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두루미 일필휘지
김익택
찬바람 부는 겨울 저녁
붉을 노을을 등에 업고
길 없는 길을
줄지어 날아가는
재두루미 때 모습이
하늘의 신선
붓끝에 흘러내리는
일필휘지같이
글 모르는 사람 가슴에
서정시 하나 드리우고 있다
겨울 주남지의 밤
김익택
흐르는 강도 잠을 자야 한다고
영하의 어둠이
이불을 덮어주는 겨울 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추위 때문인가
철새들이 서럽게 운다
집 떠나 천리 먼길 날아올 때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을 터
고지가 바로 저기 물속인데
꽁꽁 얼어 그림의 떡이다
낯선 하늘 낯선 땅에서 삶이란
허기와 싸움
고요히 잠들어야 할 어두운 밤
주남지의 밤은
잠 이루지 못하고 술 취한 취객처럼 시끄럽다
믿음이 믿음을 박살내다
김익택
활기찬 박력과 해박한 지식 신선함을 믿었지요
설마가 사람을 잡았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샘이지요
반세기를 더 살면서 몇 번을 당했지만
그래도
활기차고 신선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요
믿지 않으면 내가 의심 많은 사람 같아서
믿었지요
사람이 사람 같지 않는 도리에 경악했지요
똑똑한 것과 분별력은 다른 것이었고
겉과 속은
야심을 속이는 얼굴마담이었지요
사람이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죄 아니라
섣부름을 경계하는
지극히 정상임을 상기시켜 주었지요
겨울 공원풍경의 단면
김익택
구름조각을 뜯어먹으며 걸어가는 아이
발걸음이 가볍다
우르르 달려가는 낙엽
아이 앞길을 달려가자 아이가 뛰었다
아이를 앞질러가는 낙엽이 더 신났다
갑자기 공원거리가 조용해졌다
아이 낙엽을 가리키며 웅얼거렸다
달려가지 왜 섰어
바람이 불어야 가지
엄마가 아이 손잡고 오는 길을 되돌아갔다
사랑 앞에는 나는
김익택
아무리 할 말 많고 생각이 많아도
내가 너에게 말하지 못함은
얼굴은 발갛게 익어
정신이 얼떨떨하고
가슴이 떨려서 터질 것 같아
할말을 잃고 말았지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밑도 끝도 없는 말
괜찮아
뭐가
엉뚱한 물음에 되 묻는 너의 말에
당황한 나는
그 그 그냥
그 짧은 말마저 더듬거리고는
돌아서서 자책을 했지
너를 향한 예의는 항상 최상인데
의심으로 변하고 말았어
사랑도 자신감인데
다른 사람에게 자유로운데
유독 너 앞에서는 그게 안되었지
깊고 깊은 너의 맘에
내 맘을 전하지 못해
밤을 세워 속태우고
대 낮에 멍 때리는 바보가 되었지
어두운 천장 바라보며
멍 때리는 밤
우풍이 말을 걸었지
서두르지 말고
조금하지 말고
그가 먼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너가 먼저 이름을 불러 보라고
가슴의 별
김익택
사랑했지만 사랑한다 말 못했습니다
억울한 것이 아니라 존경했습니다
미워한 것이 아니라 그리워했습니다
사랑은 기억을 기억은 사랑을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관계 아니지만
조롱의 관계도 아니지요
그래서일까요
그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미워하고 괴로워했지요
마음 같지 않다고
슬퍼할 일 아니고 외로워 할 일 아니지만
끝없는 배려는 포기가 없었지요
오늘이 내일이 되어 과거가 되어도
그리움이 외로움을 찾는 그때까지
그는 영원히 반짝이는 가슴의 별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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