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가고
김 익 택
약속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12월은 기꺼이 오듯
이 땅에
발 붙여 사는 삶들에게
한 해의 의미는
양심의 거울
아무도 지난 시간을
묻지 않고
추궁하지 않아도
성적표를 받아 보게 되
올해도 12월은
묵묵히 살고 있는
삶들에게 또
12개월이라는 숙제를
던져 주고 있다
피카소 그림의 퍼포먼스
김 익 택
고기들이 하늘을 날아 다니고
강물이 꺼꾸로 흘러가고 있어
두더지가 공원에서 일광욕을 하고
악어가 땅속에서 여름 잠을 자고 있어
사막이 숲이 되고
정글에서 폭풍이 불어 눈을 떨 수 없어
그곳에서 사람들은 별이 되어
길이 아닌 길을 걸어가고 있어
이유도 없고 목적 없이
욕심도 없고 의지도 없이
생성하는 그리움은
김 익 택
보고픔도
지겨울 때가 있을 터인데
그리움도
귀찮을 때가 있을 터인데
옛 사랑을
회상하는 날은
우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죄책감도 없이
감상에 젖곤 하는데
바람 불어
나무 가지가 울고
낙엽 떨어져
마음이 우울해도
그대는
먼 곳에서 온
귀한 손님
뇌리가 문을 열고
심장이 반갑게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