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양지 둘레 길
김 익 택
길지도 짧지도 않는 위양지 둘레길은
노송과 늙버들이 친구처럼 어울려 살고
오리와 철새들이 내집처럼 산다
거부하는 법 모르는 나무들은
하나같이 맑은 공기 맑은 물은
정신을 씻어주고 가슴을 씻어준다
한 바퀴 두 바퀴 걷다 보면
나무도 친구 물 오리도 친구
무소식이 희소식이듯 무관심이 평화롭다
소나무의 암묵수행
김 익 택
평생 허물없는 친구 있다면
욕해도 말이 없고
때려도 말이 없는 소나무들
찾는 사람 마다 않고
도열하고 사열하여 반긴다
태풍이 불어 가지가 꺾어져도
불평불만 없고
포크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둑이 무너지고
주위가 변하고 달라질 때에도
다문 입은 여전하다
살아서 천년은
용기와 푸른 꿈을
보이지 않는 공기
그늘과 시원한바람
너의 가슴에
새가 집 지어 살고 온갖 곤충이 살고
이끼와 송이버섯이 살고
죽어서는 집 기둥과 대들보가 되고
명약 사리버섯 상황버섯 먹이가 되고
마침내 불 쏘시게 되는
밑 거름이 되는 삶
세상 어느 삶이 너만큼 거룩할까
위양지 야행 숲길
김 익 택
노루가 지나가고 토기가 지나가는
위양지 숲길은
나무와 나무 숲과 숲이 밤이 되어도
일렬로 서서 반긴다
넘어지지 말라고 걸음마다
불 밝히는 청사초롱은
남자가 걸어가면 신랑
여자가 걸어가면 신부
꽃 길이 저만큼 아름다울까
보라 황금 빨강
빛이 닿는 잎마다 바람이 웃고
바람이 웃으니 나뭇잎이 웃는다
내 몸뚱아리의 진실
김 익 택
무슨 생각을 해도 넘쳐 흐르는
밥 한 숟가락 눈물
한잔 술의 위로와 커피 한잔의 고독
그 온도의 차이를 아시나요
슬픔은 겪어 본 사람만 알죠
늘 내 곁에 있어도 내가 잊고 사는 것은
마음의 감옥에 꼭꼭 숨겨두고
좋아하고 사랑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은
길 없는 길을 헤매는 별이 되었네요
외로울 때와 아플 때 함께 있는 그대
감출 수 없는 눈물을
감추어도 흐르는 눈물
슬퍼도 외로워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은
끝까지 지키고 있는 오직 그대뿐입니다
완재정의 봄 밤 풍경
김 익 택
대지의 고단한 불빛이 잠든 밤
깊고 푸른 하늘에
잔별만 찬란한데
어둠을 뚫는 소쩍새 우는 소리
깨알같이 알뜰살뜰하다
소리없이 피는 물안개는
완재정을 품고
거울같이 맑은 위양지엔
여신이 잠든 가슴위로
잔 별이 놀고 있다
비단 이불 같은 하얀 이팝꽃은
완재정 방문을 밝히는
으스름한 붉은 빛은
꽃 속에 꽃술같이 아름답다
공평하다는 것은
김 익 택
그랬나요 그랬을 지도 모르죠
살다 보면 오해도 있고
누명도 있고 억울함도 있죠
상처는 받는 나는 명확한데 주는 나는 모르죠
감동도 그렇죠
나만 받는 것 아니라 나도 줄 수 있죠
마음이 하는 일은 대게 감정에 치우치는 일
제 맘대로 생각하고 제 맘대로 상상하죠
알고 나면 부끄러운 후회를 하죠
이기심의 발로는 자존심이니까요
배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행위이지요
싫은 사람에게도 절로 일어나는 행위이기도 하고요
공평이란 말 어울리지 않지만 극한 혐오는 아니지요
괴성은 울분을 삭이지 못한
마음의 식힘이기도 하지만
감동의 표출이기도 하지요
사람은 완전한 결정체가 아니라 다듬어가는 과정이지요
과장도 있고 숨김도 있지요
잘못했다고 너무 자학할 일 아니고
잘했다고 너무 자랑할 일 아니죠
공평하다 라는 것은
태어나면 죽듯이
누구나 모든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죠
수긍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그 차이만 있을 뿐
봄 완재정 깊은 밤
김 익 택
주인 없는 빈집 오백년
깊은 밤에도 꺼지지 않는
완재정 저 불빛은
그대 위민 위한 혼불일까
아니면
죽어도 못다 푼 학문
후손의 등신불일까
꿈인 듯 생시인 듯
귀 전을 훑고 날아가는
이름모를 새 울음소리
밤 깊어도 잠 못 이루었던
선비
글을 읽고 시를 읊던 소리인가
지금 저 풍경
기적과 과학사이를
두고 한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