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삶의 선물

 

김 익 택

 

저 나무에 피는 매화 100년

말랑말랑한 몸

뻣뻣한 몸 되기까지

보이지 않아서

알 수 없는

베푼 향기 몇 가마이며

미학에 설렌 사람 몇십만명 될까

말없는 실천과 말없는 교훈

어느 삶이 너만 할까

은은한 향기 시기하듯

두서없는 북풍 가지를 흔들어도

꽃을 찾는 꿀벌 소리

만원 경기장 못지않다

통도사 골기와 매화

 

김 익 택

 

 

하늘 밖에 모르는 통도사 기와지붕은

천년을 지탱해오는 동안

비가 새지 않으면 관심 밖

 

태양에 닳는 세월에

기와골에는

이끼가 자라고 버섯이 자라

그들 만의 삶의 역사를 만드는 동안

쏟아지는 비 소복소복 내려 앉은 눈은

그에게 풍화는

영화가 아닌 고난 아니었을까

 

그동안 그의 가슴에서

수많은 삶들이

경을 읽고 도를 닦는 사람 얼마나 많았을까

 

소나무의 말없는 위로는

솔향만이 아니었으리라

소리로 전하고 빛으로 전하는 푸른 위로는

삶의 화두 한자락이 아니었을까

 

눈바람에 꽃을 피워

얼어 죽어도 웃으며 향기를 흩날리는

저 분홍 매화 모습

그들의 찾고자 하는 삶의 참모습 아닐까

기다리는 꽃 매화

 

김 익 택

 

겨울내내 매화가 피기를

내가 왜 기다리는 지

매화가 피는데 내가 왜 반가운지

누가 물으면

겨울 속에 봄을 알리는 꽃

고목에 피는 꽃

누구나 하는 말

평범한 대답 늘어 놓은 뒤

위안을 받고 가르침을 받고

존경스러운 빠뜨린 설명이 미안하다

아무튼 나에게 매화는

약속 없이 보고싶고

약속하지 않아도 기다려지는 꽃

올해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올해는 어떤 참 모습을 기록할 수 있을까

맞이할 수 있다는 기쁨에

설레게 하는 꽃이다

눈 내린 날 매화 담기

 

김 익 택

 

언 눈을 머리에 이고 피는

너를 보고 있으면

나는 이미 화롯불 가슴

 

눈 앞에 엄청난 광경을

어찌할지 몰라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다

 

초조한 그 순간에도

기온은 눈을 녹이고

바람마저 눈을 떨어뜨리고 있다

 

조리개 셧트 감도

보는 마는 둥

구도를 찾지만

마음이 들지 않아

여전히 뛰어다니고 있다

철면피

 

김 익 택

 

보일 듯 말 듯 연초록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2월

계절을 따지지 않는 바퀴벌레가

언 발에 꽃을 피우고 있는

매화에 숟가락을 얹혀 놓았다

꿀벌이 항변했다

달콤한 향기와 꿀을 만드는 것은

매화일지 몰라도

꿀은 매화 혼자 것이 아니다 라는

바퀴벌레의 변론은 그럴 듯했다

그가 떠난 뒤 매화 꽃술에는

날카로운 갈퀴가 생체기를 냈고

씻어도 씻어지지 않는

온갖 오염 바이러스 온상지를 만들어 놓았다

분탕은 참을 수 있지만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못 참는다고

꿀벌의 항변에

만신창이가 된 매화가

오히려 꿀벌에게 위로를 했다

진리를 아는 삶들에게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매화의 소신

 

김 익 택

 

 

바람이 국경이 없고

빛이 국경이 없듯이

그대

꽃과 향기는

불경의 가르침이며

침향의 소신이던가

평생

법고소리에 깨어나서

범종소리에 잠든 세월

몇 백년

어느 고승이 그대만큼

불경을 음덕(陰德)하며

침묵으로 살았을까

해마다

그 빛 그 향기 잃지 않고

피고지는 것을 보면

 

 

홍매화의 설교

 

김 익 택

 

나 좀 살려주세요

저에게

불길한 뭔가 일어나고 있어요

세상의 온갖 고민

저 혼자 가진 것처럼

절을 찾는 사람들

 

일주문 사천왕사 부릅뜬 눈이 무서워

쪽문을 드나드는데

찹쌀떡같이 가슴에 와 닿는

고승 법문같이

눈 앞에 나타난

홍매화 앞에서 회포를 푼다

삶은 잠깐

 

김 익 택

 

 

지나고 나면 짧은 삶 잘 살았는지 못 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불만은 있었고

열심히 살았지만

행복한 기억보다 아픈 기억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 많았지만 이루진 것 없고

갖고 싶은 것 많았지만 가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것이 삶이라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부러워할 필요 없다고

남을 위한 희생 또는

봉사한 기억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나를 위해 살아도 늘 부족했습니다

목적은 꿈이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나니

의지는 건강이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사랑도 자유도 평화도 미래의 희망까지

나의 몫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제 몸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한갓 노파일 뿐

권의 존경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착각을 알았을 땐

초라한 늙음이 서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빈바람이

삶의 무거움을 깨닫게 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김 익 택

 

 

고맙다는 인사는 꽃이 하는 걸까

봄 바람이 하는 걸까

고개 숙인 봄 인사는

봄 바람이 하는 걸까 꽃이 하는 걸까

 

1월부터 기다리던 꽃 소식은

매화로는 모자라

창문 밖 벚나무 우듬지를 살핀다

 

내마음에 고개를 내민 꽃은

뿌리 없는 내 정신에 싹을 틔워도

강 추위는 늘 새롭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봄은 멀기만 하다

 

 

보시하는 매화

 

김 익 택

 

 

사람 구별하지 않는

너는

이 겨울의 귀한 손님

찾아오는 사람

마음 무겁지 않게

눈으로 담아가기 아쉬우면

코로 담아가고

그래도 아쉬우면

가슴에 담아가라고

아낌없이 향기를

나누어 주고 있다

통도사 홍매화는 법고소리에 피는가

 

김 익 택

 

 

통도사 홍매화는 가슴을 두드리는

법고소리에 피고 범종소리에 지는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통도사 산문은

 

겨울 같은 봄 봄 같은 겨울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찾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상상속의 하루

 

김 익 택

 

 

그곳 여행은 하얀 생각은 모자랐지만 하얀 상상은 무한대였지요

하나도 이룰 수 없는 막연한 상상에 꿈 하나를 얹은 것이지요

무개가 없으니 부담감도 없었습니다

실체 없는 그 세계는 무엇으로도 충족할 수 없는 무한의 세계

희망은 찬란했지만 제자리 돌아왔을 땐 빈 손이었습니다

읽어서 느끼고 체험해서 내 것이 되는 책이 아니었지요

가슴에 바람만 잔뜩 들어 있었지요

준비도 없었고 목적도 없었습니다

지친 삶의 휴식처 그것마저 없다면 삶은 더욱 팍팍했지요

사람이면 모두 간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 상상이 지금 현실이 되었지요

사람 대신하는 전자제품 사실은 50년전은 꿈이었고 상상이었거던요

앞으로는 자가용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가상현실같은 현실이 오겠지요

 

 

눈물이 나네요

(내 몸에게 보낸 편지)

김 익 택

 

 

고마워요

한평생 무식한 놈하고 사느라고

내 몸이라고 내 생각대로

마음대로 부려 먹은 것

하나 둘 탈이 나고부터

고맙다고 해도 눈물이 나네요

 

마음이 불편한 건

돌아서서 참으면 되지만

몸이 불편한 건 숨쉬는 것까지

고통이 따르네요

 

미안해요

후회막급 눈물이 나네요

세월은 허리와 다리

골절을 삐걱거리게 하고

뇌와 골이 뻥뻥 뚫리는

하늘이 부르기 전

 

아픔도 슬픔도 보듬고 가야 할 친구라고

활동을 제한하는 내 몸이 내 마음에게

때늦은 휴식과 영양제를 두고

고마워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네요

 

사랑해요

몸과 마음이 받아드려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내가 나에게 꼭 해야 하는 건

사과는 양심이지요

 

항상 어울리는 바람과 빛의 관계같이

무지로 살고 무식으로 살다

불편을 불편한지 모르고 서로 주고받은 상처

위로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미안할 것 같아서요

 

통도사 매화가 주는 사랑

 

김 익 택

 

눈으로 보는 설렘도 좋지만

코로 스미는 기쁨도 좋고요

코로 맡는 행운도 좋지만

가슴에 새긴 사랑도 좋습니다

그대 미학에 취하다

 

김 익 택

 

 

붙잡지 않아도 더 머물고 싶은

이 묘한 기분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묻고 싶고

가지고 싶은 건

하나도 얻지 못했습니다

 

물어도 하고 부탁도 하고

간곡한 요청도 했지만

그대는 한결 같이 미소 뿐입니다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참으면 그때 느낌이 올까요

 

한 겨울 반나절 그 배고픈 줄 모르고

그대 미학에 취해도

내가 얻고자 하는 사진 한 컷

담자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그대 향한 나의 바람

 

김 익 택

 

 

설살가상 낮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금상첨화 낮말도 있지요

 

그대와 나사이 천연은 아니었지만

인연이고 십습니다

 

간극과 간극사이 있어도

부담 없는 믿음이고 싶습니다

냉해 입은 통도사 매화

 

김 익 택

 

 

심경이 복잡하네요

그렇게 기다렸던 오늘인데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그윽한 향기도

추위 앞에는 어쩔 수가 없었나 보입니다

 

꽃잎은 말라 시들하고 향기는

코 맞춤을 해야 겨우 맡을 수 있었습니다

 

늙은 매화나무의 참상

 

김 익 택

 

뼈마디마디마다

통증을 느껴야 압니까

 

부러진 가지 끝에서

피는 꽃이

아무리 싱싱해도

아픔은

그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에 장사 없듯

 

그도

한 해 두 해

모진 겨울은

죽음을 받아드리라는 명령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

내 마음이

절로 엄숙 해 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김 익 택

 

 

닦아도 흐르는 눈물만 있던가요

참아도 차오르는 사랑도 있지요

 

그대에게 나에게 주는 기쁨은

이유 없고 보상 없는 무조건 사랑

 

내가 그대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런데 나는

바람보다 가벼운 고맙다는 말뿐입니다

 

 

 

통도사 매화와 사람들

 

김 익 택

 

 

그 어디 꽁꽁 숨겨놓은

비밀의 향기를

빛이 유인하고

그늘이 살짝 감춘 미학을

바람이 은근슬쩍

훔쳐보는 그 사이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이

하루 종일

꽃을 에워싸고 있다

 

 

 

 

중용의 삶 매화

 

김 익 택

 

 

봄볕 없는 겨울 봄을 알리는 꽃

 

좋은 일도

시기하는 사회에

오직 너만

적도 없고 아도 없다

 

귀 없고 입 없어

해도 득도 없는

반반의 삶

중용의 진리

 

찾아오는 누군들

가리지 않고

모두 반기는 너는

적이 없는 삶

 

앞으로도 영원히 오직 너만 오롯하다

매화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은

 

김 익 택

 

기다리면 으레 피는 것을

꼭 추운 겨울에 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건 나만 그럴까

 

손발이 시리고 귀가 따가워도

눈이 시원한 것은

거짓 하나 없는 맑은 미소와

티끌 하나 없는 맑은 가슴같이

내가 맑아지는

기분 때문만이 아니겠지요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은

일년 시작이 잘 될 것 같고

일년 숙제를 푼 것같이

내 마음이 푸근한 것은

일시적인 마음만이 아니겠지요

매화의 조용한 외침

 

김 익 택

 

약이 되고 병이 되는 것은

삶의 몫

 

삶은

행운이며 축복이라고

 

뜨거운 가슴

죽 쑤어 개 주지 말라고

벽 보고 외치는 일

 

조용히 피어

조용히 지는 너만 못하다

조용한 봄의 반란

 

김 익 택

 

 

아직도 언 땅은

달래와 냉이가 움을 허락하지 않고

종달새는 봄 알리지 않았는데

태양이 매향을 앞세워 산중 절 방문을 두드린다

내 몸 이어도 자람을 모르는 손톱 발톱처럼

오는 봄에겐

무작정 기다리림도

애걸복걸 기다림도 구별이 없다

지구공전을 감지한 햇빛이

두꺼운 이불을 걷어 치우고

자구자전을 감지한

바람이 삶의 잠을 깨우는 동안

조용한 봄의 반란은

준비하지 않아도

문을 활짝 열고

맞이하고 싶은 반가운 손님이같이

조용히 문득 오고 문득 간다

 

손님을 맞이하는 매화

 

김 익 택

 

 

겹겹이 물결치는

통도사 골기와에

아지랑이가 피는 날

만리길을 달리는 고승 법문같이

매화가 피었다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은

문을 꼭꼭 닫았고

사르는 향은

출입을 제한하듯

바람이 거둬갔다

 

담을 넘는 독경소리에

발맞추어 핀

매화향이 두 팔을 벌려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봄이 오는 길

 

김 익 택

 

 

고향을 갈 채비를 하는 겨울 철새

몸단장을 하기 전

남쪽의 천사의 소식은 기다리는

꽃망울이

이월의 비에 눈물을 흘렸다

 

만남과 떠남을 알리는

비바람이 나무가지를 흔들었다

속뜻을 늦게 알아차린 철새들은

하나 둘 모여 조잘조잘거렸다

 

양지쪽 마른 풀섶에서

쑥 잎 뾰족이 머리를 내밀고

내일 얼어 죽어도 매화는

바람이 눈물을 닦아주었다

 

 

 

 

가지마 가지마

 

김 익 택

 

 

지금 떠나면 보고 싶으면 어떡해

아무 약속 없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까 봐

가슴이 떨려 아무것도 못하겠어

나만 그런가

사랑한다는 말 못하겠어

가는 길이 달라서 하는 일이 달라서

가지마 가지마

그 말을 하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것 같아서

사랑이 장애가 되는 가

사랑하면 바보가 되는 가

내가 나를 의심하고 묻기를

사랑한다는 말 쉽고도 어려워

놓아줄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나

외로워야 알고 아파야 익는

생각이 여물고 여물어서 굳어버린

사랑은 싫다

다정해도 거리는 있고

사랑해도 먼 거리를 좁히지 못해

말 못해 알아듣지 못하는 너

오늘도

달 보고 묻고 별 보고 묻는다

가지마 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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