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오연정의 여름
김 익 택
그 옛날 선비의 열정일까
오연정의 여름은
푸름 속의 붉음 빛이 곱다
대문은 열어 놓아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백일홍 꽃만
오연정 처마끝에 문안 인사를 하고
낮잠을 깨어난 선비 세안하듯
현판을 마루 훑고 가는
빈 바람이 시원하다
곳곳에 걸려 있는 현판의 글들은
그 의미 눈뜨고 봐도 몰라도
그 의젓한 기품은
나그네 가슴을 넉넉하게 하고도 남는다
오연정의 백일홍과 매미
김 익 택
나누어도 귀찮은
더운 바람과
베풀어도 싫은
맑은 날씨인데
매미 떼 창 소리에
화합하듯
백일홍 너만 홀로
이열치열로 피고 있다
백일홍에게
김 익 택
의문 아니라 숙제를 던지는 너
이제는 더위에 왜 피냐
꽃이 왜 붉 냐
열매는 왜 작으냐
이제는 묻지 않으마
무릇 생명이란
제마음대로 태어나고
죽을 수 없음을
알면서 묻는 건 바보가 아닌가
무릇 삶이란
사랑받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건
당연지사
내가 그러면 너도 그런 걸
너라고 다를 수 있을까
궁금한 것은
내 자신의 숙제를 푸는 것
나를 알면 너를 아는 것이지
나 이제 위로하고 격려하고
고마음으로 살고 배우겠네
위로한답시고 풀어 놓은 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았네
그러니
지난 일을 용서해 주렴
삼계탕과 더위
김 익 택
네가 여름을 팔아먹는 동안
나는 바람 한점 들어오지 않게
문을 꽁꽁 걸어 채우고
유튜브 여행을 하며 고독을 팔아먹었지
거리엔 석유의 공룡들이 활보를 하고
젖은 넥타이를 풀어 해치며
설신성인 닭 속 인삼을
걸신이 든 사람이 입맛을 다시며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 한다
반가운 손님마저 부담이 되는
너의 붉은 입술에 딥 키스는
떠 날 수밖에 없는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나면
8월이 내미는 악수에 손절했지
당당한 삶의 경고
김 익 택
노래는 귀청을 후벼 파는
매미 소리에
백일홍 꽃이
여인의 입술같이 아름답다
태양이 경고하는 땡볕 작업은
젊음 아니면
목숨을 내 놓은 어리석음이라고
하늘과 땅의 이야기를
더운 바람이 경고한다
당당하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는
직선 아니라 회피
적응의 실험은
자랑하는 것 아니라고
해마다 더운 여름이
처음인양
수다를 떨고 있는 삶들에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매미가
목이 터져라 보름을 외치고
백일홍이
석 달 열흘 각혈하고 있다
그대는 영원한 꽃
김 익 택
시간이 지난 뒤 그리움이 아름다움 된다 해도
그대 없는 삶은 싫다
이루어지는 사랑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아름답다는 말은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
남의 얘기라고
사랑을 장난으로 하는 말 아니며
사랑을 낭만으로 하는 말 아니다
죽음 같은 그리움을 안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말
강 건너 불구경하 듯 웃을 수 있는 것일까
담장의 능소화 장독대 모란 절간의 상사화
사랑의 모럴
거짓말 같은 전설을 먹고 사랑을 먹고 피는
꽃이 될지라도
죽음과 바꾼 사랑은 의지가 죽음 아니지만 운명
평생을 두고 후회하는 괴로움이라면
다른 만남의 인연 있더라도 불행
생각해서도 안 되고 생각 할 수도 없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대 이름 하나로 믿고 그대 이름 하나로 산다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죽는다 해도 길은 하나
인연이며 생명이며 운명
시간이 삶을 변하게 하고 자연을 변하게 해
이름 없는 들꽃이 되고 풀꽃이 된다 해도
그대는 영원한 꽃
백일홍의 붉은 의미
늙은 가슴이 꽃을 피우는 건
장미도 아니고 모란도 아니다
꽃 피고 열매 맺는 계절은
누구에게나 좋은 날
꽃을 피워도 향기를 모르고
열매를 맺어도 모르지만
모두가 발길을 끊는 삼복
누가 오든지 말든지
피웠다 지는 백일
제 의무 다하는 그대는
아픔을 알고 슬픔을 알고
인내를 아는 꽃이다
삶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고
학문을 론하는 진리의 전당에서
인내가 무엇인지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몸으로
눈보라 추위를 견뎌내고
태풍 장마 더위 가뭄 몸소 겪은
소리 없는 침묵은
그만의 알림이며 가르침 아닐까
백일홍과 삼복더위
김 익 택
태양의 부름에
맨땅 치솟는 열기
푸른 삶을 데치듯
바람마저 뜨거운데
오직 너만
오랜만에 임자를 만난 듯
매끄러운 가지 끝
붉은 꽃봉우리가
아이스 화채처럼
여름이 탐스럽다
백일홍 낙화 편지
김 익 택
돌아설 때 아쉬움은 좋은 친구와 헤어짐 만이 아니죠
아름답게 웃고 있다고
눈물 없는 과거가 없는 것 아니었죠
구경오는 삶들에게
좋은 생각 좋은 추억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죠
알다시피 피치못할 환경이라는 것이 있지요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 불어
삶을 시험하는 계절을 견뎌내는 것이 힘들었죠
삶이 사랑이고 인내가 희망이며
미래를 믿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생활이었죠
삶과 죽음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꽃을 피워도 찾지 않겠죠
팔 다리가 부러지고 뿌리가 뽑혀도
소유권이 없으면 법과 도덕은 지나가는 바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죠
적어도 사람이 열 번 죽고 태어나는
세월 아니면
하나의 나무에 피고 지는 그렇고 그런 꽃
의미는 시간과 비례하죠
좋은 화가를 만나 아름다움으로 기록되고
좋은 시인을 만나 삶이 기록되기 전까지는
거름을 주지 않아도 여름이면 으레 피는 꽃
피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꽃
관심두지 않아도 심으면 살고
세월이 흐르면 으레 피는 꽃
감상하고 즐기는 이상향은 그들의 몫이었죠
붉게 더 붉게 피어야 했죠
그들의 심장처럼
복날과 치킨
김 익 택
복날 삼계탕 먹지 않고 치킨 먹었다
다 같은 닭고기인데 무엇이 다르냐는
딸의 동조하는 아내 말에
나는 입 꾹 다물고 말았다
관습과 풍습을 얘기하면 억지가 되는 건
민주주의나라 다수결 2대1를 부정하는 것이다
시대가 요청하는 변화가
전통을 무시하는 세대
달콤한 치킨에게 이열치열 삼계탕이 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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