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계절에 내리는 비
김 이 택
꽃의 계절에 비가 장마처럼 내리고 있네요
꽃 노래를 부르던 계절은
사랑비에 실려가고
용케도 맺은 붉은 열매가
열심히 노력했고 열심히 사랑했지만
고통 없는 삶은 재미없었다고
비밀을 풀어준 과거가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네요
아직도 기억속에 숙녀의
수줍은 미소는 변함 없는데
주름속에 숨겨 놓은 사랑이 보상하라 하네요
시간이 아픔으로 되돌려준 건강은
먼 하늘을 보며 웃고 있네요
아이로 되돌려주는 동심의 노래는
소식 없는 옛 친구를 그립게 하고
몸과 마음에 벤 민요는
죽어서 들어도 가슴에 와 닿는
내 인생을 풀어 놓은 하소연이
하늘의 소리인양
창부타령 한 소절이 뭉클하게 하네요
사랑 잃고 난 다음 사랑은
김 익 택
내가 당신을 찾는 날은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 많았지요
그 사실 무시하는 만큼 당신에게 쌓였던 불신은
사랑이 자유를 넘어 방종이 되고 방종이 명령이 되기까지
존중하지 않았지요
사랑을 잃고 난 뒤 자유도 잃었지요
사랑은 잊음이 아니라 새로운 그리움 시작이라는 것도
생각이 고착화된 뒤 사랑은 새로운 사랑 아니라
경제원리를 따지 것도 뒤늦게 깨달았죠
사랑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해도
허공의 메아리
진심은 진실을 알아보듯이 현실을 냉엄했죠
그녀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가고
김 익 택
생각이 깊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은 정해져 있어도
생각이 발버둥을 쳤다
지금 기회를 놓쳐버리면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강박강념이 결정을 재촉했다
하지만
무례와 예의가 생각을 꽁꽁 묶어버렸다
참으며 지켜보는 것밖에
인연이라면 기회는 올 것이라고
그녀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가고
나는 가슴만 뛰었다 눈 맞춤도 못한 채
가을비 속의 삶의 진리
김 익 택
건반을 톡톡 두드리는 숙녀의 손가락같이
톡톡 단풍잎을 두드리는 가을비 속에는
단풍잎만 아는 시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 내리는 비가 때와 장소를 가리며 내렸던가 마는
모든 삶의 생명의 근원인 비가
저 단풍잎에겐 삶을 재촉하는 이별의 송장일수도 있겠다 싶다
삶은 순환이라고 시작이 희망이면 죽음이 시작이라고
서러운 것은 미련이 만들어 낸 아쉬움이라고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자연도 할 수 없는 진리라고
피는 꽃과 탐스런 열매 단풍잎과 숲과 맨땅에 내리는 비
그 본질은 변함없어도 삶들은 자연의 섭리를 알아야 한다고
가을 비 속에는 삶이면 체감할 수 있는 하늘의 진리가 있다
들숨과 날숨
김 익 택
기쁨으로 보면 기쁨
슬픔으로 보면 슬픔
당신의 생명은 대의의 삶
늙지도 않고 나이를 먹지 않죠
당신이 가진 것은
삶의 철학을 담은 생명
생명의 활력을 일으키고
생명을 관장해도
간섭을 하지 않는 자율주의자
주권과 사랑
자유주의자와 독재자에게도 공정
없는 것 같이 느끼지 못해도
늘 곁에 생명
9월의 노래
김 익 택
가져도 부담 없고 외면해도 미안하지 않는
9월의 손님은
가슴을 열고 기다려도
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 없고
나를 기억해 찾아오는 사람 없다
가진 것 없어도 외로움을 나누려는 것은
욕심인가
건전함과 다정함을 맞이하려는
나는 여전히 9월의 이방인
가슴이 답답해 열어놓은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노래가
옛사랑 꼬리를 물고
목적 없이 밤 하늘을 달린다
피면서 이별을 예고하는 가을꽃은
아침 이슬속에서 피고
저녁 이슬을 맞으며 우는
귀뚜라미 사랑 노래가 소리가 슬프다
이 가을 그림 속 이야기가 될까
김 익 택
아픈 곳이 많은 삶들에게
9월의 천사도
질투로 보이는 건
내속이 좁아서 그럴까
오라고 손짓하고
와서 즐기라는
꽃 소식 단풍 소식이
희망 속 그리움이다
찬란한 가을은 곁에 있어도
그림 속 이야기
나 모르는 사이
퍼뜩 겨울이 올까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이 가을의 감사는
김 익 택
익어서 고개를 숙이는 곡식뿐인가
닮아야 할 사람은 닮지 않고
지은 죄 없어도
잘 키워줘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알곡들은 하나같이
정중하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같은 항렬의 세대들의 고민
김 익 택
석산의 붉은 꽃이 귀뚜라미보다 먼저
가을을 알리는 9월
서두르는 반달이 추석을 향해 달려간다
한가위를 시작한지 이 천 여년 전인가
누구나 설레게 했던 풍성한 최고의 명절이었는데
디지털 시대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고향 가고 성묘 가던 사람보다 해외여행객이 많은 시대
조상 존경 알고 부모 은혜 아는 세대
굶주림 알고 산업발전 알고 디지털 시대는 아는 세대
같은 이름 항렬시대가 저물고 있다
8촌이 한울타리가 불과 50년 전
형제 우애보다 깊은 사촌은 이제 얼굴도 잘 모르는 남남
잘 먹고 잘사는 시대가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보다 못한 인정
같은 항렬시대 지나면 누가 지킬 것인가
시대의 역행인지 순행인지 모르지만
이 천년을 이어 온 전통정신 좋은 점은 이어갔으면 하는 생각
내가 늙고 보니 아쉽기만 하다
말을 하면 꼰대 눈에 무너져가는 전통 풍습
국제결혼이 많고 나라가 발전하는 만큼
좋은 점은 지켰으면 하는 생각
항렬의 세대 이구동성 같은데
부모자식 간에 소통부제가 되고 꼰대가 되는 것보다
가만있으면 가정이 편하니까
정작 자기자식 교육은 딴전이다
변화 속도가 빛 같이 빠른 디지털시대 인문학이 기초인데
너도 나도 말만 많았지 전통의 리드하는 부모가 없다
불갑사 꽃무릇의 읍소
김 익 택
사랑할 때 몰랐던
원의 소리일까
법당을 향해 읍소하는
애타는 붉은 빛이
9월의 숲에 가득하다
꽃무릇의 사랑 우위
김 익 택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소녀
지금은 어디 있나요
오늘은 내가
그 소녀를 사랑했던
붉은 가슴보다 더 붉은
꽃무릇에 정신을 팔리고 있네요
그간 아마도
사랑의 전설이
내가 사랑했던 소녀와
비교 대상이 전혀 못 되는가 봅니다
사람의 훈기 간 곳 없는 꽃에
계속 눈길이 꽂히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