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김 익 택
세찬 바람에
목 달아날까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찬 이슬에 목축이며
아침 햇살 군불로
피는 너는
바람이 보낸 가을 손님이다
욕심 없고 가식 없이
세속의 이름 지우고 사는
수녀님 해맑은 얼굴같이
빛으로 웃는 너는
화두 하나 풀기 위해
세속의 삶 모두 잊고 사는
비구스님 파리한 입술같이
묵음으로 피는
너는…
가을은 나눔의 계절
김 익 택
저 산 나무와 숲이
마지막 잎을 떨굴 때까지
목숨을 재촉하는 일 잔혹하지만
내일을 위한 홀로 서는것은
자연의 이치
책임 게을리 하지 않는
11월의 찬바람과
11월의 찬이슬과
11월의 찬비가 오기까지
10월의 열매는
나를 버리고 너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일방적으로 산다는 것은 죽음
내가 버림으로써
네가 살고
네가 버림으로써
내가 사는 것은
어느 누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도 아니고
어느 누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나누는 것이다
바람 바람
김 익 택
바람으로 태어나
태양으로 성장하는
이 땅의 생명들의
삶의 시작과 끝은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땅으로
끝없이 순환하는 고리
바람이 사막에서 파도를 만드는 것도
바람이 하늘에서 파도를 만드는 것도
바람이 바다에서 파도를 만드는 것도
감정 없고 형체 없어도
피가 끓는 청춘으로 성장하면
삶의 목적은 하나
제 짝 찾기
사랑으로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너도 나도 오직 그것 하나
생명처럼 가슴에 품고 산다
이 가을에 문득
김 익 택
물도 구름도 바람도
흘러야 사랑이고 흘러야 생명이다
외면하지 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시간은
누구나 같은 시간
한 살 먹은 아이와 구순 노인의 시간은
단순히 시작과 끝이 아니라 인수의 인계의 시간이다
바람이 지구 구석구석 생명을 일깨우는 사이
물이 생물들 몸 속 구석구석 양식을 배달하는 사이
나무가 자라고
동물이 자라고
육체와 정신 속에 심연이 성장하고
나도 너도
흐르고 흘러서 성장하는 하고
흐르고 흘러서 생명이 탄생하고
흐르고 흘러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멈춤 없이 지속되는 것이 삶이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삶의 시작은
흐르지 아니하면 죽음
꽃이 피어도 흐르고
낙엽이 져도 흐르고
열매가 땅에 떨어져도
끝없이 흘러야 사는 것이다
단풍 너를 보면
김 익 택
삶의 의무 끝 자락
춤추며 작별하는 것이 너 아니고 또 있을까
인연의 끝 자락
화려한 화장을 하는 것이 너 아니고 또 있을까
벼랑에 선 삶이 아닐지라도
추함과 미학이 극과 극이 아닐지라도
생의 시작과 끝은 분명 한 법
감탄은 잠깐일지 몰라도
울음은 긴 것인데
너를 보면
너는 아마도
노여움으로 가득 찬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피의 인내로 이겨낸 벅찬 환희의 미소가 아니던가
즐거워서 행복한 하루 되기를
김 익 택
이로워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즐거워서 행복한 그대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그대 그리움을 키웠는지 몰라요
그대 생각 날 때마다
하루하루가 일일여삼추
처음 생각은 그리웠어도
마지막 생각은 외로웠지요
생각 만으로 즐거운 우주 여행처럼
목적 없는 항해 아닌데도
생각의 끝 닿는 곳 없었지요
그대 있는 곳
감히 갈 수 없는
땅 끝 아니고
하늘 끝 아닌
가까이 더 가까이
바로 곁에 있어
숨 소리로 소통 할 수 있어도
내 마음에 유리 벽 하나 가려져 있어
그대는 먼 곳 사람이었지요
가을 꽃이 아침에 우는 이유
김 익 택
꽃이 아침에 우는 이유는
이슬이 차가워서 아니고
서리가 차가워서 아니다
환한 빛이 반가워서 울고
어둠 밤이 무서워서 울고
예쁘게 피어도 몰라주고
짙은 향기를 피워도 몰라주는
무관심 때문이다
달 없는 밤은
잎 뒤에 나비가 두려워서 떨고
달 밝은 밤은
여치가 가지에 앉아 울어 더 외로웠다
무심한 비바람은 심술쟁이 나그네
적막한 정적은 비밀스러운 언어 방해자
사랑은 외로운 기다림 끝에 얻은 결실
세상에 저절로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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