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낙엽에게
김 익 택
서산에 붉은 해가
매양 붉지 않아도
오늘도 어제같이
하루 시간은 변함 없지
그러니 낙엽아
왜
떨어지게 하느냐고 푸념 마라
내가 없어도 있고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내가 너에게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따를 뿐이다
그러니 낙엽아
너는 떨어져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가둘 수 없고
거둘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따를 뿐이다
낙엽의 소망
김 익 택
바람에 멈춘 잎새가
후유 하고 한숨을 돌린다
바람의 힘을 빌어 소통했지만
먼저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고 있으면
사랑 따윈 전설
그래도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
저기 걸어가는 연인들 눈길을 받고 싶고
저기 통통 뛰어가는 소녀의 일기장
갈피에 박제가 되고 싶다
그래서 먼 훗날
소녀가 숙녀가 되고 엄마가 되었을 때
그 딸에게 로망이 되는
노스텔지어 가 되고 싶다
길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김 익 택
빤히 보고 있어도
잡지 못하는 가을이
바람을 앞세워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시간이 아쉬운 삶들에게
추억을 안겨준 채
시간이 가도 늙지 않고
비워도 비워지지 않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숙제를 던져 놓고
바람의 공간을
오고 가며
가을은
허약한 사람들 심장에
갚지 않아도 되는 부채
삶의 빚을 떠넘기고
홀가분하게 가고 있다
바람 몰이
김 익 택
갈바람이
푸석한 낙엽들을
소 몰이 하듯
좁은 공원 숲 길을
내몰고 있다
힘없는 낙엽
구르다가 날라가다
걸려서 멈춘 곳
닭처럼 머리를 쳐 박고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다
죽음 그 뒤도
삶이 없으니
의지도 없고
그 무엇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썩어서 가루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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