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동백꽃
김익택
북쪽 서울은 눈 오고
길이 얼어붙어
외출이 뜸한데
남쪽은 공원에 산책 나온
엄마와 아이
손짓하는 동백가지 끝에
동백꽃이 웃는다
동백꽃은
찬바람이 시원할까
고개를 살랑살랑
싫지 않는 모습
얼지 않을까
춥지 않을까
걱정이 오히려 멋쩍다
동백꽃과 사람
동백은 겨울에 꽃피는 것이
당연한 일
꽃의 아름다움도 꽃의 향기도
모두 저를 위한 삶의 한 방편
그를 찾아오는 것은 사람들과
배고픈 동박새 뿐
사람들은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다는
고마움 하나만으로도
바람에 고개를 흔들면
누구는 운다 하고
누구는 떨고 있다 한다
젊어서 신경 쓰지 않았던 늙음 같이
자신의 걱정은 소홀하면서
정말 몰랐다
김익택
정말 몰랐다
이유 없이
죄 없는 지아비를 버릴 줄은
국민이 하는 소리 외면하고
이불속에 만세를 부를 줄은
정말 몰랐다
바른 소리에 귀 닫고
적과 동침할 줄은
의리는 없는 줄 알았지만
정의까지 외면할 줄은
정말 몰랐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할 줄은
죄 없는 지아비를
적힘에 팔아먹는
인면수심일줄은
겨울에 피는 그 꽃
김익택
그 꽃은 꽃이면 당연이 있는
색도 없고 향기도 없고
씨앗도 없고 열매도 없다
나무에 쌓이면 꽃이 되고
마음에 쌓이면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
춥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어떤 꽃보다 맑고 밝다
도시 12월밤과 동백
김익택
동백은 반짝이는 네온의 수신호가
싫다는 뜻인가
빌딩을 차고 도는 밤바람에
네온에 잠 못 이루는 동백이 손사래 친다
사람소리 잦고
네온이 더 화려해지는 12월의 밤
꽃을 피우기 준비하고 있는
꽃 몽우리에 여민 붉은 빛은
살갑게 보이고 탐스럽게 보여도
그 속은 산모의 고통
도시의 밤 네온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동백꽃 몽우리는 붉기만 하다
동백꽃에 맺힌 눈물방울
김익택
지난밤 찬바람에
너의 꽃잎에
하얗게 맺은
얼음 물방울
내 눈에 비친
너의 모습
이렇게 쓰라린데
너는 얼마나 아팠을까
소리없이 운다고
울지 않는 것 아닌데
하물며
연약한 꽃잎이
얼음에 농익었으니
얼마나 아렸을까
지키지 못한 동백꽃 약속
김익택
늦게 찾아온 내가 원망스러웠을까
외면해도 보이는 눈물
네가 보지말라 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고개가 돌려진다
기회는 제한된 시간
그것 모르는 나 아니지만
나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
보고싶을 때 보고
만나고 싶었을 때 만난다면
미움이라는 말 필요 없겠지
이해라는 말은 부탁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깨닫는 일
변명 같지만 이해해 주길
고개를 외면하는 너의 등 뒤에
눈빛만 두고 나도
양심이 가만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
동백꽃 얼음 눈물
김익택
차갑게 떨고 있는
너의 언 가슴을 녹여주고 싶은데
그게 안되
너를 입술을
내 입김으로 녹이는 것도
너의 가슴을 꼭 안아주는 것도
그게 안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
인연 닿는다면 약속할 수 없는
억겁의 세월 어느 날
기약할 수밖에
12월의 동백꽃
김익택
얼었다 녹았다 말랐다
동태인 줄 아는 가
시들고 쪼그라든 꽃잎
날씨 탓 하는
제 모습을 보고 있는 양
원망의 빛 선연하다
12월에 꽃을 피워도
찾지 않는
벌 나비는 그렇다 하드라도
뭇 사람들은 꽃을 앞에 두고
앞만 보고
종종 걸음 치고 있다
동백꽃과 나 사이에서
김익택
저 곱고 부드러운 꽃이
꽁꽁 얼어 떨고 있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 역시
속앓이를 했을 지라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추울까 아프지 않을까
내 맘같이 너도 그럴까
네가 말을 건네도 알지 못하고
내가 말해도 듣지 못한다
공간과 시간 사이
주고받는 눈빛만 아릴 뿐
내 가슴을 튕기는
가야금 소리가 서럽다
세상 한바퀴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결코 짧지 않는 시간
단 한번도 봄 같은 포근한 날
피고 지는 겨울이 있었을까
너에게 일상일지라도
내 눈에 비친 너의 미소는
그 고통 죽지 않으면 면할 수 없는 것 같아
내 모르는 전설로 들어가
아픔을 읽어본다
동백꽃과 미의 상승 기대 효과
김익택
그래 네가 기다리는 건
어쩌면 펑펑 쏟아지는
하얀 눈일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존경은
고귀해야 가슴이 열리고
고난을 극복해야
보내는 박수갈채처럼
네 고운 얼굴에
마구 눈이 내려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내가 아파 눈물을 흘리면
삶의 미학으로
보일 수 있겠다
전쟁에서 돌아온 아들
버선발로
마당을 뛰쳐나와
맞이하는 어머니처럼
동백꽃은 말한다
떨어진 꽃을 사랑하는 사람 있었던가
참된 아름다움은 가슴에서 찾는 법
그 사람은 말한다
땅에 떨어진 꽃은
죽은 꽃이 아니라
누워있는 꽃이라고 말을 한다
떨어진 꽃잎에 누워
조용히 차분히
꽃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 한다
뜨겁고 붉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동백꽃은
사람처럼 슬퍼서 울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
동백꽃은 말한다
삶의 의무는
갈 때는 인사도 없이
좋고 아름다움은
가슴에 남겨두고
밑거름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모가지가 떨어져도 죽은 것이 아니라
누구의 삶으로 돌아 가는 것이라고
동백꽃 떨어지는 밤에
김익택
벌건 대낮 모가지가 떨어져도
어느 누구 관심 없는
동백꽃은
아무도 없는 밤
비벼도 외롭고 흔들어도 슬픈
바람소리로 운다
지은 죄라면 지켜야 할 삶의 임무
언 눈보라에
꽃을 피운 것밖에
삶의 단절 그 시간
시들고 쪼그라들어도
붉은 얼굴
사랑해도 사랑을 모르고
원망해도 원망을 몰라
스스로 모가지를 잘라
검은 땅을 붉게 적시고 있다
동백꽃 생채기
엄동설한 붉은 꽃 피어도
꽃구경 나온 사람들
천바람이
서둘러 집으로 내 몰아
저 만
홀로 피고 홀로 진다
배고픈 동박새만 찾아와서
없는 꿀 내 놓으라고
보드라운 가슴팍을
생채기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