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김익근
김 익 택
일제시대 한 가운데 태어나서
6.25를 거쳐 근대산업시대까지
작은 아버지는
동 트기 전 새벽부터
해 저문 저녁까지
평생 힘든 육체 노동으로 사셨지요
온몸 파 김치가 되도록 일을 해야 했고
주린 배를 움켜 잡고 일을 해야 했던 작은아버지는
술 힘으로 일하셨고
술 힘으로 아픔을 참았습니다
그래도 아들 하나 만이라도 공부 시키기 위해
정든 고향 내와리에서 울산으로 이사 나와
아픈 몸 이끌고 갖은 고생하며
그 시대 부모 표본으로 사셨지요
노년에는 간경화 다리 관절 위궤양
너무 아파
술이 아니면 견딜 수가 없었지요
아부지 술 적게 잡 숩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는
아들 딸 만류에도
작은 아버지는 끝내 술을 끊지 못하셨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을 지경이 되었지요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아들 근이는
간경화에 좋고 관절에 좋다는 병원을 찾아 다니며 치료하고
몸에 좋다는 보약 끊이지 않고 사드렸지요
하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버려서
길에서 도로에서 널브러져 있기 다반사
그때마다 근이는
한마디 군소리 하지 않고
아버지를 등에 업고 어르며 그르면 집에 모셔 놓고
직장에 가기를 매번…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극진하게 모셨지요
그 소문이 한 집 건너 이웃 그리고 먼 친척들까지
근이 효도는 온 집안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달마다 아버지가 마신 빈 소주병이 한 리어카 되었다고 하였던가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
시묘살이 아니어도
주말마다 산소를 찾아 풀을 뽑고 돌 본지 5년,
그리고 지금까지
그 마음과 행동 변함이 없습니다
작은 아버지의 술
김 익 택
평생을 술로 사셨던 작은 아버지는
술 한잔에 행복했고
술 한잔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술이 목줄을 타고 술술 잘도 넘어가던 청춘부터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밥보다 술을 사랑했고 술을 믿음처럼 마셨지요
술을 밥처럼 좋아했고 술을 원수처럼 마셨지요
그만 마시세요 건강 나빠져요
아내와 자식들이
삼시새끼 밥상 머리 미움 털 박힌 말을
듣지 않는 고집은
끝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아픈 삶을 살았습니다
늘 푸른 얼굴이
간장 독에 비친 까만 얼굴 되기까지
참된 청춘 행복은 안개 밭이 되었고
말랑말랑했던 붉은 간
구멍이 숭숭 뚫린 검게 굳어버린 현무암이 되어도
여전히 술 없이 살 수가 없었지요
작은아버지 흙으로 돌아가신 뒤
그곳에서도 소주는 있는지요
천덕꾸러기 삶 아니 될까
효자 자식들은 걱정 아닌 걱정입니다
제사 때나 명절 때 맛있게 드시라고
올리는 맑은 청주 한잔
마음의 행로가 망설여 지기도 한답니다
저기 반야심경 병풍의 글
색즉시공 공즉시색 흐린 초서가
작은 아버지의 하얀 두루마기에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얼룩져 보입니다
람보 근이 아우 있으면
김 익 택
형 동생
형수님 제수씨
아무리 가까운
종 형제 일지라도
오랜만에 만나면 타인같이
서먹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근이 아우 있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고
너무 웃어서 벅찬 가슴 주체하지 못해
때굴때굴 굴러야 속이 편해 집니다
어른 알고 아이 알고
사라져가는 전통
지켜야 할 도의 예의
근면성실 모범은 내 가족부터 실천하는
우리 집안의 꽃입니다
경순왕 38대손
가운데 돌림
그리고 누님 여동생들
우리 종형제 모두 40을 넘긴 지금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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