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 연 미소
김 익 택
초롱초롱한 이슬방울
연분홍 꽃잎에 앉아
방글방글 웃고 있다
살아있어도
죽어있었던
칠 백 년
다시 태어나 숨 쉬는 것은
램프에서 나와 소원 풀리는 날
양탄자 타고 하늘 여행 아니어도
아라가야 그 땅에 피고지는
삶의 영광을 얻었다
행복 그리움 환희
고운 빛 고운 자태
그 옛날 왕비 미소가 그만할까
산다는 것이 신비이며
아름답다는 사실
그대가
몸소 실천한 살아있는 표본
이른 아침
그대 모습
깊숙한 내면에
아픔과 사랑
다소곳이 보여주고 있다
어느 시인의 시집
김 익 택
애 간장이 끓도록
아름다운 것만 사랑이 아니다
실패도 아픔도
끌어 안아 줄줄 알아야 사랑이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고
아이스크림공장 근로자
노동까지 달콤한 것이 아니듯
쓰고 싶은 마음 간절해도
저절로 쓰여지는 시
하나 없다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고 싶을 때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참았던
소리 소리
책 갈피 속의
수많은 물음과 울음
번뇌와 고뇌
그 끝에
얻은 언어들이다
어느 시인은
그 단어 하나 얻기 위해
식음전패하듯
미친 듯이 쓴 것이다
비 오는 어느 날 아픈 추억
김 익 택
퇴근 길
비는 계속 내리고
차창 브러시 아프다고 꺽꺽 거린다
나는 흐릿한 차창 너머로 느닷없이 떠오르는
내 젊은 시절 방황의 한 모퉁이를 생각한다
붙잡지 마라
찾지 마라
집에 들어 오기만 해봐라
다리 몽둥이를 빠 뿔 끼다
채찍같이 따가웠던 아버지의 말 끝
자동차는 공단을 벗어나
번개를 뚫고 천둥과 비바람을 뒤집어쓴 채
공룡 아가리 같은 터널을 진입한다
벼락이 내 머리에 떨어지지 않을까
터널이 무너지면 어쩌지∙∙∙∙∙
죄가 많은 사람의 생각
한 순간 터널을 벗어난 자동차는
마구 쏟아지는 비와 바퀴에서 튕겨 나온 물보라와
가로등 불빛과 전조등 불빛에 엉키고 설키다 무너진다
그 불빛과 물빛이 혼란스럽다 못해 찬란하다
오래 전
우리 아버지 이 땅에 다시 없어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
차량이 질주하고 비가 폭포수처럼 일렬로 떨어지던
울산 신화리 고속도로
삶이 아프다 못해 죽음을 생각했던 곳
서울 홍제동 산허리
목 놓아 밤새도록 울고 싶었던 물속 검은 곳
경주 남천강 기슭
어둡고 칙칙했던 귀신의 소리 요란하던 소나무 숲
부산 연산동 앞 산 이름 모를 묘지
그때도 오늘 밤처럼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고
나는 죽지 못했지
그때 내가 다짐 한 것 하나
나중에
내 새끼는 나 같은 아이 되지 않게 하리라
내 새끼 만큼은·····
허허
나도 몰래 흘러 나오는 쓴 웃음
떨쳐버리고 싶은 맘에 나도 모르게
입술에 달그락거리는
윤항기의 노래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가
나를
참
부끄럽게
한다
비 속에도 길이 있다
김 익 택
연잎 물방울도 길이 있고
검은 아스팔트 마구 튀는 빗방울도
저 혼자가 아닌
어울러야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옛날
우장을 쓴 아버지는 논 물길 보러 가고
동네 사람들 저수지 둑 넘칠까 물길 보러 간다
개천에서
용이
비를 따라 승천하고
하늘에서
미꾸라지도 비를 타고 내려온다
전설에서
현실에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나는
인간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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