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은
김익택
땅을 머리이고
서릿발이 일어서면
오늘 보다 내일
더 많은
옷깃 여미는 계절
친서리 맞고 피는
황국은
그 빛깔 그향기
울음을 삼킨 뒤
딸꾹질같이 서럽다
가을 꽃 길
김익택
햇살이 가리키는 길을 걸었습니다
어깨에 내려앉은 삶은 무거웠고
바람의 입맞춤은 침묵했습니다
소통되지 않는 길 앞잡이가
놀라서 열 걸음 앞서 날라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중력에 단풍잎이 떨어지고
쑥부쟁이 들국화 향기가
가두시위 했습니다
진한 아쉬움을 국밥을 말아먹고
거들 것 없는 빈손에
바람을 말아 쥐었습니다
들국화 피는 길에
김익택
새벽안개 입맞춤에
아름다워서
더 슬픈 눈물같이
뚝 떨어지면
흔적 없는
영롱한 이슬방울
바람의 입김에
떨어지는 홍엽이
들국화 피는 길에
싫은 듯 아쉬운
12월이 가고 있다
황국의 향기
김익택
찬바람 불고
나뭇잎 우수수 떨어질 때
하얀 서리 머리에 이고
피는 황국
보는 사람 모두
귀하다 아름답다는
그 말
가당치 않다는 듯
흩뿌리는 꽃 향기가
소리 없이 던지는
삶의 질문 같아
문득 되짚어보게 되는데
차가운 바람이
귓불을 때리며 지나간다
늦게 핀 꽃의 비애
김익택
꽃이 지나가는 바람을 불렸습니다
바람이 거절했습니다
고요 속에 비가 내렸습니다
울 수 없는 꽃이
눈물을 가득 머금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비가 개이자
파란 하늘이
꽃의 눈물을 말리고
향기를 거두어 갔습니다
벌 나비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나그네 늙은 손길이
꽃대를 다독거렸습니다
꽃대가 흔들리자
시들은 꽃잎이 쏟아지는
눈물처럼 떨어졌습니다.
들 꽃 국화
김익택
매양 건강하게 자랄 수 없고
청순 청초하게 필 수는 없지만
삶 답게 살고 싶은 것은
삶의 진리
무참한 예초기 칼날에 쓰러지고
무지막지한 제초제에 죽임 당해도
들꽃은 언제나 말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삶의 권리 주장하지 않고
단 한번도 저항하지 않는다 하여
아픔 없고 통증 없을까요
그래도 내년이면 다시 싹 틔우고 잎 피어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삶의 의무 회피하지 않습니다
찬이슬 먹고 찬바람에 꽃을 피우고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듯
꽃과 향기 잊지 않습니다
아름답지 않지만 수수하고
고귀하지 않지만 평범한 그 꽃은
꽃잎은 차로 뿌리는 약으로
버릴 것 없는 가을이 주고 가는 작은 선물
누가 감히 그 꽃을
잡초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가을 들꽃 같은 그대가
땅에 묶여 있는 육신
떠나고 싶은 영혼
그 갈등 사이에도
가을 하늘 흰구름은
어깨 동무하고 산을 넘나든다
주인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
어디선가 긴 머리 휘날리며
달려오는 여신을 그리다가
그 구름 위에 마음 하나 툭 던져
손오공이 되어도 보고
바람 타고 떨어지는 낙엽 위에
마음을 얹어 본다
오라는 곳 없어도 갈 곳 많은 것과 같이
가을은
바람이 부르고 빛이 부르고
향기가 부른다
저 어디선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들꽃 같은 그대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이
한줄기 바람이
만나자는 약속 없어도 시원하게 맞아준다
들꽃 소원바라기
김익택
꽃을 피워도 몰라주고
향기를 퍼뜨려도
몰라주는 들꽃이
외로움이 싫다고 한다
소나기 쏟아지는 밤 지나고
별 쏟아지는 밤
내 귀에게 대고 손곤거린다
바람꽃이 되고 싶다고
들국화 꽃잎에게 사과를
김익택
관심과 사랑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건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눈빛으로 위로가 모자랄 것 같아
살며시 손으로 만져보았지요
연약한 꽃잎에 맺힌 이슬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내가 잡은 꽃잎은 상처가 되었죠
아 미안해
순간적인 사과말이 흘러나왔지만
이미 저지른 일은 복구할 수 없었습니다
내 마음이 부드러울지 몰라도
꽃에게는 상처
내 가벼운 생각이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진심이 올바르다 해도
받이들이 쪽이 아니면 예의를 벗어난 행위는
무시였습니다
물러서서 꽃의 아픔을 헤아려 보았지요
네가 예쁜 숙녀였다면
사회의 성희롱으로 웃음거리가 되었을지도
치료비와 보상금을 지불 했어야 할지도
국화가 피는 이유
김익택
그래 너의 향기는 향기가 진하면 진할수록
아픔의 산실의 청구서이지
너를 찾아오는 벌 나비는 추위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너는 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더 아름다워야 하고 더 향기로워야 한다
그래
삶의 운명이 경쟁 아닌 것이 있었던가
그렇다고 고독사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원조를 응징하는 것
죽음 아니면 도전해야 바른 삶이다
그러기에
꽃 없는 계절에 핀다는 것은
마지막 나눔이고 베푸는 다시없는 축복이고 사랑이다
산국 감화
김익택
그래 알지 낙엽 떨어지고 난 뒤
앙상한 잔가지와 마른풀 사이사이
논두렁에 피고 밭둑에 피고 언덕에
노랗게 피었지
오늘 보니 너의 앙증맞은 모습이
어린아이 웃는 미소 같고
아기 웃음소리 같이 맑네
많은 삶들이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 언덕을 지키고 있는 너를 보니
내가 양심 두꺼운 사람 같아
때늦었지만 사과를 하고싶네
그래 내가 너에게 향수를 느낄 줄은 몰랐지
늙어 눈은 침침하고 걸음은 어둔한데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너를 보니
어릴 적 동무 보듯
자꾸 가슴이 울컥거리네
삶을 치유하는 국화 향기
김익택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가을엔
옷깃을 스쳐도 나는 국화 향기라가
아닐까 싶다
먹어야 사는 벌 나비가 아니더라도
코 가진 삶이라면
국화 향기는
가던 길을 돌려세우는 일
맛있는 음식으로 만족 못해도
마음을 치유하고
안정을 제공하는 너의 향기를
사람들은
너무 소홀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렇다면
돈을 주지 않아도 무한대로 제공하는
너의 향기의 가을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누가 부정할까 싶다
국화향기의 진심
김익택
남쪽나라로 먼 길 떠나가는 철새 보다
남아 있는 가을이 다 아쉬운 것은
그대 짙은 향기 때문이리라
무슨 사연인지 이유인지 모르지만
모두들 춥다고 떠난 자리에
너만 오롯이 피어
열매와 잎 모두 떨어뜨리고
추워서 움츠리는 있는 삶들에게
꽃과 향기로 위로하고 있는 모습
고맙다 아쉽다는
가을의 마지막 인사 같아
너의 향기가
내 가슴에 눈물 한 숟가락 고인다
12월의 국화
김익택
낙엽이 이별 노래를 부르는 날
황국화가
제 손님을 맞이하기위해
손 편지를 써 놓고
마지막 손님을 기다렸다
블랙플라이데이도 아니고
바겐세일도 아닌
선착순 공짜라고 써 놓았지만
추위 앞에 장사 없어
기다려도 벌 나비는 오지 않았다
노란 편지는 색이 바래 지고
향기도 엷었다
빨간 단풍이 손을 흔들었고
사위어 가는 어둠속으로
들고양이가 울었다
국화와 입맞춤은
김익택
짝사랑 일지라도
국화의 입맞춤은 질투하지 않아 좋았지요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잎은
꽃 색에 따라 미소가 달랐지요
보라는 냉정하게 보였지만
비밀을 간직한 것 같았고
노랑은 아이같이 순진하게 보였지만
따뜻한 정이 느껴졌고
하양은 새아씨 마냥 맑고 순수했지요
소녀의 순수가 그만 할까요
숙녀의 배려가 그만 할까요
깊고 은은한 향기는
그 어떤 형용사로 표현할 수 없었지요
시원한 바람 한 줄 따뜻한 햇살 한 줌에
고마운 인사하듯
양지쪽 국화 미소는 마지막 가을의 보약
그 이상이었지요
12월 황국화의 애환
김익택
네가 찾는 벌 나비는
꽃 지면
오지 않는 걸 알지만
벌도 나비도 없는 겨울
너는 왜 피었을까
평생 가슴에 담은
고독을 뛰어 넘은 향기
아무리 흩날려도
벌 나비는 오지 않고
너를 찾아 오는 건
사랑과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사람들 뿐
너는 그 사실 알면서 피었을까
알고 피었다면
남 모르게 머금은
눈물 한 줌 속에
녹아 있는
전설 같은 시 한 수는 있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