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정의 정신적 가르침
김 익 택
그분은 가셔도
그분의 정신이 숨쉬는 곳
오연정은
비바람의 세월에
비켜갈 수 없는 건물은
낡아 허물어 가고 있지만
그분의
인품과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는
목백일홍과 단풍나무는
여전하다
다만 세월의 시름에
현판의 글씨는 낡았지만
글자 하나하나
던지는 의미는
그분의 눈빛인양 형형하다
오연정의 느낌 하나
김 익 택
집도 담도 허무는
세월 몇 백년 오연정은
눈길 닿는 곳곳마다
비바람과 잡초가
삶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그분의 정신과 같은
목 백일홍은
관심에 굶주려
몸도 마음도 야위어 보이지만
봄이 오면
되 찾는 새로운 삶 의지로 위로해 본다
밟아야 살고
닦아야 사는 집은
사람 온기를 잃어 쓸쓸하지만
정신 있고 양심 있는
이 땅의 정신 문화가 살아 있는 한
내일이면 다른 삶들에게 관심을 바래본다
가을이 삶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다
김 익 택
알알이 옹골찼던 가을도
갈 때는 빈 손
자연의 이치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과실은 빛 바래고 썩기 전
빨리 따 가라고
붉은 빛으로 알리고
나무는 함께 있어도
괜찮을 듯한 한데
잎새 하나조차
남아 있는 것을 거부한다
이를 관장하는 삶들 어느
아비는 제 자식 끼고 살고
어느 자식은
제 아비 살을 파먹고 산다
오연정의 외로옴
김 익 택
주인 잃은 지 몇백년 되었을까
목숨은 있어
세월도 잊고 사는 은행나무는
몇백세 나이에도
기상이 활발한데
사람 발길 끊어진 오연정은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기와 지붕은
이끼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고
누추한 안방에는
검은 곰팡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감성 고갈
김 익 택
필요 없을 때도 거기 있었고
필요 할 때도 그냥
자기 자리에 있었던
바람이 언제 고갈된 적 있던가
잠을 자도 움직이는 심장같이
나는 매일
텅 빈 두뇌를 재촉하고 있다
기발한 생각 새로운 소재가 없냐 고
하지만 눈앞에
단풍잎이 비같이 떨어져도 생각이 없다
11월의 삶 은혜와 결실
김 익 택
진실을 알고 성실을 알고
고마움을 아는
11월의 곡물들은
하늘의 뜻을 닮은
농부의 정성을 알아 고개를 숙인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살아가는 것
내 몸과 정신 영혼까지
아낌없이 열심히 사는 자의
양식으로 남겨두고
의심없이 12월로 떠난다
그래서 11월은 봄부터 가을까지
노력한 삶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