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그린 산수화
김 익 택
내 몸에 수액이
동트는 새벽같이
소리 없이 부드럽게 온몸에
스며들어야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은
문방사우도 없고
화가도 없다
그 그림은
태양이 모래를
빛으로 물들이면
달이 물감을 말려
바다 삶들의 소원을 그린다
보는 이 생각에 따라
마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그 그림의 전시는
길면 2시간
빨리 살펴봐야 하고
정성들여
상상의 폭을 넓혀야
미학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덕포해수욕장의 모래 그림
김 익 택
하루에 두 번
덕포해수욕장은
썰물이 지나가면
넓은 백사장 곳곳에는
대지 풍경들의 전시장이 된다
저기는 괘목
저기는 논밭
저기는 구릉지
저기는 가을 풍경
저기는 겨울 풍경
추억 같이
긴 여운의 풍경들이
실핏줄같이 흐르는 물길이
그림을 수놓는다
누가
모래위에 그린 그림을
낙서라고 했던가
반나절도 못되어
밀물이 쓸어버려도
가슴에 새긴 그림은
영원한 것을
썰물이 그린 그림
김 익 택
밤새 모래알 굴리며
울어대더니
날 보란 듯이
널 보란 듯이
소스라치게 놀랄 일 아니어도
나뭇가지 하나
흐르는 물 흔적 하나
놓치지 않고
자세히도 그려 놓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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