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반추
김 익 택
돌아보면 즐거움도 모자람도 아쉽네요
분명히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꿈만 같네요
눈에 비친 많고 많은 삶들의 모습들이
내가 모르는 어느 그 시절
나를 보았을 어느 늙은 분 마음도 그랬을까
진초록으로 짙어 가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은 연인의 풍경이
빛 바랜 고색창연한 그 시절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대비가
내 부끄러운 설렘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네요
사랑은 생각 하나 더 있어 행복하고
사랑은 가슴 하나 더 있어 아픔도 있어
그럴 때마다
배려와 이해가 있었으면
오해와 실수는 충분한 소통이 있었으면
그들이 아름다운 만큼
좋아한다는 말은
김 익 택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은
어두워도 아름답고 추워도 따뜻했지요
쑥스러움이 묻은 좋아한다 말은
세상의 다시없는 선물
그대 목소리는 말못할 희열로
가슴을 가득 채웠고
새기고 새겨도 모자라고 두고두고 간직 하고픈
비밀 언어는
어느 누가 훔쳐갈까
보이지 않는 마음 깊은 곳 숨겨두었지요
별을 보고 얘기하고
별을 보고 감사하기를 수십 번
그래도 부족해
눈 감아도 보이고 눈을 떠도 보이는
너의 예쁜 얼굴 너의 목소리는
가슴을 다 비워도
가슴을 채워도 모자라는 보고픔
어제 같은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지요
삶의 사고
김 익 택
꽃 길을 걸었어요
코끝을 스미는 향기가 아름다웠습니다
벌이 날아다니고 나비가 날아 다녔지요
겉보기엔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지요
나비 앉은 그곳에 사마귀가 기다리고 있고
벌이 날아드는 그곳에 새들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 사실 알려주려고 다가갔지만
벌 나비는 나를 더 경계하고 멀리 날아가네요
먹고 먹히는 그들에게
철저한 방관자가 되지 못한 나는 월권행위
그것도 아무런 죄의식없이
꽃을 보는 것도 향기를 맡는 것도
그 어떤 책임과 의무를 묻는 것 같아
즐겁고 행복 해 할 일 아니라
꽃 보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늘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꽃과 벌 나비 그리고 새와 사마귀
그들의 삶 앞에 나 역시 먹고사는 순간순간은
내 모르는 희생없이 살 수 없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풍경속에 풍경
김 익 택
딱따구리 나무 뚫는 소리와
목탁소리도 자연이 되는
숲속 호수에서
고기를 잡지 않는 어부
노 젖는 풍경에
과거가 그리운 사람들이
추억 뒤집는다
물새들은 날아가고
물속에서 숨죽인 고기들은 보이지 않지만
꽃 가지를 늘어뜨린 이팝꽃은
수면을 통해 제 기분을 나타냈고
이팝꽃잎을 헤쳐가는 뱃길에
호수가 가쁜 숨을 쉬었다
그래 풍경은 삶이 있어야 풍경이지
놀던 일하던
늙은 나무의 삶의 의미
김 익 택
허리를 펴지 못하는 나무가
고름을 짜내고 살을 도려낸 곳에서
젊은 나무가 피우지 못하는
꽃을 피우고 향기를 퍼뜨렸다
꽃을 쫓고 향기를 쫓는 삶들이
앞 다투어 찾아왔다
늙은 나무의 초대는
나눔도 공평했고 사랑도 공평했다
모든 기회는 선착순
부지런한 삶들의 순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나누어 주는 꿀은 1회성 아니었다
피어서 지는 일주일은
퍼도퍼도 솟아나는 샘물 다름없었다
늙은 나무는
침묵은 있어도 불평불만 없고
삶은 후회는 없었다
내일 죽어도 오늘 꽃을 피웠다
내가 나에게 양심을 묻는다
김 익 택
습관이 생활이 되기까지
게으름은 직행이고
부지런함은 곡선이라
살면서 고치겠다는 말
입버릇 되었어도 못 고쳐
바람이 양심을 묻는다
알면서 모르는 채
싫은 일 회피하고
하기 좋은 일 서둘러 하는
바뀌지 않는 인성
고개를 치켜든다
부끄러움없이 뻔뻔하게
내가 나를 나무라고
내가 나에게 양심을 묻는 일
오늘로 끝났으면
오래된 소나무의 교훈
김 익 택
십년 백년 오백년 사는 동안
허리가 굽어지고 가지가 부러져도
당당한 삶을 보면
믿음은 있어도 미움은 없었으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습 볼 수 없었겠지
아픔은 있어도 후회는 없었으리라
썩어 문드러진 곳에 이끼가 살고
새들이 사는 것을 보면
사랑은 있어도 원한은 없었으리라
살겠다는 인내가 만들어낸 굴곡과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삶이
누가 봐도
절로 고마움을 느껴 고개가 숙여지는
한 폭의 그림이 되고 한편의 시가 되고
예술이 되었으리라
500년 느티나무 테이블
김 익 택
오백년 된 느티나무
나이테가 그려 놓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는
상상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삶의 미학이 철학을 담았다
죽어서 영원히 사는 법은
살아서 죽을 만큼 고통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경지
죽어서도 삶의 진리 알리는
고승의 사리같이
그의 삶 500년은 침묵으로 살아도
수 백 번 죽음의 고비는 있었을터
흙으로 돌라가지 못하고
미학을 쫓는 어느 목수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
소위 재력과 권력 아니면 범접할 수 없는
회의실 테이블이 되어서
보는 사람들의 지혜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미학을 안주로 새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