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김 익 택
온 산야에 방초가 짙푸른 8월
길도 없는 산 속에 예초기 소리들이
이 산 저 산에서 거침없이 요란하다
산소인지 풀숲인지 모르는
아버지 산소를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식소리
처음에는 자주 돌보지 못한 죄 밑으로
두 번째는 나 아니면 앞으로는 누가 돌 볼까
희미해지는 효
묻혀가는 세시풍속
모두 시대 흐름 거추장스런 유산 아닐진대
나부터 자식교육 돌아보게 되는데
땀방울 뚝뚝 흘리며
빨리 하고 가자 하는 동생들 말에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예초기 소리가
머슴 머리카락 깎듯
마구 깎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이 산 저 산 요란한 기계소리에
더욱 마음이 퀭깁니다
2020년 8월 벌초
김 익 택
할머니
건강에 좋은 침은 아프고
건강에 좋은 약은 입이 쓰다고 하셨나요
2020년9월14일
손자
택이
건이
국이
그리고
증손 태우
할머니 산소 벌초하다
땅벌에게 쏘이고 갑니다
항상 입조심하라고
근이는 입술에
항상 생각하고 살아라라고
국이는 이마에
항상 잘 듣고 행동하라고
택이는 귀에
늘 조심이 다녀라고
태우는 다리에
손자들은 앞으로
5년 독감 걸리지 않도록
침을 놓아주셨고 늘 조심하고 살라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할머니 내년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지금 제사와 벌초의 의미
김 익 택
의식주가 풍부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
제사와 발초는
현세대들에게 귀찮은 유산 아닌 유산
강요도 할 수 없고 대물림도 할 수 없는 지금
아버지된 세대는
나름대로 걱정 아닌 걱정이 됩니다
일년 한번 하는 벌초
핵가족의 시대의 가족과 친지의 만남
그 연결고리는 잠깐 얼굴 한번 보고
헤어지는 집안 대 소사뿐입니다
모두 살기 바쁘다 보니 이해가 안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러나 제사는 조상을 기념하는 것
그 보다
형제간 만남의 장을 만들어 준 것이고
발초는 친지들의 만남을 장을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하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조상의 음덕이 어디 있겠습니까
옛말에 결혼식은 빗을 져도
장례는 빗지는 법이 없다 했습니까
조상을 추억하는 것 현시대만큼 얼마나 소중한 것이지요
오늘의 선진국 그 음지에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는지
암울한 일제시대와 동족상전 6.25를
지금 할아버지의 아버지세대들의
고통과 인내와 근면의 유산
나는 굶어도 내 자식에겐 공부가 삶의 목적이었고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지요
지금 세대들
안타갑게도 잊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무덤가의 들꽃
김 익 택
아버지 무덤가에 피는
들꽃은
어느 누구 심지 않고
보살피지 않는데도 해마다 핀다
올해는 구절초
지난해도 꿀 꽃
제 작년에는 잔대
시후
당귀
비수리
몸에 좋은 약초들과
내가 모르는
산 꽃들이 지천으로 핀다
그 속에
벌이 살고 나비가 살고
그 속에
개미가 살고 사마귀 방아개비 여치가 산다
고요한 산천에 굉음 울리는
예초기 칼날 앞에 방황하는
그들을 보며
삶의 정의와 진리와 예의가 무엇인지
자연
인간의 진정한 삶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이 깊다
아버지의 약 침
김 익 택
나 어릴 적 1970년대
지금의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탄자니아 시골보다 가난했지요
학교 갔다 돌아오면
소 풀 베고 소 풀 먹이는 일을 하다 보니
벌에 쏘이고
진드기 물리는 것은 일상생활의 일부분
집에서의 생활보다 산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2020년 지금은 디지털시대
요즘 아이들에겐
불과 50년전 할아버지의 시대는 전설 아닌 전설
벌에 쏘이고 진드기에 물리면 죽는 줄 압니다
그 시대의 겨울은 집집마다 땔감 준비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나무는 밥을 짓고 온돌방을 덮이는 의식주의 기초적인 재료였고
집집마다 쌓아 놓은 땔감나무 높이는
부유의 상징이었고 부지런함의 측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산은 풀 한 포기 보기 힘들 정도로
말끔했지요
더구나 6.25전쟁 후 이어서
대부분 산은 벌거숭이 이었습니다
나무 한 짐 하려면 더 멀리 더 높은 산 가야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1980년대 땔감이 연탄으로 바뀌고 다시 가스와 전기로 바뀌고
소 먹이가 사료로 바뀌고 부터 산은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정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년에 한번 하는 벌초는
우거진 수풀을 제거하는 힘든 노동이 되고 말았습니다
산소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서 그런지
땅 벌이 2.3년마 봉분에 집을 지어서 벌초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지요
발초하다 쏘이면 자주 찾아 뵙지못한 죄책감도 들기도 하고
그냥 날라가는 나비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지요
그러니까 5년전
벌집이 있는 곳만 남겨두고 가려니 언제 오나 싶고
보기가 싫어서 얼굴 가리고 장갑 끼고 예초기를 들이다 댔습니다
순간 수십 마리가 공격을 했고 옷 위에 머리 위에 달라붙어 쏘기 시작했습니다
족히 스물방을 맞은 것 같았습니다
한시간 반 운전하고 짐으로 오는 동안 온 몸이 아팠고 머리는 어지럽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약을 사서 먹고 비몽사몽 앓다 잠이 들었습니다
이틀동안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 땅벌 침이 나약한 아들 건강 걱정하는 침이었을까요
그해 전국을 강타한 A독감에 온가족이 걸려 고생을 해도
나 혼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5년동안
뿐만 아닙니다
혈액순환과 정력에 좋다는 비수리
치매 당뇨 항암에 효능이 있다는 당귀
지혈작용 말초혈관장애에 효능이 있다는 엉겅퀴
살균해독 불면증개선에 효능이 있다는 제피
이제는 누구 하나 채취하지 않아
산소 주위에 흔히 볼 수있습니다
형제는
김 익 택
인연이 있기에
만남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기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물며 형제는
필연이며 천연
보면 즐겁고 안보면 보고 싶습니다
그런 것을 두고
누구는 우애라고 했고
누구는 사랑이라 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모르면 죄책감 느낍니다
못 도와 줘서 미안하고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머리가 기억하고
심장이 뛰는 동안
죽음 아니면
변치 않는 DNA입니다
(益)자 돌림 형제
김 익 택
고향이 사라져도
내 생애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리움
그 그리움의 중심에는
같은 할아버지 자손의 사촌형제들
명절차례 기제사 잔치 생일
한 멍석에서 절하고 한 밥상에서 밥 먹고
한 방에서 잠을 자고
기쁜 일 나쁜 일 함께 웃고
함께 걱정하는 한 가족
형을 존경하고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워지지 않고 잊어도 잊어지지 않는
그 많은 세월에 녹아 있는 추억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짙어가는
아쉬움과 그리움들
서로 늙은 얼굴 보고 있으면
반가운 이면에 서글픔은
건강하세요 몸조심해라 그 말밖에 할 수 없는
시린 가슴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립다 아프다
해마다 벌초 때가 되면
김 익 택
언제였던가
할아버지 할머니 가신 날이
기억 가물가물하다
당신이 뿌리신 자손
줄잡아 이백 여명
정치 교육 경제 행정
이 나라에 일꾼인데
하지만 일년 단 한번
기제사 벌초
찾아 오는 자손 별로 없습니다
인연의 끈
아주 끊었다면 몰라도
당신 살아계셨다면
올해 130여세
당신의 낳으신 자식 9남매 손주들 50여명
인정 많고 인자하시고
사랑 많고 너그러우신 사랑 이어받아
모두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손주들 기억속에
당신은 전설 속에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