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김 익 택
너의 붉은 얼굴이
활활 타올라야 여름다운 여름이던가
세상에 모든 생물들은
덥다고
목마르다고
나무도 울고 새도 울고
바람도 숨죽이고 우는데
너만 홀로 알 몸으로
저렇게 쏟아지는
태양 한가운데서
더위를 뒤집어쓰고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꼿꼿이 고개를 들고 꽃을 피우는 있는 것일까
무슨 계획 있기에
무슨 잘못 했길래
삼복더위에 피고 지고 피는 것일까
사랑도 모질면 집착이 되고
그리움도 모질면 병이 되는 것인데
무슨 원이 있기에
무슨 원한이 있었길래
모든 꽃이
모든 생물이
숨죽이고 있는 삼복 더위에
당당하게 피어서
보는 사람
존경스러운 나머지
안타깝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것인지
그 비밀을
누구에게 물어 볼까나
비가 알고 있을까
바람이 알고 있을까
아픈 매미소리 밖에 없는 한 여름
불 보다 뜨거운 사랑 해보지 않는 사람
태양같이 뜨거운 사랑 해보지 않는 사람
너를 보고 있으면
들려오는 소리
모두
붉은 울음이다
싱거운 울음이다
지치는 울음이다
고택의 백일홍
김 익 택
그 옛날
글 읽는 소리
끊어지지 않던
고택 앞에
붉게 핀 백일홍
허리 꾸부러지고
팔다리 비틀어져도
화무십일홍은
거짓말
올 여름도
삼복더위 마다 않고
아웅다웅 피고 지고
이열치열 피고 진다
그렇게
피고 지기를 세 번해야
나락 익는 가을이 온다지
8월의 당신 (백일홍)
김 익 택
8월 강렬한 태양아래
얼굴 붉게 타는 모습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이 탑니다
세상 사람들
덥다 땀띠 난다 피부 탄다
모자 쓰고 양산 쓰고
그래도 못미더워서
외계인 얼굴같이
자외선 차단제 하얗게 바르고
그래도 또 의심스러워서
바깥 출입 삼가 합니다
여름 다 가기 전
100여일
하루도 쉬지 않고
오직 당신만
붉은 얼굴 더 붉게
태우고 있습니다.
백일홍 열정
김 익 택
그대
무슨 애타는
사연 있는지
염천에
백일기도 하듯
밤낮 가리지 않고
피는 것인지
어디
돈 주고 물어볼 일이다
백일홍 그 인내
김 익 택
추우면 춥다고 말 못하고
더우면 덥다고 말 못하는
그 심정
참고 견뎌온 미덕으로 피는 꽃이라서
아리도록 붉은 것일까
줄 수 없는 불행
받을 수 밖에 없는 열통 불통
자양분으로 승화시켜 피는 꽃이라서
더운 한여름 피 석 달 열흘
피고지는 것일까
백일홍 너는
김 익 택
세상의 삶들 모두 헐떡거리는
섭씨 38C°
백일홍은 무슨 모진 사연 있길래
불볕 더위에 피는 것일까
삶 보다 더 뜨거운 것이 있다면
사랑
그 사랑도 피하는 더위에
붉은 입술
붉은 가슴
붉은 마음으로
어쩔 수 없는
보는 사람이 더 안타까운
걱정으로 피는 것일까
죽어도 좋을 만큼
그리움 아니면
낮에는 꽃잎을 접고 쉬어도
어느 누가 나무랄까
어제도 오늘같이
오늘은 내일같이
피어서 지지 않을 것같이
피지 말고
좀 쉬었다 피지
백일홍이 뚝뚝
김 익 택
백일홍이
뚝뚝
눈물을 흘린다
제 꽃잎 떨어진
그 자리에
한때 화려함은
불볕 더위같이
활활 타올라
지칠 줄 몰랐으나
사정 없이 후려치는
비바람 앞에
어쩔 수 없는 일
삶의 몰락 아니라
청춘은 한때라는 사실
자연이 잠깐
일깨워 준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