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 마을에서의 느낌
김 익 택
초청하지 않았지만
반갑고 고마웠다
낡아서 더 정감이 묻어나는
이 포근함은 무엇일까
이곳 저곳 참다운 지식인의
시간의 흔적
그것 아니면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잘 정돈되고 단정한
집과 정자는
그분들의 지식을 모르고
철학을 몰라도
대대로 이어온 몇 백년은
그냥 정신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올림으로 느껴지는 건
그냥 애착 아니다
존경과 사랑은
꾸며서 아름다운 느껴지는 잘 단장된
인위적의 흔적 아니다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펼치고자 했던
삶의 철학
사람이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지식과 지혜가
알게 모르게
집과 정자에 녹아 있음이다
군자마을 소감 1
아담하다 고즈넉하다
평화롭다 정감이 간다
풍수 모르고 지리 몰라도
그 말 의미
내가 먼저 하고 싶은 말이다
높지 않는 아담한 산
그 아래
자연의 구김살 그대로
터를 닦아 지은 집들은
학이 알을 품고 있듯
자연의 어긋남이 없어 자연스럽다
집들은 산을 넘보지 않고
담은 낮아 위압감이 없다
위 아래 옆 언제 드나들 수 있는
한집 같은 여러 집은
소통이 경계를 허물어 자유롭다
군자마을 소감 2
김 익 택
마을 앞 그늘을 만들어주는
늙은 벚나무
화단마다
잎 푸른 모란과 작약을 볼 때면
봄에 오면
정말 아름답겠다는 생각
한반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밈없어 소박한 풍경
소박해도 품위가 깃든 분위기
듣지 못해 알지 못한
그 옛날이지만
빠져들고 느껴보고 싶었다
마음의 부채
김 익 택
바가지 욕을 먹듯이
목마름을 부르는 비가
너무 풍부해도
모자람 보다 못하듯
토사광란은
있는 것까지 겨워내고
아껴야 할 언어는
사전속에 녹슬었습니다
마음대로 하라고
초원위에 풀어 놓아도
남겨두어야 양식은
씨앗조차 없습니다
동행할 사람은
먼 길을 가버렸고
읽어야 책들은
부채처럼 쌓여갑니다
혁신과 조율
김 익 택
매일 물을 마셔도
위장이 하는 일 다르고
항문이 하는 일 다르죠
두뇌는 늘
새로워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빈약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매일 공기를 마셔도
허파가 하는 일 다르고
심장이 하는 일 다르죠
가슴은 늘
혁신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고도비만을 줄이지 못합니다
탁청정
김 익 택
단아하게 서있는 탁청정
기둥은 서 있어도
성한 곳 하나없이 갈라져 있고
넓게 펼쳐진 마루는 틈틈이
벌어지고 썩은 모습
세월의 잔해 역력해도
품위와 격조 는
그 옛날 보는듯
가득 찬 알곡처럼 단단하다
세월이 단한번도 수월하지 않음을
향나무 굽고 뒤틀린 채
탁정청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존경 그 이상이다
광산김씨 탁청정종택
김 익 택
왕조시대에 나라를 위해
올곧게 산다는 것은
웃는 것도 아프고
숨쉬는 것도 아픈 세월
500년 대대로
나라에 충성하며
가풍을 이어왔다는 것은
때로는 갈대처럼
때로는 소나무처럼
때로는 대쪽처럼
때로는 매화처럼 살아왔을 터
삶이 위대하고
존경스럽다는
그 말 밖에 할말이 없다
말의 진실
김 익 택
소리의 진실을 알리는 건
사랑의 속삭임만 아니죠
하늘의 천둥소리는 양심을 묻고
저 산에서 메아리는 나를 묻죠
의심을 하였던가요
오해를 하였던가요
구를수록 붙는 것은 눈만이 아니죠
좋은 말 보다 나쁜 말이 많죠
귀가 있고 눈이 있는 것은
보기 좋아 라고 있는 것 아니죠
한번 더 생각하라고 뇌도 있고 가슴이 있죠
집 나간 뒤 돌아오는 것은
웃어 넘길 얘기도
욕이 되어 돌아오고
가맣게 잊고 있던 말도
오해로 돌아와 양심을 의심하죠
사과라는 말도 있고 이해라는 말도 있지만
일단 따지고 난 뒤 일이죠
물론 얻는 것도 있죠
겪어봐야 아는 것이 사람 본심이니까요
가려서 나쁜 것은 없죠
주장보다 경청하는 것이
말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죠
삶이란 누구나 실수는 하게 되죠
실수하며 배우는 것이 삶이니까요
내가 한말이 상처보다 도움이 되면 좋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름
이왕이면 오래도록 기억되는
더 높은 명성이 되어야죠
그녀의 통보
김 익 택
오르막을 좋아하고 내리막을 좋아하는 건
그녀와 나 공통점이었지
성적이 곤두박질 치는 것도
산을 좋아하지만 오를 걱정에 포기하고
바다를 가는 것도 좋아했지
음치라서 노래를 못 부르는 것도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것도
뚱뚱하게 살이 찐 것도 닮았지
가족들은 건강을 걱정하고
몸매를 걱정하지만
배고픔을 해소하지 못하면
분노조절을 못하나는 것도 닮았지
1년만에 만난 그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지
날씬한 몸매
미니스커트 가슴 패인 셔츠
30킬로그램을 뺐다 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고
양식집에서 채소만 먹는다 한다
그리고 이별 같은 통보를 한다
살 빼지 않으면 만나지 말고
살 빼고 나면 연락하라 한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김 익 택
8시가 지나가고 있네 문밖은 짙은 어둠이 깔리고
가게 조명들이 대문은 밝히고 있네
한잔의 커피를 마시고 두잔을 비운지도 오래
카페문이 수십 번 열려도 너는 오지 않고
말 하지 않지만 직원 눈치가 보이네
카페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휴대폰 만지작거리는 것 밖에
부산에서 KTX를 탔다면 서울에 도착했을 것이고
비행기를 탔다면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을 시간
너는 오지 않네 연락도 없이
처음엔 설레다가 나중엔 걱정되다가
지금은 내가 미워지고 있어
앞으로 십분 앉아 있다 가기로 했어
네가 오던 말던 뒤돌아보지 않고
기다림을 생각하다 보니 배고픈지도 모르겠어
내 맘의 기차가 떠나고 몇 대의 비행기가
떠났는지 모르겠어
카페를 나갈 때도 조용히 나가야 겠어
동정의 눈빛은 싫거던
기차는 일곱시에 떠나네 노래가 끝나고
이 카페문을 나서면 나를 지우고 너를 지울거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Texas/Idon’t want a lover
김 익 택
사랑도 자신이 있는 가요
대담한 용기가 필요할텐데요
사랑을 포기한 것인가요
시시한 사랑이 싫은가요 그런가요
확실한 드럼소리가 똑 부러지는데
그대 목소리는
사랑을 속삭이듯 달콤하네요
편안하고 경쾌한 리듬
부담감 없는 목소리
이 밤이 늦도록 듣고 또 듣고 싶네요
나만의 욕심인가요
혼자 듣기 일품이네요
그대가 아무리 부정해도
나에게는 달콤한 사랑의 소리로 들리고
감미로운 사랑 노래로 들리는 걸요
친구는 필요 없어요
그대만 있으면
공공의 적이 된 자연
김 익 택
더위가 땅위의 생명들을 서서히 빨아들였다
저절로 화재가 일어나고 물이 끓었다
무차별로 피해는
사람들의 숨통을 끊으려 했다
믿고 있던 진리가 흔들렸다
파괴는 순간이었지만
복구는 아픔과 인내를 요구했다
이 땅의 삶들은 모두
살아갈 권리와 책임이 있는 것인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통제 영역에 있음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생명을 가볍게 생각했다
삶을 영위하는 것은
네가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보존과 개발은 상충되지만 불편하드라도 최소한
그들의 삶을 보장해줘야 했다
하지만 이미 생명이 사라진 뒤 깨달음은
복원이었다
생명은 나만의 것 아니라 공공의 것
후회는 늦었지만 피해는 달게 감수해야 했다
새로운 출발 외 답은 없었다
그것도 절실하게
소나무의 처사
김 익 택
고개 숙이지 마세요 당신 잘못 아닙니다
눈 있는 사람 정신 차리라고 부처님이
소나무에게 보초를 세운 겁니다
머리도 아픔을 알아야 하고 정신 차릴 줄 알아야 하지요
그가 살아 할 이유 충분합니다
그도 수십년 사느라 고생했고
앞으로 몇 백년을 더 살아야 할텐데
주의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죽을 수 없지요
그 소나무는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전해준 스님의 설법을
처사님 보다 수 천 번 더 들었을 겁니다
저 나무속에는 처사님 보다 더 아름다운
숨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평생 고기 먹지 않고 물만 먹고 살면서
탄소는 소화하고 맑은 공기를 배출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같이
푸른 기상을 평생 보시하고 사는 걸보면
단단한 사리 수백개가 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바람소리를 들어보세요
가슴이 편안했다면 처사님은
이미 그에게 보시를 받은 것입니다
바람소리가 아름답다면 이미 소리로 위로 한 것입니다
관심 없으면 보이지 않는 바람도 모르게
양심을 속이면
김 익 택
바람이 돌아서 가고 태양빛이 직선으로 간다
네가 나를 보고 웃어도
내마음이 허용치 않는 것은
네가 보여주지 않고 떳떳하게 생각하는
발자국이 남긴 구린내가 지독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가 알고서도
바람 따라 구름이 다르고
꽃잎의 행동이 달라지는 자연의 이치를
억지로 끌어들여 타협하려는 것은
내리는 비에 옷을 말리는 일
너도나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바람만이 해야 하는 일
웃어도 아름답지 않는 것은 그도 같음을 알아
얼굴을 붉히면서 진실을 숨기는 것이
머리에 뿔 나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고 마는
습성을 그는 알고 있어
모순이 모순을 낳는 일을 알면서도
뻔뻔한 행동을 하는 것인데
글쎄 한번 두번 그 다음은
군자마을은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위치하여, 일명‘외내’라고 불리운다. 안동댐 수몰로 사라지고, 2km 떨어진 지금 위치에 마을의 가옥과 정자 등을 그대로 옮겨왔다. 500~600년전 광산김씨 농수(農叟) 김효로(金孝盧)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안동 부사였던 한강 정구 선생이 “오천 한 마을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말에서 연유하여 군자 마을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조선시대 전기부터 끊임 없이 많은 학자들을 배출해 낸 군자마을은 그 분위기에 걸맞게 매우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을이다. 광산김씨 군자마을 종중의 종가인 후조당,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저자인 김유의 고택, 탁청정 등 20여 채의 고택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안동시내에서 도산서원 방면으로 35번 국도를 따라 20여분 가다보면 오른쪽에 안동군자마을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에는 앞 골짜기가 호수를 이루고 있어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 역사
- 안동에서 도산서원 가는 국도를 따라 약 20㎞정도 가다보면 오른쪽 길가 자연석에 군자리라는 표석이 있고 그곳에서 100m정도 굽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문득 20여 채의 고가가 나타난다. 이 건물들은 광산김씨 예안파가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세거해 온 외내에 있던 건축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과 그 밖의 고가들을 1974년 안동댐 조성에 따른 수몰을 피해 옮겨놓은 것들이다.
- 문화재 정보(국보, 보물 등)
- 보물 제1018호 : 고문서 11종 429점, 호적, 교지, 문서, 간창 등
- 보물 제1019호 : 전적 13종 61점, 서전, 송조명신언행록, 주자대전 등
- 중요민속자료 226호 : 탁청정
- 중요민속자료 227호 : 후조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6호 : 탁청정 종택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7호 :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0호 : 침락정
출처 -:안동시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