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그 높은 문화는

김 익 택

 

 

넓은 대지도 높은 산도 없다

큰 강물이 흘러도

빼어난 경치도 없고

특별한 부자도 없다

어디로 보나

야트막한 산과 마을

겨우 자급자족했을 만한 고을같다

풍부한 건

물과 인심

마을마다 강이 휘돌아 흐른다

그런데

어귀마다 학문이 숨을 쉰다

성씨의 집성촌같이

조선 오백년 정신적 지주가

거의 다 모여 있고

고을마다 정신문화가 숨을 쉰다

 

 

 

 

안동 향교 앞에서

김 익 택

 

 

찾아오는 사람 없어

텅 빈 마당

학문의 경계가 없고

배움의 차별이 없는 시대

 

높은 담장 꼭 닫혀 있는

우람한 대문

디지털시대와 구시대와

단절된

경계선을 보는 것 같다

 

한때는 학문의 총아가

기념관 보다 못한

찾는 사람 없는

명칭뿐인 교육기관

 

까치발로

담 너머 풍경 담는 나도

도둑인양

언짢은 기분 감출 수가 없다

 

 

 

안동 생각 하나만으로

김 익 택

 

 

 

자꾸 부르는 곳이 있다

 

지식 없고 정보 없지만

들어서 아는

정 깊은 곳 안동은 안 동네같이

편안한 이미지다

 

공부를 해도 그나마 수박 겉핥기인지식

물 흐르는 마을마다

고래등 지붕이 숨을 쉬는 정신문화가

뒤통수를 당긴다

 

먼지 묻고 때묻은 빽빽한 한자

보고도 모르는

아둔한 내정신의 수준으로

무엇 하나 깨달을 수 없는데도

안동으로 가고 싶고

안동 그곳을 느끼고 싶다

 

그런데도 미련이 남는 것은

무슨 인연일까

인연 없고 사연 없는데도

보면 느끼는 고마움이 안동으로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내일도

 

 

 

닫힌 향교 대문

김 익 택

 

 

사람 있어 발전하는 디지털기술은

인문학이 인간의 그 기본이 됨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조선 오백년 정신적 지주였던 유교

뒷방 할아버지가 된 지 오래

왜 라는 그 의문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좋은 것 배우고 나쁜 것 고치고 가꾸었다면

사람들 찾지 않는

텅 빈 향교가 되었을까

 

유적 유물 인본 지식 교양

풍부한 공간을

특별(特別)한 날 문을 열어 기념하는 것 외

 

마음 아픈 사람

외로운 사람 품어주고 위로해 주는

사찰처럼 교회처럼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자유로운 열린 광장이 되었으면

 

찾는 사람마저 발길 돌리게 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안동 가는 고속도로에서

김 익 택

 

 

차를 타고 여름속으로 달렸죠

장마는 더위속으로 빠져들고

태양이 잠깐 얼굴을 내 밀었죠

차 밖엔 찜통더위

차안은 쾌적한 시원함

내 귀를 휘감는 감미로운 음악

차 밖엔 정적

산이 지나가고 들판이 지나가고

아파트가 지나갔죠

쉬어 가라고 거리를 알리는 휴게소

고속도로는 차들은 바쁘게 달리고 있었죠

돌보지 않아 담은 허물어져 가고

잡풀이 마당을 잠식하는 고색창연한 기와집

내 눈에 아롱거렸죠

시간의 때가 묻고 삶의 때가 묻은 현판

반겨주어도 모르는 언어 빽빽한 한자들

지금 내 귀를 후벼 파는 팝송처럼

느낌으로 알고 느낌으로 깨닫는

그곳 안동을 향하여

 

 

 

안동 향교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의 향교. [개설] 안동향교는 고려시대에 건립하여 조선시대까지의 유생들의 교육에 힘써 온 국립 중등 교육 기관이다. 건립 이후 많은 유학자들을 배양하였으며, 조선시대까지 중등 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예안향교(禮安鄕校)와 더불어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유학 교육과 보급에 힘써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의 위대한 유학자를 배양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내에서 길안 방면으로 국도 34호선을 타고 가다 보면 선어대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안동대학교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안동향교는 안동대학교 서편에 위치한다. [변천] 안동향교의 건립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시대인 1567년(명종 2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명륜동에 중건되었다. 그 규모가 성균관(成均館)과 동일하여 영남 지방에서 가장 컸다. 일제강점기에 탄압을 받으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6·25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 1983년 향교복설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현재의 위치인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터를 잡고 안동의 읍지(邑誌)인 『영가지(永嘉誌)』를 참고로 하여 1986년 다시 중건되었다. [형태] 안동향교는 1곽 6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6동은 정전(正殿)인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청아루(菁莪樓), 부엌을 뜻하는 주사(廚舍)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하여 사성십철(四聖十哲)과 공문72현(孔門七十二賢), 송조6현(宋朝六賢) 등을 봉안하였고, 대성전의 좌우에 있는 회랑인 동무와 서무에 동국18현(東國十八賢: 설총·최치원·안향·정몽주·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성혼·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 등 모두 122위를 봉안하였다. [현황] 안동향교의 대문 좌우에 있던 안동 석사자(安東石獅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는 안동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안동향교는 현재 전통 혼례와 불천위제례를 시연하는 등 유교 보급에 힘쓰고 있다. [의의와 평가] 안동향교가 현재의 자리에 중건되면서 동무와 서무의 구분 없이 5성(五聖: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과 송조6현 가운데의 4현(주돈이·정이·정호·주자), 그리고 동국18현을 똑같이 대성전에 봉안하는 위차(位次)를 새로이 확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위차를 정할 때 5성을 제외한 현인들에 대하여는 국적을 구별하지 않고 연차에 따라 봉안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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