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편지
김 익 택
구월에 편지는 꽃잎에 쓰고
시월에 편지는 단풍 잎에 쓰고
십일월에 편지는 낙엽에 써야 한다
그 이유는
인내의 믿음
구월에 편지는
아픔과 즐거움이 한데 어우러져
빨갛게 익어가는 과정이라서
푸른 잎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읽을 수 있다
시월의 편지는
내가 봄 여름
겪어 오는 동안
빨간 마음 파란 마음이
바람에 익는 것은 것이라
눈시울을 붉혀야 읽을 수 있다
십일월의 편지는
참으면서 익고
아프면서 익은 것이라
가슴으로 읽어야 느낄 수 있고
가슴으로 받아드려야 읽을 수 있다
외로울 때 눈이 머무는 곳은 모두 슬픔이다
김익 택
외로울 때 홀로 강 둑에 앉아 있으면
저 멀리 강 건너 산을 보면 하는 생각나는 것들
산은 욕심이 없어서
부도 모르고 가난도 모르겠지
희망도 모르고 절망도 없겠지
산은 감정이 없어서
외로움 슬픔 그리움 없겠지
산은 움직일 수 없어서
누가 더 높고 낮은지 계곡이 깊고 얇은지
진실 거짓 단어 모르고 아픔 사랑 같은 것 모르겠지
경쟁 같은 것 없고 욕심 같은 것 없겠지
저 마을에 사는 사람들 모두 행복할까
무슨 고민 있어 나처럼 외로울까
미루나무 반짝이는 논둑 너머
푸른 들에 저 허수아비가 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허리 굽은 할머니 밭으로 일 나가는 모습
발 밑 눈 언저리 수양버들과 갈대와 쑥과 씀바귀와 박주가리와 고마리와
이름 모를 수초들
흐르는지 고여있는지 모를 숨죽인 강물이 팔짱을 끼고
녹음이 짙은 저 강물 수초 속 어딘가 있을 고기들 마음
나름대로 읽는 동안
슬픔이란 슬픔 모두 끌어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풍경도
돌아 앉으면 제정신이었다가 재발 하는 정신병 환자
염치도 없이 계속되는 딸꾹질이 현실을 자각 시킬 때
부풀어 오른 눈꺼풀이 따갑고
좁은 등이 부끄럽고 삶이 귀찮고 슬프고 외롭고
그런 시련 그런 외로움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그곳이 강 둑이던 공원 벤치이던 산이던 빌딩 옥상이던
자살 바위 절벽이던 아파트 베란다 끝 가이드 레일이던
외로울 때 눈이 머무는 곳 모두 슬픔임을 안다
어제같이 짧은 과거는 벙어리처럼 묻어둘 수 있지만
미래가 과거가 되기까지 희망은 마음이 한밤중일 때 꺾이는 삶
저기 검은 그림자 속에서 귀신이 덮칠 것 같고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수렁 속 아니면
블랙 홀 속에 빨려 들 것 같은 바위 속에 박제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나를 보고 있는 거울 뒤에 무엇이 불쑥 나타나 삼킬 것 같은
잠들지 않으면 밤과 낮이 똑 같이 두렵다는 사실
철저히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은 알지
가을 나비떼
김 익 택
고요 속에 바람 불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오색 나비 떼는
내가 사라져야 네가 사는 삶이다
이 모퉁이 저 모퉁이
쌓여 썩는 동안
삶의 끝자락에도
새 생명이 알을 깨고 나오고
새싹이 돋는 탄생 처
죽어도 죽음 아니다
가야 하는 길은
그림자도 벗어 놓고 가지만
가을 나비 떼가 가는 길은
사라져도 남는
아름다운 뒤안길이다
도시 밤의 가을 소리
김 익택
아파트 문을 열고
눈뜨고 살펴도
밤 이슬을 머금은
훤한 박꽃에
여치 노래 소리
들을 수 없습니다
들려오는 소리라곤
느닷없이 울려 대는
경적 소리와
아스팔트가 찢어지는
자동차 바퀴 소리 뿐입니다
도시의 밤
사람 소리는
기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시간을 잊고 싶어
소주잔에 하루를 푸는
노래 소리 아니면
지하 노래방에서
목청을 찢어지는 소리 뿐
기울어진 토담에
늙은 호박에 앉아 우는
검은 귀뚜라미
소리 없는 곳에
온갖 전파가 가득하고
반딧불이 없는 곳에
네온의 불빛이 찬란하고
달콤한 전자음 가득한 곳에
술 취한 남녀
고함 소리만 가득합니다
낙엽의 의미
김 익 택
1
코트 깃을 세우며 걷는 연인
두 어깨 사이로 바람이 분다
이리저리 몰려 다니는 은행잎
바람이 신분 귀천 따지지 않지만
노인에게는 쓸쓸한 것이
젊은 연인에게는 낭만이 된다
2
단 한번도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
낙엽은 마지막 순간에 음악을 즐길 줄 안다
봄 날에는 노란 나비가 춤추며 날아가듯
한 여름 윈드서핑 하듯 겨울 스키를 타듯
바람을 탈 줄 알고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다
3
나무가 옷을 벗어 줄 아는 것은
시린 가슴이 견딜 줄 안다는 것
내년에 피는 꽃 향기 더욱 짖고
더욱 푸른 잎 피우기 위한 준비이다
4
저 연인들 가슴에 노란 꿈을 심었다면
내년에 노란 아기가 이 거리를 활보 할 터
사랑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
제 생명을 던짐으로 태어나는 희망의 연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