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너는

김익택

 

 

 

세상에 너만큼

향기로운 꽃이 있었더냐

홀로 피어 있어도

그 향기 군계일학같이

돋보이는 너

세상에 너만큼

자혜로운 꽃이 있었더냐

늘 곁에 있는

천군만마 같이

위안이 되는

너를 보고 있으면

포근하다 편안하다

기쁘다 아름답다

탐스럽다 복스럽다

즐겁다 행복하다

세상의 아름다운 말

모두 모아 놓은 형용사 사전

어느 시인은

내 누이 같은 꽃이라 했던가

아니다 나에게 너는

누이였다가 누님이었다가

애인이었다가

내 삶의 영원한 안식처

어머니 꽃인 것을

국화가 필 때면

김익택

 

 

 

돌담지붕 밑

옹기종기 핀 국화

오지 말라 해도

발길 머무는

그 집 앞 같이

향기 찾아 날아드는 벌 나비

웅웅그리는 소리

가득 매운 경기장 소리같이

벌소리가 어지럽다

그 꽃 그 향기

찾지 않으면 벌 나비

아니 듯 

그 소녀 향기

그 소녀 미소

세월에 묻지 못하고

아직 가을 아닌데

미리 취해 하늘을 보네

이제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세월의 진자리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데

나만 홀로 기억 속에

잔물결로 피어난다

그 길가에 핀 꽃

김익택

 

 

그 꽃은 무성한

수풀에 지쳐

줄기는 가늘고

꽃송이는 여려

실바람에도 허리가 휘 청

나비가 앉아도 목이 꺾여

보기가 여간 언짢지 않아도

기어코 피고 만다

삶이 모질어도  인내가

가여워서 아름답고

가냘퍼서 향기롭다

그 꽃을 보고 있으면

세상사 힘겨운 일

너도 나와 다르지 않아

쉬이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꽃 진 자리의 약속

김익택

 

 

화르르 피었다 지는데

고작 십일

그래 가거라

말없이 기별 없이

미련 없이 서러움도 없이

훌쩍 떠나거라

 

그립지도 않는 아쉬움은

모질게 달라붙어

시든 모습은

기억도 없고 기약도 없이

사라지거라

 

그래도 그리운것은

내년 볼 수 있을까

그래도

너도 나도

아쉬운 것은 

지키지 못 할 약속 이기

때문이리라

구절초와 쑥부쟁이

김익택

 

 

구절초와 쑥부쟁이

서로 잘났다고

족보 따져봐야

도토리 키 재기

도시에서 살 수 없는

너도 나도 촌놈이지

 

너는 돌무지 척박한 땅

나는 가시덤풀 그늘진 곳

찬이슬 머리에 이고

피는 것 마찬가지지

 

홀로 피면

보잘것없을지라도

더불어 피면 아름다운 동산

짙은 향기는

기억의 세포들

다시 돌아오게 한다

묵음으로 피는 국화

김익택

 

 

찬 바람에 목이 달아날까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아침 햇살 군불로 피는 너는

바람이 보낸 가을 손님이다

 

욕심 없고 가식 없이

세속의 이름 지우고 사는

수녀님 따뜻한 마음같이

노랑 빛으로 웃고

 

세속의 삶 잊고 사는

정결한 비구스님같이

깊은 향기는

노랑 바람으로 웃는다

철 지난 꽃

김익택

 

 

너를 보고 있으면

다들 돌아간 빈 극장처럼

여운도 서럽다

 

너를 보고 있으면

끝 마무리 뒤에 나타나는

손님같이 마음이 애섧다

 

너를 보고 있으면

끝까지 완주하는

꼴찌의 아름다움이다

쑥부쟁이 운명

김익택

 

 

돌무지의 응달 외진 사토에

어렵게 뿌리박아 삶이 생면부지인데

 

때려도 말 못하고 목 잘라도 말 못하는

살아도 죽음 같은 숙맥 같은 꽃이여

 

그래도 가을 오면 찬이슬 마다 않고

눈 여겨 보는 사람 없어도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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