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그 이야기
김익택
지난밤 추위가 주사 놓았는 줄 알았는데
추위가 공모를 했군요
고생 좀 해보라고
고개를 흔든다고 알아듣는 것 아니었고
악수를 한다고 동의한 것 아닌데
내가 착각을 했나 봐요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사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섭섭하네요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지나친 관심이 오해받을 수도있고
사람을 잡을 수도 있지요
사랑하는 사이는
좋은 관계가 아니면 질투하는 관계
둘 중에 하나지요
그러든 말든 내일이면 꽃은 필 거야
비가 오던 눈이 오던
아직까지 재 임무를 어긴 적이 없거던
사랑은 약속을 어기지만
봄은 약속을 어기지 않거든
찾아오는 사람 달라도
맞이하는 꽃은 언제나 똑 같았죠
그 꽃 나무는 지난해 허리가 반쯤 꺾여도
올해 더 상상하게 꽃을 피우거든
그것이 삶의 의무이지
삶은 죽는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삶이 무엇인지 알려준 것이지
은은한 고집불통이라는 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철학 책 한권을 선물한 것이지
삶의 하소연
김익택
아픈 다리로 걸음을 걷고
아픈 팔을 들고 만세를 부른다
잇몸으로 밥을 씹어 먹고
맨바닥에서 잠을 잔다
쉬면 몸이 더 아프고
하는 일 없어도 바쁘다
평생 일을 친구처럼 생활하고
내가 나를 위로하지 못한 채
열심히 살아도
가난은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은 의리도 없고 양심이 없어서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은 늙음뿐
누구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묻는 나에게
그래도 별탈 없이 잘 살았지 않느냐고
되 묻는다면 그것 또한 맞는 말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라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시간과 나
김익택
너는 돌고 돌면 쌀을 빻고 밀가루를 빻는데
나는 정신줄을 빻는다
너는 돌고 돌수록 삶의 영원한 귀재인데
나는 내일을 모른다
너는 천년만년 돌고 돌아도 청춘인데
내 몸의 건강 시계는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문득 그리운 밤
김익택
잃어버렸던 향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람이 향기를 쫓아 길을 나섰다
땅을 내려다보는 것이 익숙한 독수리와
하늘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한 몽구스의
삶의 관계를 알아야 삶을 영위하듯
깨닫지 못한 사랑의 이치가
깨소금이 흩날리는 그 어떤 날을 그리며
건널 수 없는 강 건너를 주시했다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 사랑을
칠흑 같은 어두운 밤 천정에서 찾는 동안
세레나데를 부를 수 없는 소쩍새가
꺽꺽 그리며 빈 산을 지나갔다
생각이 하늘이 뚫지 못하고 끙끙 앓는사이
단단하게 굳은 그리움이 동창을 밝혔다
정치인의 입
김익택
너의 입은 아무리
맛나는 음식을 멋어도
거짓말을 삼키는 통로인가
소화되어 나오는 말이
온통 오물뿐이다
네가 쏟아내는 말에
악취가 나지 않았으면
목소리를
임대해서 쓰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사용하지 말고
아껴서 가꾸고
겨울에 꽃 보듯 하오
높은 지위 있다고
말속에 향기 나지 않고
높은 지식 있다하여
행위가 아름답지 않음은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의 공통분모
재발 이제는
상식을 품고 사는 보통 사람들
양심을 팔아먹지 앓았으면
어떤 기다림
김익택
아파야 더 아름답고 슬퍼야 더 향기로운
나만 아는 꽃을 피웠어요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는 강엔
물고기도 살고 수초도 살지만
내마음에 있는 그분은 없습니다
그대 오시기를
매일매일 청소를 하고 가다리지만
바람은 바람으로 끝날 뿐
존경과 보람은 상행선과 하행선
마주칠지라도 만나지 못합니다
내가 그를 아는 건
김익택
내가 아는 건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답다는 것
지키는 파수꾼 없지만
범접할 수 없다는 것
달콤한 꿀도 있고
향기도 있지만
예의와 허락의 헤게모니는
그에게 있다는 것
사랑하다는 이유로
예고없이 그를 찾아간다는 것은
우연까지 밀려난
무모한 도전
그냥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것밖에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김익택
삶은 아슬아슬한 평화와 불행의 게임이죠
개인이 그렇고 국가가 그렇고 세계가 그렇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면 정말 행복 할 까요
아니죠
고집이 아집이 되고 행복이 불행이 되는 것이지요
적과 동침 없이 자유는 없고
적과 전쟁이 없이 평화는 없는 것이지요
모름지기 삶의 균형이란
신체가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불의와 싸우는 것이지요
지켜서 유지하면 자유가 되고 평화가 되는 것이지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삶을 파괴하는 일 아니면
타협하며 살고 참으며 살고 이해하며 살고
믿으며 살고 사랑하며 살게 되더라고요
성급한 기다림
김익택
내 심정에 날개를 달아
바람편에 보냈다
어제 기분이
오늘 기분이 아니듯
감정의 비례는 약속하지 않아도
시간이 간격을 벌려 놓았다
오지 않는 바람의 소식은
봄 바람이 정신을 환기할 때까지
역행은 없었다
알맹이가 빠져버린 소식을 안고서
문을 두드리는 것은
겨울은 여전히 타인
앙상하게 말라붙은
검은 매화가지를 훑고
푸른 동백 잎을 훑고 온
바람의 푸른 소식은
소설속에서 찾아보라고
대신 울어주는 얼음장 소식을
보름달이 기러기편으로 보냈다
백지의 질문
김익택
하얀 종이에 내마음을 펼쳐 놓았습니다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오히려 내 머리가 하얀 백지가 되었네요
입밖으로 나오면 흔적 없는 말은
듣는 사람 없어 부담 없지만
백지는 내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어
소리 없는 질문을 무시할 수 쓸 수가 없네요
1분 2분 그리고 5분 지날 때까지
죄 없는 눈을 쿡쿡 문지르다가
간지럽지 않는 뒤머리를 긁적이고 있네요
단 한자도 쓰지 못한 채
사랑해도 타인
김익택
그의 눈동자가 너무 슬프게 보여
할말을 잊은 나
얼굴 보기도 민망하고
가만있기도 어쭙잖아
하늘을 바라본다
이래도 저래도
퍼뜩 떠오르지 않는 말은
짧아도 긴 시간
무안해 먹먹함을 침을 삼킨다
제목이 무엇인지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뇌리를 톡톡 두드리는 피아노 소리 뿐
고개를 돌린 그녀의 긴 머리칼에도
슬픔이 남실거린다
안아 줄 수도
어깨를 토닥거려 줄 수도
위로의 말도
나누지 못한 엇갈림이
눈길이 길을 잃은 채
고개를 돌려 먼산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