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홍매화
김 익택
냉기가 살을 에는
이른 아침
기왓장을 베개 삼아
응달에서 피는
통도사 홍매화는
동자 스님 언 볼처럼 붉다
범종 소리에
새벽 안개 걷히고
아침 햇살
세수하고 나오면
꽃도 웃고
사람도 웃고
바람도 웃는다
봄이 오는 창가에 서서
김 익 택
이른 아침
노안의 눈물처럼
유리창에 낀 성에 너머 창 밖을 보면
털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하얀 쓰린 입김 입에 물고 가는 사람들 분주한데
살아도 죽은 것처럼 가로수만 한가롭다
더워서 옷을 벗는 사람처럼
새봄
우아하게 피던 자목련 꽃잎 마침내 떨어지고
하얀 벚꽃 떨어지는 사이에도 앙상한 느티나무는
입을 틔우지 못하고 서 있다
더워야 옷을 입는 나무는
조잘대는 아이의 웃음소리에
연두색 옷을 갈아입을 즈음
수런대는 벌 나비
제 잇속을 채우는 그때
나목은 푸른 옷을 갈아 입니다
매화
김 익 택
볼 스치는 바람 칼날 같아도
개구리 소리에 쑥 잎 돋고
노랑나비 날개 짓에 아지랑이 피면
잎 푸른 냉이 두 팔 벌리고 만세를 부릅니다
그래도 눈뜨고 보면 세상은 벌거숭이
여기저기 산모의 산통처럼
아파서 더 춥고 추워서 아름답게 피는
매화는 아이 웃음같이 맑습니다
이더라
김 익 택
무서울 것 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시간을 던져주고 가면
찬란한 삶은
실체도 없는 추억만 무겁더라
내가 나를 알았던 시간은
공허
내가 나를 준비해둔 시간은 아니더라
다시 내가 시작해야 할 짧은 삶은
이미 쏜 화살에 다다른 목표물
다시 꾸는 꿈은 후회를 벗어나지 못하더라
세상에 다시 못할 것은
시간만이 아니더라
소비해버린 욕심이더라
이미 가버린 젊음이더라
2월에 피는 꽃은
김 익 택
2월에 피는 꽃은
향기가 고결하고
2월에 피는 꽃은
벌 나비 없어도 사랑스럽다
2월에 피는 꽃은
그냥 아름답고
2월에 피는 꽃은
새가 구슬피 울어도 청아하다
2월에 피는 꽃은
먼데서 오신 귀한 손님같이 반갑고
2월에 피는 꽃은
꽁꽁 언 고운님 얼굴같이 입김으로 녹여주고 싶다
봄 창가에서
김 익 택
창가에 앉아
찬바람 맞고 있으면
실없이 떠오르는 생각
저 바람은 어디서 왔을까
꽃 피우고 잠 깨우는 저 바람은 어디서 왔을까
피곤하지 않을까
아프지 않을까
문득 바람의 속내가 궁금하다
추억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그 너머 얘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잊혀지지도 않고 미덥지도 않는
시간은 덩어리 무엇으로 풀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하고 아쉬운데
문득
배신도 모르고 신의도 모르고
희망도 모르고 절망도 모르는
부처 그 너머의 세계가 문득 궁금해 진다
가만 있어도 가는
봄날 하루
마음에 고인 아쉬움을
어찌 할 수 없는 지금이
짠 눈물보다 아깝다
2월이 보내는 편지
김 익 택
2월이 보내는 편지는
을씬년스럽게 흩날리는
눈발 속으로 몸부림치며 날아온다
2월이 보내는 편지는
먼저 핀다고 시기하고 아프게 하고
제아무리 눈보라가 볼을 때리고 비비 꼬아도
눈발을 머리에 이고 기어코 활짝 피고 마는 매화처럼
울음 위에 웃음으로 온다
그렇게 시작 된
2월이 보내는 편지는
동박새 부리에 피 멍이던 동백꽃술로도 오고
애타게 제 새끼 부르는 두견이 피 토해내는
붉은 피보다 진한 진달래같이
꽃샘 눈바람으로 오고
어미 품을 잃은 햇병아리
추위를 참다 못해 우는 울음같이
노란 산수유꽃술에 맺혀 찬 서리로 온다
3월을 준비 하는 꽃
김 익 택
백설보다 맑고 산바람보다 맑은
매화는
한 해를 시작하는 꽃이고
어미가슴보다 따뜻하고 붉은
동백은
시련을 극복하는 인내의 꽃이다
새 아씨 입술보다 더 붉은
진달래는
참사랑을 보여주는 정열적인 꽃이고
아이의 웃음보다 더 발랄한
산수유는
미래의 동력 희망의 꽃이다
그렇게 3월을 준비하는 꽃은
한 해를 모두 품고 있는 압축 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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