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 부엌의 단상
김 익 택
푸른 언덕 저 논밭에
햇살 비추고 새 울면
제 새끼 껴안은 어미 닭처럼
초가집을 감싼 안개가
손 맞잡고 반기는그 집 부엌에서
그릇 씻는 소리 분주하고
부엌 아궁이에 마른나무가
활활 타올라 밥솥을 덥히면
탁탁 관솔 타는 냄새와
매케한 연기가 코끝을 스며들어
검은 솥뚜껑을 들썩이며
뿜어대는 하얀 김이 감격해서 울고
지독하게 서러워 흘러내리는
눈물 콧물처럼
밥솥 주위를 흥건히 적시는 밥물을
물 먹은 행주로 훔쳐내던
어머니의 손길 다 어디 갔을까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
어느 시골마을의 풍경
김 익 택
뒷골 언덕
천수답 논 배미에
5월의 물 남실대면
죽었어도 벌떡 일어나
삽 들고 논으로 향하는 조상님
어디 가서 뭘 할까
무덤도 천수답도
산이 되어 푸른데
골목이 시끄럽던 아이들은
간 곳 없고
세월에 찌든
허리 휜 촌 노인만이
달팽이 이웃집 울타리 건너가듯
골목길을 오고 가고
한집 너머 빈 집들은
쓰러져 자빠지고
잡초 속에 뭉개진 돌담은 숨죽여 울고 있다
눈물 밥상
김 익 택
소설을 읽다 영화를 보다
아 그렇구나
공감하는 하는 것 말고
정말로 저렇게 살았을까
의심으로라도 눈물 밥을 공감해 본적이 있는지요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랑도 사치 먹는 것도 사치
희망과 미래가 암울해서
하늘을 바라보고 울어 본적이 있나요
가난해서 외롭고
가난해서 아프고
간난해서 서럽고
가난해서 무시당하고
가난해서 사람구실 못하고
가난해서 생일날 명절이 더 원망스럽고
간난해서 뒤통수 눈이 더 시린 죄인이 되고
가난해서 식은 보리밥에 맹물에 말아
눈물 뚝뚝 떨군 눈물 밥을 먹어 본적이 있나요
지금은 디지털시대
청소년들이여
불과 50년 전부터 30년 전까지
그대 할아버지 할머니세대들이 겪은 실재 일이다
지금은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잘사는 것 그냥 잘사는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세대와 아버지의 세대가
내 자식들에게 눈물 밥을 물려줄 수 없다는
신념 하나로 굶으면서 노력한 관절염 덕분이다
집 지키는 할머니
김 익 택
꽃다운 18세
있기는 있었던가요
일제 막바지에 태어나서
전쟁 난리통에는 먹고 살기 바빠 허겁지겁 살다가
예닐곱 청춘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인연을 맺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목줄 걸고 살다가
돌아보니 반백 너머 팔순
자식들은 도시로 훌훌 떠나고 홀로
해지고 어둑한 밤에
전기세 아낀다고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빈 집 지키는 강아지와 다름 없는 삶
그래도 세월을 한탄하면 했지 자식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삶은 TV가 유일한 친구가 되고
꼬리 흔들며 달려드는 강아지가 손자 재롱
돌아보면 지나온 삶은 백리 주마등
앞으로 살아 갈 길은 찰나 길
지난 그리움은
허물어져가는 촌 집처럼
모두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그립고 보고픈 것은
어쩌지 못해
이미 먹통이 된 전화기를 바라봅니다
모과
김익 택
지지리도 못났어도
그래도
한점 부끄러움없이
가을 오면
단 한번도 잊지 않고
골목길을 향해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코끝을 실룩거리게 하고 있다
어머니의 우물
김 익 택
음영이 드리워진 깊은 수렁
그 속에서 어머니는
시간을 건져 올리고
희망을 건져 올리고
사랑을 건져 올립니다
검은 물도 밖으로 나오면
파닥거리는 물고기
어머니가
길어 올리는 두레박의 물은
언제나 활기찹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울한 하루도
즐거운 하루도
두레박의 넘치는 눈물은
검은 우물만이 압니다
하루에 한번
태양이 잠시 발을 담갔다 가고
먹빛에 달이 뜨고 별이 지나가면
어머니 한숨 같은 검은 그림자는
습기 찬 공기와 입맞춤을 합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우물의 첫 손님
우물은 어머니를
맞기 위해
어머니의 얼굴에 여드름 자국 보일 만큼
밤새 정화를 하고
어둠이 채 가시 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자
김 익 택
웃음도 버거운 너는
적게는 다섯
많으면 열다섯
많은 새끼 마다 않고
하나같이 토실토실 살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