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선생 생가에서
김 익 택
村夫 내가
그의 삶
600년 뛰어 너머
무엇을 어떻게
가늠 할 수 있을까
아이 때와 말년에 살았다는
생가는
훈기 없어 초라한데
불어오는 봄바람 속에
청보리 향기만 풋풋하다
비바람에 닳고 닳은
마루에 앉아
장님 코끼리 쓰다듬듯
그가 다녔을 이곳 저곳을
나름대로 추측할 수 밖에
그가 태으나고 죽은
집이라지만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62,5때 소실되고 난 후
지었다니 옛 모습만 할까
덩그러니
본 채와 창고 한 체 뿐
생가는
그의 학문과 명성을 비추어 볼 때
여타 사대부 생가와는
비교되지 않게
단촐하다 못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조선시대 정치 사회를
유학으로 다스리고자 했던
그의 올곧은 정신 이어받은
제자들
김일손 김굉필 조광조 김정 정여창선생 등
무오 갑자 기묘사화를 생각하면
숙연하다 못해 가슴이 저민다
그대 가고 없는 빈집에서
김 익 택
솟을 대문 열고 들어서면
아담한 기와집 한 채
시골 어느 부잣집 다름없다
어느 사대부 대가처럼
대문을 들어서면
정자와 사랑채가 보이고
그 뒤 쪽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있는
아흔 아홉칸의 저택을
생각했던 나는
실망 그 보다
방치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나만의 상상일까
아쉽고 허전해서
그 어디선가
그의 숨결 그의 자취 있을까
처마와 돌담을 따라
집을 한 바퀴 돌았지만
잡초만 반겨 줄 뿐이다
다만 이백년은 족히 넘을 듯한
향나무 한 거루
돌담을 뚫고
빈 마당을 굽어보는 모습이
그의 기상 같고 그의 인내 같아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밖에
방문 앞에 족자도
처마 밑 추원재 밑 편액도
감동보다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