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빛과 향기는
김 익 택
아
저렇게 곱게 물든 꽃무릇은 여인의 미소인가
예뻐서 만져보고 싶고 아쉬워서 뒤돌아봐 진다
아
저렇게 저리도록 붉은 단풍은 님의 맘인가
그저 가만 보고 있어도 가슴 시리고 아프다
아
저렇게 그윽한 열매 사과 향기는 농부의 다정인가
쏜살같이 달려가는 차 실내가 방향제보다 향기롭다
꽃무릇의 자비
김 익 택
이른 아침
붉은 햇살
한 몸에 받고 피는
꽃무릇은
부처님 자비인가
그 붉은 빛
가만히 바라보는
몇 초사이
불교를 모르는
내가 나도 모르게
울컥해 진다
이 가을에 나는 - 2
김 익 택
그 옛날 초가지붕에
하얀 박꽃
달 보고 피고
국화향기 날리는
평상에 앉아서
웃음이 깊어
울음으로도
속 시원치 않는
나 같은 소녀와
별이 깊도록 나누었던
그 날로 돌아가
잃어버린 지난 날
꿈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살아 있는 동안에
김 익 택
귀 막고 있다고
소문 안 들리는 것 아니듯
내 행동
내 양심
시간이 보고 있고
공간이 보고 있다
눈감고 있다고 죽은 것 아니듯
내 마음
내 생각
땅이 알고 있고
하늘이 알고 있다
이 가을에 오신 손님이게
김 익 택
이 가을에 오신 손님에게 나는
첫 수확한 마음으로
따뜻한 배려와 정성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다
이 가을에 오신 손님에게 나는
시원한 배같이 상큼한 사과같이
말과 웃음으로 별맛나는 벗이 되고 싶다
이 가을에 오신 손님에게 나는
청명한 하늘같이 시원한 바람같이
감출 것 없는 투명한 벗이 되고 싶다
시 간
김 익 택
울고 있어도 가고
웃고 있어도 가고
가만 있어도 가고
잠자지 않아도 가고
잠들어도 가고
죽어도 갑니다
단 한번 뒤돌아 보지 않고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이
꽃무릇의 미소
김 익 택
곧은 외줄기 그 끝에
활짝 편 꽃술은
고운 여인 속눈섭같이
활짝 웃는
초동 아이 웃음소리같이
모자라는 사람
불편한 심기
활짝 웃게 합니다
어디 어느 곳으로 사라졌을까
김 익 택
황금들판
제집이며 삶터였던
벼 메뚜기 어디로 가고
미꾸라지 어디로 갔을까
맑게 울던 귀뚜라미 어디로 가고
청아하게 울던 맹꽁이 어디로 갔을까
공룡 같은 공장 건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빌딩
딱딱하게 굳은 포장도로에게
삶터 빼앗기고
어디 어느 곳으로 갔을까
아름다운 길
김 익 택
저기 멀리 보이지 않는
그 너머는 어떤 곳일까
생각이 꿈을 만들고
궁금증이 얘기를 만들어
나를 더 자극하던 어린 시절
가보지 못한 곳의
그리움의 끝은
무한한 상상이 보상을 해주었고
가보지 못한 곳 동경의 끝
막연한 그리움은
꿈의 목적지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가보지 못한 곳은
상상의 나래는
늘 아름답고 순수한
환상의 판도라 상자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산 너머의 고갯길
비포장 신작로 먼지 너머 꼬부랑길
하얀 그림자 남기고 사라지는 비행기
보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기차소리
얘기만 들은
넓은 바다를 건너가는 무역선
가보지 못한
그 너머의 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게 더 아름답게
생각이 길을 다듬고 가꾸어서
꽃이 피고
천사 같은 사람과
천국으로 가는 길을 꿈을 꿨다
기다림의 미학
김 익 택
바람을 기다려 본적 있습니까
구름을 기다려 본적 있습니까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입니다
저기 골목
저기 쇼윈도어에서
커피 삽 문이 삐거덕 거릴 때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분명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만나려 온다는 것은
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약속 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만나지 못해 더 그리워도
내일 희망이 있기에
오늘 아픔은 아름다운 기다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