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루
김 익택
조용히 눈 감고
마음으로 경치를 보면
밀양강 흐른 물은
시 문장이 흘러가고
추화산 바람은
대금소리로 들릴까
입추로 치닫는
마지막 더위가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심경루 뜰에 핀 백일홍은
옛 그분 가슴 마냥
아람드리 더 붉은데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밀양강 옥수는
고향이 그리운 듯 뒤돌아보는데
해를 가린 구름이
마련두자 말고
어서 가라 등 때밀고 있다
밀양의 정신문화
김익택
사람 태어나 죽을 때까지
나와 싸워 깨달은
인간 도의 무엇이며
자연 이치 무엇일까
곧은 정치 펼치다
낙향하여
강 언덕과 계곡에서
후학 양성했던
점필재님부터 삼우당님까지
그 분들의 혼
정신철학
비밀스런 빛이 되어서
높고 깊은 계곡
생명수가 되고
한국정신문화 뿌리가 되어
낙동강으로 흐르고
태평양으로 흘러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났네
김 익 택
무슨 이유가 있었던가요
별다른 의미가 있었던가요
그냥
기쁠 때 부르고 신 날 때 부르고
슬플 때 부르고 외로울 때 부르고
일하면 서 부르고 지루할 때 불렀지요
나를 몰라주는 마음의 병은
내가 나를 위로하며 부르고
한탄 같고 원망 같아도
부르고 나면 희망이 되는 노래
너도 갖고 살고 나도 갖고 사는
질곡의 삶 삭혔던 이야기
혼자 불러도 좋고
함께 부르면 더 좋은 노래
아픔과 슬픔 이겨낸 삶이라면
지구촌 구석구석 삶들에게
의심없이 위로가 울림이 되었지요
우리노래 아리랑은
김 익 택
언제 누가 어디서 불렀는지 모릅니다
산골에서 할머니가 밭 메면서 부르고
온 종일 일하느라 돌보지 못한 아이 엄마
울다 지쳐 딸꾹질하는 아이 다독이며 부르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 밖에 모르는 아버지
신세타령하며 불렀지요
듣고 들어도 귀찮지 않고 싫증나지 않는
절대적 삶 위로의 노래
음정 박자 가사 마음 가는 대로
내 아픔과 슬픔 곡조에 실어
부르면 한과 원이 화합하여 해소되는
삶의 노래 아리랑은
이 세상에 다시없는 절대음향 절대음색의
카타르시스입니다
노래는 있어도 작곡자는 없습니다
가사는 있어도 작사자는 없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부르면 위로가 되고
들으면 위안이 되지요
내 삶의 얘기 너 삶의 얘기
곡조에 앉혀 놓으면
또 한편의 아리랑이 됩니다
이별과 만남
사랑과 증오가 인생의 반복이 듯
단순하고 단조로운 곡에
반복되는 후렴 평범한 가사
한번 부르면 나를 풀고
두번 부르면 너를 풀어버리는
나와 나의 노래입니다
아리랑 아라랑 아라리요
이세상에
이보다 쉽고 자연스러운 노래 있었던가요
이보다 아름답고 심오한 노래 있었던가요
쌓이면 병이 되고 악이 되는
미움 아픔 그리움 괴로움 외로움을
한번 부르면 수용하게 되고
두번 부르면 포용하게 되고
세번 부르면 용해하게 되고
네번 부르면 융용하게 되는
아리랑
이 애조의 노래는
빛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어 양심을 회복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사는
한(恨) 원(怨) 정(情) 애(愛)
화합하고 용서하는 길라잡이
삶을 치유하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손조서(孫肇瑞,1412~1473)는 조선전기 지봉산군사, 병조좌랑, 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일직(一直)이고 자는 인보(引甫), 호는 면재(勉齋)·격재(格齋)이며,
학문과 시문의 대가로서 김종직(金宗直)과 친교가 있었고,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의 제자를 두었습니다.
1432년(세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435년(세종 17)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 하였으며,
그 해 예문관검열을 거쳐 집현전에 보직되었으며 지봉산군사(知鳳山郡事)가 되었고,
1451년(문종 1)에 병조정랑을 지냈으며,
1456년(세조 2)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성삼문(成三問) 등이 살해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둔 하였는데 호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으며,
사후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과 밀양 혜산서원에 제향 되었고,
저서로는 "격재집(格齋集)"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