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설중매
김 익 택
어디 사는
어느 분이
얼마나 보고파서
얼마나 사랑했길래
산도 우고
강도 울고
나무도 울고
바람도 우는
엄동설한에
모진 눈보라
머리에 이고
눈물 뚝뚝 흘리며
피는 것일까
그 꽃 매화
김 익 택
그 꽃을 처음
본 날은 아주 잠깐!
그냥 스쳐가는 색이었을 뿐
아무 의미 없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자꾸 보다 보니
그 꽃의 의미
바위에 아로새긴
비문같이 또렷했습니다
백 년 세월에
남은 것은
지탱하기 어려운
썩은 몸통아리 껍데기뿐
삶이 의아했습니다
그래도 그 꽃은
살을 에는 강추위에
홀로 활짝 피어서
흩뿌리는 은은한
빛과 향기는 삶의 의미
필요충분했습니다
무엇인가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
가슴이 허락하지 않듯
그 꽃은 내게
우연 보다 인연
인연 보다 필연
필연 보다 천연같이
안녕이라는 말
뇌리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 그 꽃은 날마다
내 가슴에 필뿐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매화의 의
김 익 택
썩고 뒤틀린
네 몸을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지
그래도
기어코 피고 마는 걸 보면
그대는
아집과 시기와 모함
그 한가운데
정의를 의심하지 않은 것이지
하물며
사람이 가져야 할 도의
사람이 지켜야 할 의를
저버린 것이 그대만 못해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지와 예
벗으로 여긴 것이지
매화가 웃으니 사람이 웃는다
김 익 택
매화가 웃으니
사람이 웃고
사람이 웃으니
매화가 웃는다
그대 매화 속에
있으니
꽃이 사람이고
사람이 꽃이다
아픔 이겨내고
어렵게 피었어도
꽃의 의무
소흘하지 않으니
그것 또한 서로
닮았다 아니할 수 없으리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피었어도
꽃과 향기
그 옛날 어느 선비
인품처럼 고결해
눈 가진 삶들은
고마움 잃지 않고
코 가진 삶들은
진솔한 인사 잊지 않고
감사의 말
아니 할 수 없는 것이지
나도 고 매화처럼
김 익 택
저 매화나무
나이 백년
삶의 한계라 했던가
몸이 썩어
속이 텅 비어도
피는 꽃은
젊은 나무 보다 더
향기롭고 싱싱하다
나도 저처럼
마지막 그날까지
나를 아는
그들 가슴에
아름답고
향기로울 있을까
새벽 매화
김 익 택
첫 날밤 새아씨
새벽 방문 여는 모습같이
강 추위에도
생기 돋는 연분홍 향기
풋풋해서 싱그럽고
수줍어서 아름답다
통도사 홍매화가 말하다
김 익 택
언제 그랬더냐
봄은 추위 속에 숨어서 온다고
통도사 홍매화
세밑에 그 대답을 하고 있다
추위에 더 붉고
바람 불면 더 싱싱한 모습
애처롭다 못해 처절하다
그 모습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가씨에게
매화가 살랑살랑 고개를 흔든다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요
아가씨 감기 조심하세요
나 걱정일랑 하지 말고
몇 일 뒤 따뜻한 날 다시 오세요
잊지 않고 활짝 웃으면 맞겠습니다
통도사 홍매화 첫 꽃망울
김 익 택
가지 끝에
피 멍 같이
붉게 맺힌 꽃망울
칼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다
발 없는 향 천리
종종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사람들
꽃망울 하나
향기 한줌
고승의 법문을 듣고 있는 듯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매화 너만 같았으면
김 익 택
나 나중에
나이 먹어
온 몸
생활구실 못해도
나 너처럼
밝은 빛
맑은 향기 피울 수 있을까
나를 아는
그들에게
나 너처럼
나 밖에 없는
정 하나의
싱싱한 그리움
혼 하나의
향기로운 사랑
남을 수 있을까
추위 속에 피는 매화는
김 익 택
바람이 떨고 있는가
매화가 떨고 있는가
2월에 매화꽃은
꽃이 바람을 유혹했던가
바람이 꽃을 유혹했던가
2월의 매화 향기는
그 누구의 탓 아닌 아픔을
매화는 바람을
바람은 매화를
어쩌면
서로 위로하며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통도사 홍매화는 -2
김 익 택
통도사 홍매화는
좋아도 웃고
싫어도 활짝 웃는
미소 천사인가
관음의 미소인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 않는
고고한 빛으로
오는 사람 마다 않고
많지도 않고
모자라지 않는
빛과 향기는
무심히 돌아서는
나그네 발길을
돌려세운다
통도사 홍매화는 -1
김 익 택
통도사 홍매화는
내 안의 참았던 우울
매몰찬 바람에 터져버린 피 멍인가
내 안의 격한 감동 참다 못해
때이른 춘풍에 저도 몰래 터뜨린
어줍잖은 미소인가
마구 터뜨린 꽃망울 하나
한 살 더 먹고 싶어 잠 못 이루는
세밑의 철없는 아이같이
북 녘 칼 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통도사 홍매화 너는 어디서 왔는가
김 익 택
세상천지 흑백 추위밖에 없는 계절에
맑고 밝게 피어서
은은한 향기로 사람을 부르는
너는 어디서 왔느냐
사방천지 흑백 바람밖에 없는 계절에
고귀한 분홍빛으로
뭇사람 움츠렸던 가슴에
허심을 묻고 양심을 묻는
너는 또 어디서 왔느냐
세상의 삶이란 삶 꽁꽁 어는 계절에
눈 코 귀 입을 하나로
보는 이 누군들 절로 감탄케 하고
아팠던 삶 환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너는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
홍매 전생에 너는
김 익 택
전생에 너는
아마도
지독하게 사람들을 무시했으리라
아니면 평생 그리움에 지친
그 무엇 이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서릿발 추위에
보는 사람사람
입술이 떨리도록 붉어서
코끝이 찡하도록 향기로운
그리움을 드리우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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