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향교에서

김익택

 

 

공자 맹자 퇴계 이이

역사책에서 귀가 닳도록 배웠고

 

통도사 석남사 작천정 반구대

익히 알고 구경 다녔지만

지나쳐도 모르거나 관심조차 없었던

언양향교

듣기는 들었어도 관심 없었다

 

왜 그랬을까

 

삶의 의미를 두자면

오백년 도덕과 예의범절 삶의 기초

지식 지혜 교육장으로는

그만한 정신문화 없었다

 

반세기 지나 처음 가 본 언양향교

투철한 삶의 아픔 평온해 보이고

중용 대학 읽고 외우던 소리 들리지 않아도

유월의 더위 적막에

내 양심의 거울엔 하얀 김이 서린다

도심속의 허파 언양향교

김익택

 

인의예지 유학정치 오백년

평민 이하 삶들에겐

가깝고도 먼 삶의 나침반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곳 아니었죠

 

세월에 장사 없듯

서양 문물과 산업에

정치가 바뀌고 삶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정신 뿌리이지만

퇴물 아닌 퇴물 취급

 

관심있는 사람만 배우고

전통을 이어가는

경전반 문인화반 서예반

다례반 사서반의 취미 교육기관

 

그래도 아직까지

도심속의 허파가 되어

고향 찾는 사람 반기는

옛 친구처럼

짙은 향수를 지피고 있다

명륜당에서 멋쩍은 상상

김익택

 

 

저 명륜당에서

글을 읽던

도련님은 바라던 꿈

이루었을까

 

짚신 걸망에 달고

과거시험 보러

한양으로 떠났던

서방님은

장원급제했을까

 

상투 머리 갓 쓰고

동제 서제 들락거렸던

내상상의 이미지가

겨울을 가로질러 봄을 향한다

 

시대의 변천에도

나를 밝히는 듯

고고하게 서 있는 기와집에

봄볕이 따사롭다

이 땅의 유학의 가르침은

김익택

 

 

세월에 바람 들어

삶이 변해도

배우고 익히는 즐거운

인의예지

정신문화가 녹이 쓰는 가

 

조금은 잊어가고

잊혀질지라도

결국 되찾게 되는 것은

인간의 근본 도리

그것 잃으면 사람이어도

사람 아니기 때문인데

 

인류가 존재하고

도리가 존중되는 동안은

공자의 가르침은

시대의 유행 아니라

빛이며 공기이며 물이다

삶을 잃어버린 향교

김익택

 

 

무관심을 묻는 양심이

기와지붕에 머물렀다

 

배워야 알고 익혀야 아는

지식 아니라

내가 가지지 못한

부와 권위의 상징 존경은

한때 시대의 모럴이었다

 

그 교육문화의 중심지가

추락하고 나면

남는 것은 향수 뿐

찾지 않는 향교는

지키지 못한 전통같이 외롭다

 

발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있는 듯

유월 고 폐가의 풍경

김익택

 

 

삼백년 세월

풍상에 자린고비가

두 눈을 부릅뜬 채

말라가는 갈비뼈에

유월의 잡초가

제 세상을 만났다

그 잡초에 새가 노래하고

집지킴이 능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새집을 찾는다

천년만년 삶의 교훈을 삼은

검은 현판 하얀 글씨

세심정은

거미줄에 눈을 뜨지못하고

오목눈이 집에 탁란한

두견이가 구성지게 울고 있다

 

사원과 서원 뜰에 피는 목백일홍

김익택

 

 

태풍 아니면 바람도 적막한 7월

독경소리에 피고

글 읽은 소리에 피어

다 못한 진실을

진리를 표방하려는가

생명 있는 삶

모두 회피하는 삼복더위에

붉은 심장같이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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