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생각하면
김 익 택
당신 야위어 가는 얼굴보고
미안한 생각이 들고
고마운 생각이 들고
불쌍하다는 생각하기까지
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부 사이가 진정 무슨 의미인지
낳아준 부모보다
낳은 자식보다 소중한 사람이
당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반세기가 알려주는 지혜
김 익 택
눈만 뜨면 보리는 소나무 마음을
나 맘과 같이 이해하기까지 반세기가 넘게 걸렸고
태어나서 죽을 때가 숨을 쉬게 하는
바람도 귀가 있고 생각이 있다 것을 이해하기까지
반세기가 걸렸다
먹은 것을 아무 말없이 배출해준 항문에게
아침저녁 고개 숙여 고마운 마음을 가진 것도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 하루에 지구를 수백바퀴
돌아갈 만큼 강력한 엔진을 가신 심장에게도
무궁화 정신
김 익 택
꽃이 외롭다는 말
비가 알까 바람이 알까 태양이 알까
대낮 더위에
보라색 무궁화꽃이 꽃입을 오므렸다
벌들은 방황했고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7월부터 10월까지
피고지고 피고지기를 몇 십 번하는 동안
장마 태풍 가뭄
삶과 죽음 실험하는 환경에서
꿋꿋하게 꽃 피우는 모습
우리네 어머니를 닮고
아버지를 닮지 않았는가 그대 보면
침묵해도 본심 잃지 않는 삶의 기본 인내와
잃지 않는 삶의 평정심은
대대로 이어나가 할 나라 삶의 표본
잘산다고 거드름 피우지 않고
많이 안다고 자랑하지 않고
도와주며 함께 사는 정과 사랑을 배웠으면
가는 8월에게
김 익 택
그대가 제아무리 가기 싫어 발버둥쳐도
입추 지나고 모기 입 삐뚤어지는 처서
귀뚜라미 이슬 머금은 날 멀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매미는 더 급하게 울고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꽃 백일홍은 이미
떨어져 땅바닥에 붉게 물들였습니다
나이들면 철 든다는 말
김 익 택
쉬어도 피곤하고 잠을 자도
시원치 않는 8월
선물 받은 복숭아 한 박스
부끄러운 소녀볼같이 붉은 빛이 아름답다
처음엔 선물한 그분에게
그 다음은 복숭아에게 고마움을 전해본다
한 잎 베어먹을 때 나는 소리 사그작
아프지 않을까 아프지 않게
어떻게 먹어야 할까 먹어도 괜찮을까
아프며 또 얼마나 아플까
예전 않던 생각 하게 되는 건
연륜의 지혜인가 삶의 대한 자각일까
생선 소고기 과일 채소 공기 물 빛
먹고 사고 자고 일하고 내 몸에게
간절히 고맙다는 생각 하게 되는 건
인간이 된 걸까 죽을 때가 된 것일까
새삼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개미왕국 망루
김 익 택
개미가 땅 위로 집을 지었어요
저 멀리 태양이 떠오르고 해가지는
대 평원에 집을 지었어요
하지만 여왕 개미는
평생 땅 속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고 알만 낳았죠
병정 개미만 망루 꼭대기에서
대 자연의 아름다움만 볼 수 있었지요
밤이 되면 사자와 하이에나 울음소리가 가득했고
낮에는 태양이 대지를 숨죽였지요
개미 왕국의 적은
사자도 아니고 꼬끼리도 아니었지요
무지막지한 오소리와 일순간 초토화시키는
긴 입을 가지고 있는 개미핥기였지요
거대한 집은 힘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공격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그리고 동족상잔은 승리 아니면 죽음 뿐이라
비극 중 비극이었지요
전쟁만 없다면 망루의 경비는
천국 다름없었지요
끝없는 평원의 아침 태양의 붉은 빛은 위대했고
저녁 노을 빛은 황홀한 극치였지요
하지만 예고 없는 전쟁은 승리보다 패배가 많았고
잘 사는 길은 복구와 극복밖에 없었지요
영원한 승리는 없고 영원한 평화는 없었지요
행운은 하루하루 무사하길 바랄 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