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점령한 직박구리
김 익 택
봄바람이 벚꽃 겨드랑이에 간지러운 태우는 아침
꽃향기가 불렸을까
꽃이 불렸을까
주먹보다 큰 직박구리 한마리가
벚꽃의 여린 가지에 앉아 꽃을 살피고 있다
한참 주위를 살피더니
뾰족한 부리로 꽃술에 박아 꿀을 빨고 있다
겁먹은 작은 벌들은 날라 가버리고
덩치 큰 직박구리가
올망졸망한 작은 꽃에 꿀을 따는 모습
다윗과 골리앗 싸움 같다
직박구리가 아무리 벚꽃을 배려한다 해도
여린 가지는 부러질 듯 휘청거리고
꽃잎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꽃이든 사람이든
내 집에 손님이 많이 올수록 좋은 법인데
직박구리가 한번 다녀간 꽃은
눈 멀고 코 멀지 않고는 찾지 않을 것 같다
저 정도면 강간 아니면 강탈 아닌가
속수무책인 꽃을 보고 걱정하는 내가
바보일지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직박구리에게 식탐의 욕구를 나무랄 수 없고
예의를 강조할 수 없지만
벚꽃에게 직박구리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직박구리는
경쟁자 직박구리를 쫓기 위해
온 벚꽃 나무를 헤집으며 날아다니고 있다
세상의 제일 무서운 약속
김 익 택
내가 나와 한 약속은
거지말을 해도 누구 한사람 알지 못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누구 한사람 손가락 질 하지 않는다
미워하고 좋아하고 질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의 모든 약속 모두
나 아니면 몰라 말하지 않으면 있어도 없는 일이 된다
다만 내 양심의 빗은
두고두고 나를 나무라거나 죄의식으로 일깨운다
그것마저 시간 지나면 흐지부지 있어도 없었던 일
하지만 쌓이고 쌓이면 나 아닌 사람에게 쉽게 할 수 있는 행동
세상의 쉬운 일 없고 마음대로 되는 일 없다
읽기 쉬운 마음 알기 쉬운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
열심히 먹고 노는 것도 하루이틀 매일 신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하루이틀 지나면 힘든다
이런 저런 핑계는 핑계 없는 무덤을 만들 뿐
시간 지나면 언젠가 깨닫을 땐
내가 나와 한 약속이 제일 무서운 약속
나를 속이는 일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지름길
내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되는 나를 알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깨닫을 지도 모른다
시간의 가르침은 공평하다
김 익 택
먹지도 않고 쉬지 않는 시간은
단 한번 좀 먹는 공간은 없다
쌓이면 양식이 되던 부채가 되던
삶들의 몫 시간은 제갈길을 간다
탄생과 삶과 죽음
그리고 의무와 권리
묻지도 않고 따지지 않는다
시간이 가리키는 윤리와 진리는
침묵속에 있고 소리속에 있고 기후속에 있다
반복과 반복 행위 그 속에
행복과 불행 자유와 억압의 가르침이 있다
무한한 발전과 정체된 발전은
받아드리는 삶들의 생각에 따라 달라 질뿐
문제 제시와 해답은 한결같이 열려 있다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악몽이 되는 것은
부정과 긍정의 노력의 차이
그 해답 알지만 포기하고 산다
생각아 모자라고 노력이 모자라서
못 찾고 있을뿐
부담스러운 초록의 무게
김 익 택
단어를 알아도 해석할 수 없는 외국어처럼
준비 없는 준비는
온 몸으로 봄을 겪어도 뒤따라가기 바쁘다
꽃 보고 좋아만 하다가 어느새 초록 세상
비 오고 바람 불어 꿈같이 꽃잎이 다 떨어 진 뒤
들뜬 마음만 남겨두고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 봄은 가버렸고
진초록은 가슴에 무거운 짐만 남았다
상상 그리고 자아
김 익 택
상상이 이끌어가는 마음의 지도에는
항상 김치국물 먼저 마신다
그곳에는 목적은 무한대 제약도 한계도 없다
물론 무법 행위 아니고 탈법 행동 아니다
이룰 수 없어 도달할 수 없었던 현실의 극복을
그렇게 해서라도 해소해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지만
그 후유증 역시 만만치 않다
대개는 이성이 실망 뒤 현실을 제어하고 절재 하지만
이상이 없으면 그 또한 삶의 무의미하다
알면서 행하고 모르면서 당하는 삶의 실 수는
경험이라는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꿈과 현실 차이를 좁히는 삶은
마침내 현실 극복이라는 현실을 자각하며 산다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상상 가까이 있는 만큼
지금 비현실적인 생활이 그 시작임을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