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천의 하얀 물안개

 

김 익 택

 

저 늪지대를 품고 있는

하얀 물안개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손님 아니다

봄에는 새생명을 보듬는

어머니 가슴으로 오고

가을에는 생명 끝자락

수고했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 손길로 온다

어둠이 가시기전

이른 아침

숲의 영혼같이 피어나서

태양이 등을 밀때까지

행복한 시간은

만남도 잠깐 이별도 잠깐

삭혀야 내 것이 되는 영혼같이

흔적없이 자취를 감춘다

감기몸살

 

김 익 택

 

 

머리통에서 육수를 끓이는 것도 모자라

밤 가시가 온 머리통을 꼭꼭 찔렸다

가슴통이 질세라 약탕을 끓이고

고속도로 달리듯 미싱이 밖음질을 했다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르는 지배자가

삶을 저울질했다

노란 하늘이

없는 죄 있는 죄를 생각했다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르고

온몸이 추워서 덜덜 떨렸다

삶과 죽음이 발갛게 달아오른 석쇠위에

도루묵이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고 있었다

 

사자바위에서의 화포천

 

김 익 택

 

적막속에 일어나는 쇼는

음악도 없고 무대도 없었다

방해꾼지 주인공이지 모르는

기차가 지나가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락은 더욱 노랗게 익어가고

나뭇잎은 붉게 단풍이 들 뿐

붉은 태양은

눈 먼 소경 마냥 하얗게 변하고

구름은 색 빠진

붉은 저고리같이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

물 안개만 하늘을 향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가을이 왔어요

 

김 익 택

 

 

시원한 바람이 모기 입 비틀고

매미 소리 꺾어 버렸나요

모기 소리 들리지 않고

매미소리 잠잠해졌습니다

부는 바람은 시원하고

과일을 씨알이 굵어졌습니다

산책하는 사람들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제까지 무더운 여름을 말합니다

지난 여름은 죽을 맛이었다고

가을은 약속 없고 계획 없어도

 

김 익 택

 

가을은 약속 없고 계획 없어도

저 파란 하늘 어디선가

저 시원한 바람 속 어디선가

기대하지 않아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가을은

주는 것 없어도

불어오는 꽃 향기와

익어가는 과실이 향기로

계절이 바뀌는 것 만으로 즐겁다

가을은

단 하나도 내를 위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까지 모두 내려놓고

고개 숙인다

솔직했으면 덜 실망할 것 같아요

 

김 익 택

 

이별이 아름답다는 말 무슨 말인가요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 무슨 의미인가요

내 작은 머리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프고 화가 나고

슬프면 눈물 나는 것 당연한 일 아닌가요

참는 차이일 뿐이지요

한번을 생각하고 두번을 생각해도

이별이 아름답다는 말 이해해도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 이해할 수 없어요

마음 상하지 않게 거짓말을 한 거죠

상처는 상처이지 아름다움이 될 수 없지요

헤어진 뒤 친구가 될 수 있나요

난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 아닌 다른 사람과 행복한 모습보고

아무렇지 않다면 사람 아니지요

예의와 도덕이 내 헤어진 남이 된 사랑까지

포용할 수 있을까요 포용한다면

그것 또한 거짓 사랑이겠죠 내 생각은 그래요

이젠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솔직했으면 덜 실망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고 남자답게

그대가 싫다면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좋은 관계 성립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정도는 나도 알지요 모두 용서할 수 없겠지만

나를 위해 잊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솔직히 말 하기 바라는 것이지요

헤어질 때도 예의는 있으니까요

부탁 아니라 예의를 지켜 달라는 거예요

그래야 내 덜 비참 하거던요

양떼구름

 

김 익 택

 

저 수많은 양떼들

무엇을 먹고 자랐을까

있다면 바람뿐인데

하나같이 오동 통통

살이 붙었다

물이 없어

씻지도 못했을텐데

목화 보다 깨끗하다

주인도 목동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남쪽 하늘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름을 사랑하는 알곡들

 

김 익 택

 

더운 여름을 제일 사랑하는 것은

알곡 뿐이다

이른 아침 떠오르는 붉은 태양의 진리를 먹고

낮에는 뜨거운 더위의 인내를 먹고

밤에는 별빛의 꿈을 먹고

바람이 불면 바람의 향기를 먹고

비가 오면 비의 진실을 먹는다

이렇게 여름의 알곡은

먹어야 살고 먹어야 건강을 유지하는

농부의 정심 근본이 되기 위해

나를 위한 다른 삶들을 위해 아낌없이 먹는다

당장 죽어도 원망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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