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악양루에서의 풍경
김 익택
오른쪽에서 흐르는 남강과
왼쪽이서 흐르는 함안강이 만나는
절벽 위에 악양루는
아담해서 내 집 같고
소담스러워서 편안하다
그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눈빛으로 아는
내 오랜 친구와 얘기 나누듯
잠시 시간을 멈추고 싶다
함안천 넓은 고수부지에
하얗게 핀 메밀꽃과
남강을 깃대어 펼쳐진
대산면 넓은 들은 진정
평화와 자유가 무엇이고
평온과 안정이 무엇인지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눈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잔잔한 감동의 파노라마는
부연 설명조차 흐름을 끊는다
내가 작게 보이면
김 익 택
내가 작게 보이면
길가에 작은 미물도 크게 보이지
내가 불쌍하게 보이면
할 수 있다는 의지도 상실하지
마음 따라 몸 가지 않고
몸 가는데 마음 따라 가지 않아
불평불만 늘어나는 것이l지
의욕도 나의 것 의심도 나의 것
내가 나를 의심하면 남도 나를 의심하고
내가 나를 믿으면
남도 나를 믿음을 갖는 것이지
이기주의자 마음 서술하다
김 익 택
내가 나를 용서 못할 나쁜 일을 저질러서
홀로 고민에 빠졌을 때 그 환경을 빠져나오려고
허구를 포장하여 서술할 때가 있다
내가 나를 갖은 구실을 붙여 변명하고
갖은 거짓 도배해서 위장하고
갖은 환경 꾸며서 위로하고
갖은 정의 다 붙여 합리화하고
갖은 아량 다 베풀어서 용서하고
갖은 만용 부려서 정당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마침내 나쁜 일 없고 잘못 없고
이해도 필요 없는 평상의 일로
아름답게 서술하고 너그럽게 서술한다
때로는 하늘보다 넓은 아량으로
때로는 바다 보다 깊은 마음으로
악양루의 위안
김 익 택
신경 안정제가 이만큼 이로울까
겉 보기엔 절벽위라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숨차도록 가파른 계단 그 마지막
정자 밖 풍경은
함안강은 악양들의 숲과 꽃이 되고
대산들을 휘돌아가는 남강은
배고파서 쌓이는
근심 수심 모두 다 끊고도 남는다
처녀 뱃사공 노래는 1960년부터 1980년말까지
국민가요라고 불러도 괜찮을 만큼 전국민들이 즐겨 불렸던 노래다.
노랫말 속 처녀 뱃사공이 노를 젓던 곳이 악양나루터다
처녀 뱃사공 노래에 얽힌 사연
1953년 9월 당시 유랑극단 단장이었던
윤부길은(가수 윤항기와 윤복희아버지) 가야 장터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 장터로 가던 중, 악양나루 뱃사공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다고 한다.
그때 나루터 두 처녀가 노를 저으며 손님들을 운반하는 것을 보고
1953년 윤부길이 가사를 쓰고, 1959년 한복남이 곡을 지으서
황정자가 불러서 대 힛트한 노래가 처녀뱃사공이다.
두 처녀 중 박말순 언니이고(23세)
박정숙(18세)동생이다
노래 속 군인 간 오라버니는 6·25전쟁에서 사망한 박기준이다.
그러니까 오라버니와 큰애기 사공은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작사가 윤부길은 경성음악전문학교 1회 졸업생으로
성악과 작곡을 전공한 일본 유학생 엘리터였고
그의 천재 무용가 월북한 최승희의 제자인 성경자 이다
함안 악양루
함안 악양루(咸安 岳陽樓)는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악양 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이다.
1992년 10월 21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90호 악양루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
개요
악양 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로,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것이라 한다. 악양루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자 아래로는 남강이 흐르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법수면의 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기두헌'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만 남아 있다.
1. ↑ 경상남도 고시 제2018-485호,《경상남도 지정문화재(문화재자료) 경상남도지사, 2018-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