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판지 버드나무가 나에게 말하기를

 

김 익 택

 

여기 오신지 몇 년만인가요

5년인가요 10년인가요

한때는 아름답다며 일년에 몇 번을 오시더니

내 늙어 머리는 썩고 팔다리가 꺾이고 나니

발걸음을 끊더니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나요

당신 매번 내 집 앞을 지나치면서

힐끔힐끔 처다 봤을지는 모르나

단 한번도 들리지 않았지요

나도 이해는 해요 옛날같이

밤잠 설치도록 그립고 아름답지 않아서

오시지 않음을

그래도 섭섭한 것은 섭섭한 것이지요

늙으면 잃는 것은 청춘뿐 아니라

아프고 외로운 것이지요

감정을 가진 사람들 너와 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발걸음을 끊으니 원망도 아니 할 수 없네요

지금 당신 보고 있듯이

나 이제

아니 우리 모두

봄이 와도 그 흔한 푸른 잎도 피우지 못하고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올해가 마지막인지 내년이 마지막인지

나도 내 삶 모릅니다

아름다움이란 젊어야 꼭 아름다운 아니지 않나요

아무튼 이왕 오셨으니

기억과 추억 한없이 원없이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대 오늘 지나면 언제 오실 지 모르고

오늘 같은 나 마저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4월의 선물

 

김 익 택

 

동식물을 막론하고

태어나는 아이와 태어나는 새끼들

봄에 피는 움

봄에 피는 새싹들

귀엽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는 것이 있던가

연초록으로 뒤 덮은

4월의 산은

보드랍고 싱그럽지 않는 것이 없고

풋풋하고 향기롭지 않는 것이 없어

꽃을 피우지 않아도 꽃밭이다

순수가 삶의 투쟁을 알기 전

의리가 부의 실리를 알기 전

사랑밖에 모르고

정 밖에 모르고

도의밖에 모르는

4월의 연초록은 죽어도 다시 보고 싶은

천상에도 없고 지상 밖에 없는

삶의 축복이고 삶의 진리의 근본이다

잃어버린 언어 자각

 

김 익 택

 

 

세상이 사방팔방 훤하게 열려 있어도

내 머리속의 언어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렇다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력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필요한 언어는

단 한자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 흔하고 흔한

아름다운 사랑의 얘기도 슬픈 이별의 얘기도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끊듯이

하루 온 종일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내 다섯 감각기관 생생하게 살아있어도

내 지각 사색도 독서는 감흥이 없습니다

하루 정성적인 삶의 생활 어느 날과 다르지 않는데

언어 창작만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세상의 공짜는 한도 없습니다

 

김 익 택

 

 

아무일 없는 듯 보내는 하루 속에도

오늘 할 수 있는 일 없는 것 아닙니다

찾지 못해 못하는 것 아니라

게으름속에 하루를 숨은 것이지요

태양이 세상을 밝히고

들꽃이 불러도 이불 속에 누워 있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눈으로 봐야 뇌가 생각을 하고

뇌가 생각해야 가슴이 추함과 아름다움을 깨닫습니다

삶은 활동하지 않으면 무의미 합니다

이상은 실천하지 않으면 진흙 묻은 다이아몬드입니다

피곤해서 귀찮아서 하지 않는 핑계는

네 안에 지혜 하나를 파기할 뿐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발전은 우연한 기회는 없습니다

내 모르게 쌓아 놓은 생각이 보였고

찾고자 했던 노력이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그 이유 지식과 지혜는

아는 만큼 보이고 생각하는 만큼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공짜는 한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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