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물안개가 너에게

 

김 익 택

 

 

 

 

눈이 없고

귀가 없고

입이 없는

여기 태어나서

여기서 사라졌다는 것

네가

기억해 주지 못하드라도

어디 어느 곳에서

너의 눈에 비친

언어로 다 표현이 안 되는

그 풍경을 기억해 주었으면

 

길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김 익 택

 

 

 

 

 

빤히 보고 있어도

잡지 못하는 가을이

바람을 앞세워

길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시간이 아쉬운 삶들에게

추억을 안겨준 채

시간이 가도 늙지 않고

비워도 비워지지 않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시간의 숙제를 던져 놓고

바람의 공간을 오고 가며

계절은 길없는길을 가고 있다

허약한 사람의 심장에

갚지 않아도 되는 부채

삶의 빚을 떠넘기고

 

연못 속에 가을

 

김 익 택

 

 

 

 

호수의 맑은 물에

가을이 붉은 심장을 그려 놓았다

그 위에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친구가 되었다

가끔 날아온 오리가

유선형 파고를 일으키고 지나가고

물고기가 원형 파문을 일켰지만

호수의 가을은 제자리를 찾았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낙엽이 떨어지면 떨어진대로

 

그 집의 가을

 

김 익 택

 

 

주인이 살지 않는

그 집은

단풍이 주인이다

 

단풍이 집안을 살피고

단풍이 손님을 맞이한다

나무는 햇살을 주셔 모아

나뭇잎을 곱게 물들이고

 

찾아오는 사람들

누구에게는 향수를

누구에게는 시심을

심어 주었다

 

깊어가는 가을

그 집에 하루 볕은

눈으로 즐기고

마음을 곱게 물들였다

안녕안녕

 

김 익 택

 

 

 

 

여름을 던져버린 따사로운 가을 햇살 한 줌에게

수줍은 붉은 나무 잎이 묻습니다

비워두고 떠나는 것이 아쉽지는 않지만

나 돌아 간 뒤 그 세상은 여기와 같은지를

글쎄요 그대 일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요

보세요 나는 이순간이 마지막일걸요

내가 나도 모르는 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러니 알지 못하는 세상 알려고 하지 마오

삶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생각하세요

아 이제 그만 이제 사라질 시간

안녕안녕

그 럼

 

김 익 택

 

보내야 하고 떠나야 하는 11월

안개를 위장한 미세먼지가

고요 속에서 하늘을 가리고

대지를 포위하고 있다

 

몸은 자유롭지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는

공간에서 모든 삶들은

죄명도 없이 포박을 당하고 있다

 

먼저 가려고 서둘렀던

참나무의 붉은 잎

안개도 아닌 오리무중에 답답해 하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좀비처럼 얼굴을 가린 사람들은

걸음걸이가 재빠르다

 

일찌기 계곡에 빠진 나무잎들은

어지럽게 물돌이를 하고

혼절에 빠진 시간들은

지겹게 돌다가

기다림의 미덕에 혼절하고 있다

 

 

그림자 너는

 

 

김 익 택

 

 

 

 

 

 

물음이 없어도

믿음은 있었겠지

바람 없어도

희망은 있었겠지

 

네가 있어

내가 존재하지만

 

입이 있어

고마웠다는 말 할 수 없고

감정이 있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어

 

너와 내가 아닌

눈을 가진 삶들에게

 

빛의 힘을 빌려

음과 양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삶의 희망과 미학을

전달 할 수 있는

그 의미만으로 도

충분 한 것이지

 

있어도 없었던 그 시간 속을

 

김 익 택

 

 

 

산다는 것은

날마다 타협을 하는 것이지

새로운 것에 적응한다는 것이지

불편한 진실을 극복한다는 것이지

내 마음에 가을비 내리고

내 마음에 낙엽이 떨어지고

내 마음에 눈이 내려도

사막에서 비를 기다리듯

그대 없는 공원에서

고개 드는 소리 없는 외침을

꾹꾹 눌러 돌려세워 놓고

저기 바바리 코트 숙녀

행여 그대일까

지나가는 커플과 커플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나에게도 있었던가

꿈만 같아

기대 같지 않는 기대

우연을 가장하며

있어도 없었던 그 시간 속을

어둠에 쌓인 뇌리는 책을 읽고

가슴은 시를 쓰고 있어

아쉬워서 울적하고

그리워서 외로운

그 시절로 돌아가

그대를 찾고 있네

그림자의 애환

 

김 익 택

 

 

 

그대

있었던가 없었던가

살았던가 죽었던가

평생

말 한마디 없이

거기 있었지만

관심 가져주는 이

아무도 없다

단 한번

불평불만없이

태양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생의 의미는

주인이 가져갈 뿐

삶은 흔적 없다

 

 

노란 은행잎과 하얀 안개

김 익 택

 

 

어디 아프고

무엇이 서러운가

거기 가만히 서있는

은행나무에게 안개가 묻는 듯

잎사귀 하나하나

어루만지듯 하고

은행나무는

내 온몸 양수에

잠든 것 같이 포근하다

그래

가는 것은 오는 것은

생이별 아니지

오는 것도 삶이고

가는 갓도 삶이지

어제도 하루였고

오늘 하루도

오늘 하루일 뿐

내일은 또 다른 하루일 뿐이지

안개는 은행나무에 그렇게

위로하는 듯 스며들어

한 몸 되고

은행나무는 노란 잎 떨구어도

생기 발랄하다

바람과 나무의 소통 법

 

김 익 택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바람이 휘어지는 것은

나무가 말을 하고

나무가 휘는 것은

바람이 말하는 것이다

둘의 의사 전달은

너를 위한 배려

함께 나누어야 하나되는 소통이다

그래서

나무는 바람을 빌려 얘기하고

바람은 나무를 빌려 얘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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