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버린 이미지

김익택

 

 

감미로운 음악을 듣다가

길가다 해맑은 웃음을 짓고 가는

아이들에게 말 속에서

영화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강력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들

그 느낌 기억해야 한다고

그 느낌 포착해야 한다고

그 느낌 메모해야 한다고

내 맘에 전율이 물밀 듯 스며드는 감정을 쓰려고

막상 필을 들면

애매한 이미지는 잔물결처럼 어질러질 때

내가 나를 쥐어박고 싶다

어디가 입구이고 어디가 출구인지 모르듯

종잡을 수 없는 이미지는

알고 있는데 떠오르지 않아 끙끙 앓는다

이런 나를 보면

내 머리는 벽창호인가

내가 나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시어

김익택

 

 

알 듯 말 듯한 단어 하나

툭 던져 놓고 사라진 상념 되살려고

서울 김 서방 집 찾듯 헤매고 있다

 

길 위에서 길을 찾다가

길 위에서 길을 잃었다

 

길 위에서 길을 발견하지 못한 채

막다른 골목길에서 갇혀

돌아오는 길까지 잃었다

늘 배고픈 언어

김익택

 

 

외계어를 찾는 것도 아니고

언어 밖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아니다

매일 눈뜨면 보고 듣고 말하는 나는

언제나 언어가 고프다

 

자만에 빠진 이야기 말고

생각에 눈먼 상상임신 말고

흔해 빠진 진부한 이야기 말고

 

심금을 울리고 폐부를 찌르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생소해서 싱그러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사색의 숲 속에서

상념의 숲 속에서

경험의 숲 속에서

고뇌하다 얻은 이야기

참된 소리의 진실을 만나고 싶다

생각이 외출했습니다

김익택

 

 

내 머리에서 언어가 사라졌습니다

내 머리 속은 소금 밭이 되었습니다

태양에 바래 버린 종잇장같이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고

듣고 들리지 않습니다

초복 중복 말복 다 가도록

단 한 줄도 못 섰습니다

태양이 내리쬐는 주차장 나무 그늘

매미소리가 파도 소리로 들리고

꼭꼭 걸어 둔 아파트 베란다 창 밖

에어콘 뜨거운 바람소리가

정신 잃고 헤매는 신음소리같이

힘없이 들릴 뿐

도무지 시가 생각 나지 않습니다

시 너를 생각하다

김익택

 

 

긴 하루

 

하루

 

 

오늘도 난

너를 생각했다

 

꽃으로

위로 되지 않는

 

잠 못 드는

시를

종이는

 

 

 

백지 노트를 보고 있으면 뭔가 메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때가 많다

 

떠 오르지 않는 이미지를 끝없이 고민하는 뇌

 

아름다운 글을 채워야 하는 의무 아닌 채찍질을

자책하는 사이

때묻지 않는 하얀 순수는 계속 나를 주시하며

거듭된 침묵으로

빼곡하게 질서 정연하게 써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쓰는 것이 낙서가 될까 망설여 질 때가 있다

 

글 쓰는 자의 마음 가짐 공백의 압박

시각적 미학까지 읽는 사람 나 혼자 일지라도

발걸음을 때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얼굴 없는 양심 그 위에 그려지는

지혜와 향연의 장에서

손가락 떨림을 잊고 부끄러움을 잊기까지

 

함께 용해되어 기록이 되고 귀감이 되고

칼 보다 예리하고 총알보다 빠른

기록의 유산 사전이 되기까지

 

종이는 오늘도 나를 외면하고

너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시를 헤는 밤

김익택

 

 

유리알처럼 맑은 하늘

보름달이 춥다고

문 두드리는 삼경

스쳐가도 잡지 못하는 언어들이

어둠 속에 숨바꼭질 하고 있다

 

손 뻗으면 도망가고

눈 감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있는 것 없는 것 다 줄 듯

수없이 떠 다니는 생각들이

잔 별처럼 어지럽다

깊은 밤

김익택

 

 

가끔 고성이 오 가고 난 뒤

하이힐 구두소리

검은 땅을 파고드는 깊은 밤

 

무엇을 어떻게 할까

아직 정리하지 못한 마음

어수선한데

 

이내 맘 알지 못하는

컴퓨터 까만 커서가 무엇이던 쓰라고

맥박처럼 뛰고 있다

ㅏ ㅓ

김익택

 

 

마주보고 있어도

늘 그리운 사람처럼

 

너희 둘은

아픔을 주고 사랑을 주고받는

인연을 천연으로 맺어주는

사랑의 모태

 

어찌 보면

서로 견제 모습

어찌 보면

손 내미는 모습

닮았지만 닮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새롭다

 

너희 둘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도

더불어 하나 되어

 

또 다른 하나를 되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삶의 모습이다

말 속의 뼈

김익택

 

 

은근이 비꼬는 말

기분 상하지만

좋은 말 이어도

뼈 있는 한마디는 두고두고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남의 좋은 일에

은근한 질시는

나를 아프게 하는 일

자극으로 받아들여야

내가 나를 이기는 일

비하하고

나쁘게 한다 해서

내가 시원해지는 일 결코 아닙니다

 

칭찬은 아닐지라도

경청하는 그것 만으로

나를 경계하는 일

 

내 감정 직설적인 의사 표현은

내 스스로 나를 가볍게 하는 일입니다

 

내가 뱉은 말

실체 없어도

듣는 사람 귀에는

히드라 머리가 될 수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찮고 귀찮고

치사하고 유취하고

아니꼽고

상대할 가치조차 없어도

꼭 말을 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귀히 다듬은 다음

입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웃음 바이러스

김익택

 

 

웃음 속에 피는 꽃은

이름도 없고 색깔도 없지만

소리 속에 피어나는

그 향기는

아무리 나누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퍼주면 퍼줄수록

더 많은 향기로 되돌아오지

웃음 속에 피는 꽃은

맑고 밝고 청순하고 깨끗하고

가식이 없는 것이어서

울어도 즐겁고 아파도 감격스럽습니다

?

김익택

 

산소 마시고 탄소 내 뱉는 나무같이

좋은 말 생각 허물없이 받아들이고

내 안의 아집 고집 재빨리 내보내고

양심은 끌어안고 근심은 버리고

좋은 것 취하고 나쁜 것 버리고

꼭 이분법적으로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그것 아니면

이해하고 설득하고

그래도 안되면 함께 사는 방법 모색하고

더불어 살아야 현명한 것인지

올바른 세상은

선과 죄가 공존하는 세상이지

선만 있는 그 세상이

과연 온전하게 균형이 맞을는지

철학에서 종교에서 하는 얘기

? 의문은

혼신지의 비밀언어

김익택

 

 

저 붉은 노을이

황금빛을 먹을 삼아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오늘 하루 지구상에 있었던

모든 일들

부처님 혜안 아니면 모르는

언어들 잔 물결 위에

풀어 헤쳐 놓고

 

어둠을 속에 빛 숨기고

다시 못 올

산 너머로 잠수하고 있다

기러기 가족의 한글 공부

김익택

 

 

달 밝고 날 찬데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가족

 

날아가면서 글을 쓰고

날아가면서 가갸 거겨

외우며 간다

겨울 달밤 기러기

김익택

 

 

달빛 벗삼아

날아가는

저 기러기는

 

기억 아니면 시옷

단 두 글자로

소통하면 날아간다

 

지치면 참아라

처지면 힘내라

서로서로

위로와 용기

북 돋으며

 

선두에서 이끌면

후미까지 밀듯이

흐트러짐 하나 없이

 

보름달 등에 업고

구름을 그늘 삼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혼신지 풀지 못할 언어들

김익택

 

 

바람이 불면

겹겹이 시간을 나르는 금빛 물결

죽음과 삶

그 사이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바람은 알고 있을까

남기고 간

앙상한 줄기

세파가 싫어서

바람 고요한 날

보여주는 언어

알아도 모르고

몰라도 이해가 되는

죽음이 남기고 간 언어들

해독할 시간적 여유 없이

태양이

붉은 낙관을 찍으며

억겁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시가 있는 사진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첩 01  (0) 2025.01.16
국화시첩 02  (1) 2025.01.14
국화시첩 01  (0) 2025.01.14
동백꽃 시첩 03  (0) 2025.01.10
동백꽃 시첩 02  (0) 2025.01.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