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

김익택

 

 

깎아지른 절벽에서 앉아 있는 모습은

도 닦는 듯

 

신인가 귀신인가

큰 날개 펴고 바람을 가르고 날라도

바람 소리조차 없는 비행은

스텔스기가 그만할까

 

두 눈을 부릅뜨고 숲을 스캔하면

레이다가 그만할까

눈을 감으면 편안하고 너그러운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

 

밤공기를 가르는 굵고 깊은 소리는

야행 삶들 심장을 떨게 하고도 남는다

 

짧은 생각 긴 인연

김익택

 

 

 

모든 걸 버렸다고 생각하고

잊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잊고 살았죠

새로운 삶 새로운 생각으로 열심히 살았죠

성공 목표 아래

아픔은 개혁이었고 눈물은 개발

사랑은 사치 자존심은 허상

냉정한 이성 하나로

가마꾼이 될지라도 꽃가마는 없다

그런데 내 가마에

그 사람이 탔습니다

어디로 가시죠

가정법원으로요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습니다

은근슬쩍 룸미러를 보았죠

파리한 얼굴은 창밖을 보고 있었지요

이 사람 정말 나를 모르는 걸까

난 첫눈에 알아봤는데 정말 모를까

그 사람은 가정법원에서 내렸고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죠

뒤에 경음기 소리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래

남인데 내가 왜 이렇지

운전대를 잡은 손이 떨렸습니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건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보입니다

오늘 보정이 법원

맞습니다 보정이 아이 때문에

아이요

보정이가 말하지 말라했지만

그 아이 정보씨 아이입니다

나는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대낮 수리 부엉이 모습

김익택

 

 

얼음장이 우는 한겨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복슬복슬한 털 날개는 펼치면 2미터

바람 소리도 울고 갈 만큼 정숙한 비행

 

토끼 머리를 으스러질 만큼

강력한 갈고리발톱

한번 쪼면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낚시 부리

이백칠십도 회전은 하는 목

어둠을 대낮같이 투시하는 시력

잠을 자도 쫑긋 이 솟은 두 귀로

사방 소리를 감지하는 청력

 

꼼작도 하지 않고 펑퍼짐히 앉은 모습이

너무나 어둔하고 보이고 편안하게 보여

정말 고양이를 채고 뱀을 잡아먹는

맹금류가 맞는가 싶다

잠 안 오는 밤에

김익택

 

 

 

시계에 금줄을 매달았다

아이가 우는 대신

타닥타닥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허공에서 달렸다

대가 끊어져도 비석에 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들 씨앗 하나 만들고 싶었다

읽어야 본색이 드러나는

마음의 길을 글이 안내해 주기를 바라면서

단단한 뇌 조직을 단련하기 위해

미적분을 생각했다

숫자를 빌려오고 기호를 바꾸고

한 치 오차도 없는 답을 구하기 위해

의제도 없고 주제도 없이

비문증과 이명이 뇌리에서 핵분열을 했다

눈감아도 어둡고 눈을 떠도 어두운데

가슴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

뇌리는 죄 충 우둘 설치고 다녔다

씨앗은 간곳없었다

소주 한 잔의 위로

김익택

 

 

 

찌릿하게 목줄을 훑고 내려가는

일그러진 얼굴과

터져 나오는 소리

따가운 맛

 

그래 안다

무슨 말인지 잘 안된다

 

잊으려고 감추려고 해도

더 빳빳이

고개 치켜드는

내 안의 혁명과 타협이

마음같지 않다는 것을

한 잔의 원두커피

김익택

 

 

 

눈과 눈 말 사이에 모락모락 피는 향기

사랑도 너만큼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면

 

예의를 갖춘 붉은 입술 은은한 미소에도

하고 싶은 말 많아도 하지 못해 안절부절

 

부담 없고 후회 없는 사유가 있었으면

어디서 언제 만나도 낯설지 않은 너의 향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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