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바위 가을 아침풍경

 

김 익 택

 

 

회포천 새벽기차가 가을 속을 떠나는 날

노랗게 여물어가는 벼들이

참새들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숙였다

기차 바퀴소리가 무서웠던가

오리 떼가 하늘을 날랐다

안개속으로 사라지는 기차를

가로수 붉은 잎이 햇살에 빗질을 한다

머리풀은 영혼처럼 사리지는 안개를

햇살이 고생했다 위로하는듯

입 맞춤을 한다

인수인계를 끝낸 어둠이 자취를 감추었다

사라진 기차 꼬리에

전신주들이 두 팔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다

 

 

가을은 풍요로운데 나는

 

김 익 택

 

하늘과 땅

어디 하나 나무랄 곳 없는 가을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나

 

보이는 삶들 모두

풍족해서 즐겁고

결실이 토실토실 해 행복한데

나만 홀로 외롭다

 

마음이 가려면 몸이 길을 막고

몸이 가려면 마음이 가로막아

 

가만 있으면

시간이 아까워 조바심이 나고

떠나려면 갈 곳이 막막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천국은 언제나 내 곁에

 

김 익 택

 

행복이 어디인가 했더니

그리움이 꿈을 만들고

그리움이 미소 짓게 하는

어린시절 고향과 친구들과

행복했던 시절이었네

사랑이 어디 있는가 했더니

애태우고 가슴 조아렸지만

생각하면 좋고 만나면 신났던

그 소녀를 알고부터 이었네

즐거움이 언제였던가 했더니

네가 나이고 내가 너였던

고교시절이었네

천국이 어디인가 했더니

그대를 만나

자식 낳고 고난을 의지하며

살아온 지금 아닌가 싶네

창가 빗물의 기록

 

김 익 택

 

창가에 떨어지는 빗물이

과거를 덧칠하듯 흘러내리고 있다

 

어디서 무엇하고 있을까

돌아갈 수 없는

허울 좋은 젊은 시절

순수가 용기를 꺾어

하지 못한 얘기가

미처 거두지 못한 유물처럼

추억위에 추억을 덧칠한다

 

각박한 현실이었지만

그리움은 미지의 세계

세월가면 몸이 늙듯 생각도 늙으리라

나날이 새로움에 적응하는 것 같이

하지만 그리움은 추억이란 저장고에서 숙성된 채

문득 찾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왜 늦게 찾느냐 원망 없는 반가움은

기억의 회상은 새로운 발견같이

바보 같은 그 시절이 아름답고 그립다

 

창가에 흘러내리는 빗물

그 위에 자꾸 흘러내리는 빗 물이

단 한번도 같은 모양이 아니 듯

그림위에 그림은 지우는 것이리라

새롭게 적응한다는 것

 

저 창가에 빗물이 손수 실천하고 있어

쉬이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감기몸살

 

김 익 택

 

머리통에서 육수를 끓이는 것도 모자라

밤 가시가 온 머리통을 꼭꼭 찔렸다

가슴통이 질세라 약탕을 끓이고

고속도로 달리듯 미싱이 밖음질을 했다

하늘은 노랬다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르는 지배자가

삶을 저울질했다

없는 죄 있는 죄를 생각했다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르고

온몸이 추워서 덜덜 떨렸다

삶과 죽음이 발갛게 달아오른 석쇠위에

도루묵이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고 있었다

 

'안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 안개 피는 화포천  (1) 2023.03.28
가을속으로 달리는 기차  (1) 2022.09.28
위양지 완재정  (0) 2022.05.07
봄 힐링  (0) 2022.04.26
호수의 아침  (0) 2022.04.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