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향한 선비 마음
김익택
희망 없는 그 시절에도 삶은 희망이라고
벼슬 버리고 내려온 고향
땅을 파서 연지 만들고 집을 지어 정자 만들어
내 안의 지식으로 제자를 가르치고
희망을 품었다
배워야 가르칠 수 있고 알아야 면장도 할 수 있는 법
아이를 낳는다고 다 같은 아비가 아니고
농사를 짓는다 하여 다 같은 농군 아니라고
인의예지 삶의 그 근본을 가르쳤다


















정자를 품고 연지를 품은 그 집
김익택
꽃이 피고 철새가 알을 낳고
매미가 울고 열매가 여물어
북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서리가 재촉하는 날갯짓이 바쁜데
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보름달이
입을 다물었다
사과가 익은 뒤 감이 익어가고
덩그러니 빈 까치 집은
올해도 여전한데
방문 앞 귀뚜라미 소리
어느 님 한 품은 듯 구성진데
작은 집 작은 연지가 조용히 세상을 품었다



서고정사에서 01
김익택
삶이 아무리 풍부해도
지키려는 사람과
복원하려는 자연의 힘에
밀려난 모습은
온고지신이 아쉬운데
오래전 그분의 뜻
마음 같지 않는 시류를 자식이 먼저 알아
젊은 사람 모두 도시로 떠나고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노부부 서고정사 마루를
허리 굽혀 닦는 모습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보고 있는 나그네 눈에 선하다




서고정사에서 02
김익택
담도 집도 허물어가는 세월에도
벽에 걸린 검은 현판에 하얀 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떠듬떠듬 아는 한자 있어도
전체 해석은 당달봉사
빽빽한 한자가 무식 그 이상으로
어림짐작이 겸연쩍고 부끄럽다



서고정사에서 03
김익택
생명수 졸졸 흐르는 연지에
푸른 연잎이 파릇파릇하다
그 옛날 그분은 여기 앉아
연지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천 수만 번 반복해도 끊이지 않는
죽고 죽이는 당파싸움
권력 술래잡기는
학문 명예 지식 지혜도 예외다
당파 싸움에 환멸을 느껴
낙향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나라 걱정
2025년 6월 3일 대통령 산거 앞두고
권력 싸움이 연지에 꽂혀 정신이 몽롱하다



인생은 삶의 변수
김익택
평생 그 자리에서
서서 사는 나무도
바람에 흔들리듯
배워서 알고 겪어서 아는
삶의 진리는
어느 한 곳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의 삶들 모두
흔들리며 살고
흔들림을 배우고 산다



그것이 인생
김익택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지
죽을 것 같은 고비도
지나고 나면 모두 다 아름다운 선물
평생 엑스엑스트라 인생같지만
짧지만 주인공일 때도 있었지
가지면 모두 다 내 세상같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 또한 삶의 시험
나누고 베풀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
아웅다웅 사는 것이 인생
그것 알기까지 육십 년
다시 태어나면
아쉬워할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이
정말 멋지게 살 것 같지만
그것 또한 변명 아닐까 싶다



시간이 가르쳐주는 삶의 교훈
김익택
시간은
내 몸이 잊음과 기억을 반복하는 사이에도
지치지 않고 왕성했다
물어도 대답 없고 묻지 않는
시간은
없는 듯 고요한
한때 휴식이었고
파멸할 듯 왕성한 활동은 운동이었다
그리고 죽음 없는 삶은
죽음을 생각하게 했고
생각 없는 것이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시간은
끊임없는 반복하고
끊임없는 새로운 교육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