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김 익 택
삶이 나락에 떨어져도
보기 싫다고 숨고
하기 싫다고
피할 수 없는 몸
내 의지와 희망 사항은
그림의 떡
누가 팔을 자르고
도끼로 몸통을 찍어도
대자연이 하는 일
살고 죽는 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지
잉여 된 삶 아니어도
잉여 된 삶
말하지 않아도 알고
듣지 않아도 아는
허락하지 않아도 허락된 삶
나무는
태어나면 삶을 수용하며 산다
푸르게 자라
푸르게 죽는 그 의미를
너희들을 위해
나무는
기꺼이 죽음으로 포용하며 산다
저녁 노을
김 익 택
하늘의 화폭에
수를 놓는 구름
지상의 삶터에
붓 칠하는 바람
가을은
빛과 향기의 공연장
그네들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자숙하고
감사하는
짧은 시간
눈물 뽑고 콧물 뽑아
감동 얻는 카타르시스
지금 그 언덕은
김 익 택
불러도 대답 없고
때려도 대답 없던
그 언덕 검은 바위
오래된 참나무 지금도 있을까
우리 집 이사 하던 날
그 소녀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
눈물을 훔치며
내 마음 아느냐
묻고 따졌던
그 나무 그 바위
그대로 있을까
그 소녀
오래 전
떠난 것과 같이
넓은 도로에 밀려나고 뽑혀
흔적 없는 자리
흔적 없는 물음
흔적 없는 믿음
되지 않았을까
깊은 사랑 아픈 시련
김 익 택
그대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은
골목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마저
피 빛으로 보였습니다
누구 하나 보는 이 없어도
숨고 싶었고
어두워 얼굴 보이지 않아도
땅만 보고 걸었습니다
뇌리 속엔
정리되지 않는
이유가 나를
바보 못난이로 자꾸 몰아붙였습니다
주책없이
주체하지 못한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