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멋진 날의 물음
김익택
세상을 보람되게 산 사람은
12월 어느 멋진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
빈손 일지라도
가슴에 화롯불을 품은 사람은
양심에 털 난 사람에게
열손가락 짚으며
다가올 봄 이야기를 한다
후회를 밑천삼아 매해
꽃씨를 심은 지 육 반세기
일하고 자는 삶 반복은
눈에서 하품을 하고 귀에서 불을 켜는 날
정신 못 차린 반복이었던가
어느 멋진 날은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어릴 때 뿐
삶 졸업 그때까지 필요불충분 조건은 있을까
의문을 던지는 12월
찬바람이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어깨가 시리다
지키지 못한 동백꽃 약속
김익택
늦게 찾아온 내가 원망스러웠을까
외면해도 보이는 눈물
네가 보지말라 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고개가 돌려진다
기회는 한정된 시간
모르는 나 아니지만
나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
보고싶을 때 보고
만나고 싶었을 때 만난다면
미움이라는 말 필요 없겠지
이해라는 말은 부탁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깨닫는 일
변명 같지만 이해해 주길
고개를 외면하는 너의 등 뒤에
눈빛만 두고 나도
양심이 가만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
그 사람과 나
김익택
유리가 그처럼 맑을까
눈 감아 더 또렷한
내정신을 관통하는
그의 얼굴은
어두울수록 아름답다
이유가 설명보다 많은
그 사람은
들숨에 삭이고
날숨에 묻히는 마는
그런 사람 아니다
함께 있어도 타인같이
멀어도 같이 있는 마음같이
그 사람과 나
비교 우위는
물과 기름의 차이
속타는 가슴을
곁에 두고 별 바라기를 한다
추억의 시간이 알려준 그리움
김익택
갑자기 슬픔이 콧등을 시큰거려
눈물이 진달래 꽃을 불러 세울 때
생강차를 마시며
매화를 생각하는 건
보고싶은 사람이 그리운 것이고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그리워
유자차를 마시며
동백꽃을 생각하는 건
이국의 쪽빛 바다가 그리운 것이다
언 바람이 가지를 울리며
팽이를 칠 때
배호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은
옛 친구가 그리운 것이고
생각이 북두칠성 보리밭을 해멜 때
아리랑을 읍조리는 것은
어머니가 그리운 것이다
생각이 빈 가슴을 울릴 때
김익택
슬픔과 고독이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했던 12살
꽃바람에도 상처를 입고
나비가 앉아도 아팠지
만나지 않아도 하는 걱정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좋아는 하는지
몰라서 속 터지는 건
열 손가락도 모자라는
배려와 예의
의욕이 넘쳐도 못하는 행동
해결하지 못할 가슴 앓이는
일생일대 풀지 못할 소원
가난해서 부자의 부러움은 알아도
사랑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고민이 고민을 낳아
속타게 할 줄은 몰랐지
희생 그 뒤에
김익택
꽃가지는 꺾어줘야
후년에 더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다는
조경인의 말에
꽃나무는 동의할까
무참이 잘려버린 꽃가지를 보고
아프지 않을까 잔인하다 라는
나의 생각은 의로움일까
문득
삶과 죽음의 의문이
마주친 꽃가지에 맞닥뜨린다
내년에 피는 꽃을 보고
미학으로 수긍할 일이지만
그것 또한 나의 생각이기에
자연은 그대 두어야 아름답다 라는 말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아픔 없는 삶이 없음을
미학과 건강이 동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다시 그 날이 오면
김익택
다시 그 날이 오면
차가운 저녁
별을 보고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거야
겨울바람에 떨고 있는 사시나무 마냥
밤바람에 안부 묻지 않을거야
아픔이 깊어서 잠 못 이루지 않고
그리움이 넓어서 남몰래 울지 않을거야
참아도 안되고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네 마음을 훔치는 것임을
다시 그날이 오면
문제의 해결은 시작과 끝이 네가 나였음을
알았기에
동백꽃의 본연
김익택
거지를 외면했던가
환자를 거부했던가
죄인을 돌아세웠던가
아프면 아픔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오는 사람 맞이하고
가는 사람 등 뒤에
미학의 아쉬움만 남겨줄 뿐
입만 벌리면
자유와 평화 평등과 공유
외치는 지도자 그분들과 달리
발로 차고 모가지 꺾어도
꽃의 본연의 자태
꽃과 향기
침묵으로 보여주고 있다
난 그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동백의 하소연)
김익택
빛처럼 바람처럼 스쳐가는 인연 아닌 것을
그대는 왜
달아나려고 해요
내가 언제
듣기 싫어하는 질문을 하던가요
보기 싫어하는 행동을 하던가요
바라보고 있었을뿐
난 그대가
죽으라면 죽을 시늉을 할 사람인걸요
꽃이 되지 못해 향기를 없는 건
난 아직 피우지 못한 꽃 몽우리
그대를 향한 단심이
꿈이 생명이란 걸 모르시나 봐요
나보다 나이가 많아 생각이 넓고
나보다 많이 배워 이해가 깊어
내 맘을 꿰뚫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는 아는데
그대는 아닌가 봐요
그대 내가 모르는 또다른 이유가 있나요
밤이슬에 젖는 것이 풀잎만이 아님을 아니고
아침서리에 손발이 시린 것이
동물만이 아니지요
지난 밤 이불을 돌돌 말아가며
이른 새벽을 맞이하는
마음도 있음을 알아주세요
말해줄 수 없는 이유가
그대에게 내가
피곤한 한 떨기 꽃인가요
나의 관심이 곤란한 향기인가요
그것 아니지요
내가 너무 앞서 나간 거지요
답답해서 그래요
내 마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면
난 그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것이 천벌이라 할지라도
어두운 밤길
김익택
어디선가 부를 것 같아 돌아보면
전신주의 가로등 뿐
가로등 불빛에 늘어진 내 그림자가
답답해서 밖을 나온 영혼 같다
뚜벅뚜벅
내 발자국
어둠이 빨아들이는
그 속으로
사라지고 싶어
빠른 걸음을 걷는다
누구 한사람 보이지 않아도
뒤통수가 부끄럽다
기억도 없고 추억도 없는
오늘은 그런 하루가 되었으면
계절의 반항방법
김익택
요즘 좀 어떠세요
낙엽은 떨어져 앙상하지만
내리는 비는 여름이고 부는 바람은 봄입니다
철 모르는 진달래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요
긴급 처방이지요
바람이 제마음대로 했겠습니까
비가 꽃나무의 마음을 알았겠습니까
무식한의 자승자박이지요
도시 12월밤과 동백
김익택
동백은 반짝이는 네온의 수신호가
싫다는 뜻인가
빌딩을 차고 도는 밤바람에
네온에 잠 못 이루는 동백이 손사래 친다
사람소리 잦고
네온이 더 화려해지는 12월의 밤
꽃을 피우기 준비하고 있는
꽃 몽우리에 여민 붉은 빛은
살갑게 보이고 탐스럽게 보여도
그 속은 산모의 고통
도시의 밤 네온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동백꽃 몽우리는 붉기만 하다
어떤 그리움의 바람
김익택
검은 신발로 걸어도
하얀 발자국
푸른 신발로 걸어도
하얀 발자국
녹는 시간 같은 시간
네 사랑도 저처럼
차별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움도 괴로움도
하얗게 하얗게
단절 없는 삶과 죽음처럼
녹아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과거를 모르는
새생명의 움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