 눈물
한과 원의 징표 다름 아닙니다
잎 속에 숨은 포도송이 같이
산모 출산 후 피 뭉치같이
모여서 하나된 붉은 꽃송이는
더위밖에 없고 푸름밖에 없는 칠월
사람 발길 끊긴
어느 고택 담장 밖에서
어느 이름모를 구릉지 묘지 앞에서
하늘을 붉게 수놓고 있습니다
백일홍의 영혼은
김 익 택
알 듯 모를 듯
몽글몽글 피는 너는
지난 밤 꿈같이
이름없이 죽은
이 땅의 영혼인가
너가 피는
백일은
가뭄과 폭우 뿐인데
너만 오직
악전고투로 피고 있다
떨어진 꽃과 시인
김 익 택
땅바닥에 빨갛게 물들인
목백일홍 꽃잎들을 보고
길 가든 시인
발걸음 길 멈추고
가만히 들 여다 보며
바보처럼 중얼거린다
다시 태어나서
다시 사랑하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니
섭섭해 하지마라
바람의 질문
김 익 택
저 나무 잎은
지난 봄
꽃 소식을 알까
바람이 생뚱맞게
오래전 떠나버린
사랑이 진실을 묻는다
님 기다리는 백일홍
김 익 택
입은 옷을 벗어도 더운 삼복더위에
그대는 누굴 맞으려고
대낮부터 꽃단장하고 기다리는 가
그대 속마음을
보름달이 알까 새벽별이 알까
그대 피는 석 달 열흘은
무참히 삶을 짓밟는
더위와 장마 태풍뿐인데
그대는 해마다 꽃단장하고
오매불망 누굴 기다리는 지
그가 누군인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백일홍의 너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김 익 택
만인들이 짜증내는 여름 한가운데
너만 활짝 피어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발길 붙잡는다
네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
어느 청순한 소녀 얼굴같이
탐스럽게 영글은 꿈이 보이고
네 눈동자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수줍은 숙녀 눈망울같이
해맑아서 빠져드는 미학이 보인다
백일홍의 아름다운 권리
김 익 택
남들이 뜨거워 외면하는
그는 의심없이
태양의 붉은 정열만 마음껏 빨아들였다
초복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열매도 없는 것이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다 말인가
중복이 웃으며 기다렸다
둘 사이에 비가 끼어들어 소나기를 퍼부었다
그래도 싸움의 열기 식지 않자
장마를 끌어들였다
백일홍 초 죽음이 되었지만
맑은 날을 기다렸다
연례행사의 단련된 몸이었다
거절할 수 있는 생활이었고 운명이었다
죽을 때까지 응원해 주는
땅이 있었고 뿌리가 있었다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은
당당하게 살아야 하는
동등한 의무이며 권리임을 주장했다
태양이 웃었고 땅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