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열어 놓는 가을
김 익 택
가을은
우울한 사람
외로운 사람
그리운 사람
함께 웃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계절입니다
병아리 빛 피 빛으로 물든 단풍은
다 못한 아쉬운 가슴을 열게 하고
하양 파랑 노랑 빨강
산 들에 핀 야생화는
싱그럽다 못해 가슴을 울먹거리게 합니다
눈 시리도록 맑은 계곡은 닫혀있던 귀를 열게 하고
바람은 시원스럽다 못해 눈물 마르게 하지요
따스한 밝은 빛은
깊고 어두움 맘 빨래 줄에 걸어두게 하고
맑고 시원한 바람은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 씻어서 소독하게 하지요
이렇게 가을 하루는
사람에게 동물에게 감사한 마음 절로 들게 합니다
가을 오면
(가을 편지)
김 익 택
가을이 오면
보낼 곳 없어도
한 통의 편지를 쓰고 싶다
아스라히 남은
기억 저편 사람들
팬 팔로 사귀었던 어느 여고생
동생처럼 따랐던 예쁜 어느 여중생
지금은 모두
얼굴도 잊고 이름도 잊었지만
아스팔트에 노란 은행잎 떨어지고
길가 하양 파랑 코스모스 한들거리면
마음에 빗진 그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쓰고 싶다
사춘기 내내 마음 고생이 여간 아니었던
첫 사랑이었고 짝사랑이었던
늘 그리운 소녀 PS
그 소녀에게도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
내 마음대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몰래 좋아한 죄
한 통의 사과 편지를 쓰고 싶다
그들이 아니어도
가을이 오면
잊음이 그리움 되어서
마음 한구석 외로움이
서산에 지는 붉은 노을같이 애틋해
한 통의 편지를 띄워 보내 위로를 받고 싶다
가을 빛 메시지
김 익 택
가을날 하루 빛은
구원의 빛같이
고마움으로 가득하다
그 빛에서 익은 열매
독립 하는 날
정보도 없고 배려도 없이
땅에 뚝 떨어져
또 하나의 씨알이 되기까지
바람과 빛은 기꺼이 심부름꾼
비와 어둠은 사랑의 비밀병기
어머니 땅에서
연 초록 떡잎 두 개
세상밖에 나오기까지
빛은 생명
탄생의 기쁨은
또 하나의 인내의 시작
삶의 목적은
먼 훗날 튼실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책임
하나의 열매가 익기까지
김 익 택
모든 삶을 얼게 하는
한파와 동파
논 밭을 쓸어가는
폭우
논 밭을 다 태우고도 남을
가뭄
다 견디고 익은 열매이어야
달고 맛있듯
인내는
세상에서 잘 사는 삶의 벗
고통도 벗
장애도 벗
외상보다 무서운 것은
알지 못하고 썩어가는 속병
물 그 의미
김 익 택
물은 그릇의 용도를 따지지 않고
그릇의 크기를 따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멀리 하지 않고
싫어 하지도 않는다
시궁창
맑은 샘터
구별하지 않고 구분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 환경 그대로
꽃잎에 맺히면 꽃 이슬이 되는 것이고
두엄에 내리면 함께 썩는 것이다
작아서 힘 약하면
용해되거나 분해가 되고
많고 강하면 수용하는 것이다
아무런 불만도 없이
풀 꽃
김 익 택
풀꽃 피는 아침은
이슬은 싱그럽고
바람은 신선하다
화려하지 않아
피어도 잘 몰라
잡초와 섞여 있어도 어울리고
외로이 떨어져 있어도 어울리지
찾는 이 없어
반갑지 않는 손님이어도
천년 손님같이
웃음 잃지 않고
맞이하는 모습
아이같이 싱그럽다
꽃잎과 낙엽의 낙하 차이
김 익 택
꽃잎은 바람이 무겁고
낙엽은 어둠이 가벼운가
꽃잎은
제아무리 가벼이 떨어져도
머금은 울음같이 무겁고
낙엽이
제 아무리 조용히 입 다물어도
아픔같이 시끄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