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침묵 속에는
김 익 택
물이란 물 모두 꽁꽁 얼어붙는
1월 말
저 매화나무는 흙 속에 썩은 영양분 물과
발효되어 약이 된 물을 빨아들여
꽃이 되기 위해
무슨 계획 무슨 준비를 했을까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야위고 썩은 몸통의 고통과 통증 뿐
아파도 소리 없고 죽어도 침묵이다
참고 기다림 끝에 꽃눈을 틔울 때까지
단 한번도 삶의 의심 없었을까
손을 호호 불며 찾아오는 사람들
어느 가슴에 미학이 되고
어느 인생에 약이 되는 법을 알고 있었을까
존경 경의 앞에 의심하는 나를
영하바람이 내 볼을 후려치고 지나간다
하찮은 걱정을 바람이 돌려세우다
김 익 택
새싹이 돋을 때까지 집을 떠나지 못한 갈대꽃이
바람으로 갈 수 없는 곳을 가기 위해 백로 밥이 되었다
뼈를 녹이고 돌도 녹이는 백로 위장에서
살아 남는 것은 배탈 아니면 겨워내야 사는 법
설사 배출이 된다 해도 새로운 삶의 보장은 없다
태풍이 불면 누워서 견뎠고 비가 오면 고개를 숙여
삶을 영위했지만 새로운 삶은 다르다
백로가 쪼아서 떨어진 갈대 꽃씨와 바람에 어디론가 날려가는 꽃씨
운명 역시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내일의 삶을 걱정하는 내가
눈에 비친 일시적인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이 우스워 돌아섰다
찬바람이 제갈 길 가라는 듯 옷깃을 돌려세운다
세대 차이
김 익 택
고생과 행복의 그 차이에서 속을 끓이는 어머니는
쌀 한 톨을 이야기하고
스테이크를 먹는 아이가 포크를 내려 놓는다
어머니 눈 빛이 불길이 천정을 향해 솟고
가슴이 설렁탕 국솥에 눈물이 넘쳐 흘렸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사랑과 행복을 준 것은
5살에 이미 끝났음을 잊고 있었다
개성과 존중은 사랑임을 알지만 예의 모럴에 벗어난 행위가
자책으로 느끼는 어머니 뜨거운 설렁탕을 개를 준 느낌이다
화해는 사과이지만 개인주의 신봉자가 된 아이
자신의 폭발이 효와 예의의 차원이 아니라 간섭에 자존심이 상했다
사랑은 싸움을 생각하지 않고 싸움은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
의지만 있을 뿐이다
구수한 맛과 달콤한 육질이
어머니의 가슴에는 사랑의 국 그릇을 비웠고 아이의 포크에는
스테이크가 말라갔다
세밑 매화구경
김 익 택
설날에 꽃구경 가자니요
세밑에 꽃타령은 웬 말인가요
아직 냇가에는 얼음이 꽁꽁 얼고 찬바람 생생한데
따뜻한 온실이 아닌
산속 사찰에 꽃 구경 가자니요
눈 오지 않았으니 눈꽃은 아닐테고
설마 계곡 바위에 얼음 꽃은 아니겠지요
아니면 천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이
부처님 얼굴에라도 피었나요
가 보면 안다고요
죽은 어머니 보듯 반가운 꽃이 피어 있다고요
아무 소리 말고 따라오라 하니
따라는 가는데
거짓 말 하는 형부 아니지만
솔직히 기대가 안 가네요
아무튼 오랜만에 온 가족 만났으니
꽃을 안 봐도 좋으니 한번 가보자구요
집으로 가는 길 1
김 익 택
하얀 눈 내린 길을 걸어간다
발자국도 없는 새 길을
눈이 가리키고
가슴에 익은
발자국이 길들어진 길을
아무런 의심없이
날아가는 새도 관심주지 않고
등을 때미는 바람
온 몸 시리게도 하는
눈길을 홀로
반갑게 맞이하는 아이
포근한 아내
따뜻한 안방을 생각하며
눈보라 불어 귀 시리고
코 아파도 가슴은 군 고구마
생각만 해도 행복한 집을 향해
눈물로 말 할 수 없고
사랑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슴에 화롯불을 피우며
존경과 사랑의 상징이 되는 것은
김 익 택
응원원군과 지원군을 보내지 않아도
승전보를 알리는 아군처럼
그대 소식은 참 고마웠습니다
물론 제가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최상의 컨디션 최상의 환경에서
처음 눈을 뜬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요
더구나 컨디션과 환경이의 최악의 조건이라면
목숨을 건 삶이지요
선구자의 삶이 그러하듯
그대는 해마다 눈을 뜨고 미소를 띄우죠
물론 자신을 위한 삶이지만
그대에게 힘을 얻는 삶들에게 희망이며 사랑이지요
가슴이 없는 삶이 가슴을 가진 삶에게
존경과 사랑의 상징이 되는 것은
그만한 의미가 있는 법
자연의 법칙의 단면을 손수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지요
섣달 삼경
김 익 택
아파트 불빛이 모두 꺼진
섣달 보름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창가 선 나를
빈 하늘의 하현달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지금쯤 저 어느 호수가에는
얼음이 쩡쩡 울고
두루미는 저수지 숨구멍에
옹기종기 모여
안전하게 잠자고 있을까
잠들어도 잠들지 않는
도시 부엉이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문득
아직 눈뜨지 못한
매화나무 꽃 몽우리가
찬바람에 울겠다 싶어
남쪽을 바라본다
깊은 밤 컴퓨터 앞에서
김 익 택
탁탁 컴퓨터에 앞에 앉아
구글 유투브 네이버에서
잔 지식 정보를 헌팅 하는 나
말라버린 내 안에 있는 글을
채우려고 책을 들었지만
눈뜬 장님같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눈도 뇌도 정신도
젊었을 때를 나무라는듯
비벼도 침침하고
금방 읽어도 잊고
정신을 바짝 차려도 흐릿하다
확실히 아는 것은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살아온 날 보다
짧아도 너무 짧다는 것
뒤늦게 채우려는 양식
예나 지금이나 방해꾼은 잠이었던가
따가운 눈 흐릿한 정신
잠들지 않으면 피할 방법이 없다
바람이 권한 소주 한 잔
김 익 택
형체가 없어 장해물도 없고
목적지가 없어 머물지 않는
지난 밤
내가 쓴 편지를
오늘 그 어디서 누가 읽어 봤을까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구름같이
먹지 않아도
순식간 사라지는 물안개같이
이름 모를 산속 맑은 계곡
피어도 모르고 죽어도 모르는
들꽃으로 살다
냇물이 되어주었으면
책임 없고 권리 없지만
마시면 삶이 되는
생명의 근원 소금같이
그대가 권하는 소주잔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봄을 알리는 매화
김 익 택
뼈속으로 침투하지 못한 고추바람이 각혈하는 날
눈치 없는 매화가 고추바람을 꼬리를 잡고 피었다
아무리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어 댔지만
앙상한 매화가지는 미꾸라지 지느러미같이 피했고
사람들은 고향 찾아가는 힘찬 연어꼬리처럼
바람을 거슬러 핀 매화를 맞이했다
눈과 동맹을 결성한 바람이 꽃잎을 훑고 지나갔지만
전신주에 앉은 까치가 설 지나간지 보름이 넘었다고
바람에게 가위질을 했다
하나 둘 모인 사람들이 늘어 놓는
매화 찬사 때문이었을까
자취를 감춘 고추바람 자리에 매화 향기가 여유를 부렸다
01월10일 매화 보고
김 익 택
꽁꽁 언 저 부르튼 가지에
활짝 핀 매화는
욕심으로 피고
자만심에 피어서
고생을 자초한다 해도
누가 욕하고 나무랄까
눈물을 뚝뚝 흘리며 피어도
봄을 알리는 반가운 손님
산속에 홀로
남모르게 피어도
벌이 알아주듯
누가 뭐라해도
봄의 첫 탄성이며
소리 없는 깃발이다
세상에 어느 삶이 너만큼
이 추운 겨울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될까
매화 그 순수에 대하여
김 익 택
있는 색을 아무리 걸러도
순수한 분홍꽃이
너 말고 또 있을까
없는 색을 보태지 않아도
풍성한 하양꽃이
또 너 말고 있을까
눈에 담아두면 정신이
맘에 담아두면 가슴이
맑아지는 꽃이
너 말고 또 있을까
어제 죽은 사람
오늘 하루 소중함을
말했다면 몰라도
너도 하고 나도 하는
흔하디 흔한 말
희망을 말하지 않고
사랑을 말하지 않겠네
북풍 설한에 피는 너는
김 익 택
미치지 않고서 야
이 북풍 설한에
꽃을 피울 수는 없는 일지
눈만 내놓고
꽁꽁 싸매도 추운 날씨에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살짝 만져도 뭉개지는
연약한 꽃을 피운다 말인가
내가 존재해야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살아야 네가 피운 꽃은
열매를 맺는 것인데
성급하게 피어 목숨을 건다 건
희망과 안타까움은 줄지 몰라도
거룩한 삶일까 싶다
매화의 아침인사
김 익 택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
죽지 않는 해도 얼지 않는 삶이 있을까
하물며 만지기도 연약한
저 분홍 꽃잎 얼지 않을 수 있을까
바람만 불어도 연약한 너
오히려 네가
지난 밤 안녕하셨냐고 묻는듯 웃고 있다
꽃 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울고 있음을 내가 몰랐던가
귀 얼까 빵모자를 쓰고
옴 몸을 감싼 오리털 코트를 입고도
떨고 있는 나를 걱정하는 듯
연분홍 꽃잎이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