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티와 해무의 포옹
김 익 택
저 구름은 엘시티 빌딩을 애인으로 착각하는 가
아니면 엘시티 빌딩이 구름을 유혹하는 것일까
지친 마도로스 맞이하는 항구의 포옹하듯 허리를 끌어안고 있다
누가 누구를 착각하고 감동하는 일 그들 뿐일까
410미터 102층 잠자리 겹눈같이 밝히는 불빛
같아도 다른 행복한 삶들 반짝이고 있다
바위틈 소나무가 말하다
김 익 택
희망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지
삭막한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사는
소나무는 말한다
희망이 삶이고 삶이 희망이라고
좀더 아껴 먹기를
구도처럼
좀더 삭여 먹기를
고뇌처럼
삶과 희망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매일 아픈 삶은 비참함이 아니라
하나뿐인 고귀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책임을 다 했을 뿐
내가 나 답게 내가 나를 아름답게 하기 위한 삶이었다고
아름다운 삶이었음을
나에게 너에게도
삶에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해운대 해무
김 익 택
아파도 같은 소리 좋아도 같은 소리
네가 아는 소리는
즐거움도 슬픔도 표정은 하나
울어서 흘린 눈물이 흘러내리면
비가 되고 승천하면 해무가 되는 것인데
달맞이 언덕 끼고
해운대 백사장 마천루 사이에 스며들어
살풀이를 하 듯 한풀이를 하 듯
마천루 사이를 돌고 돌아서
혼처럼 승천하는 해무는
숭고한 자연의 애모
허무하게 사라지는 그냥 자연 아니다
메아리
김 익 택
물어 보았는가
뭐라고 하든가
똑똑히 들었는가
저 바위에 파도는
단 한번도
노래한적 없고
소리친 적 없었다네
건너편 지나갈 때
심심하면 질러보고
궁금해서 질러대는
돼지 목 따는 소리
대답하기 싫고
정말 듣기 싫다고
있는 그대로
되돌려 준 것뿐이네
비 오는 날 밤의 도시
김 익 택
비 오는 날 밤
도시의 거리는 보석이 된다
차량 전조등에 물들은 아스팔트는 흑진주가 되고
네온에 물들은 보도블록은 에메랄드가 되고
비취가 되고 황금이 된다
빌딩 유리창에 찌든 먼지는 안료가 되고
빗방울은 붓이 되어
무아지경 그림을 그리지
흥건히 젖은 도로
무수한 사람들이 사연을 두고 떠난 그 자리
불빛은 또 다른 그림을 수놓고
그들이 밟고 간 담배 꽁초와 비닐 과자봉지에
빛은 양심을 묻는다
어느 한 곳 일정하지 않는 무질서한 길 바닥
불빛은 깨끗하게 정돈된 사물보다 더 아름답게
비가 전하는 말
어둠이 하는 말
바람이 하는 말
도시의 밤 거리는
사람이 하는 말을 숨김없이 비춘다
뭘 해
김 익 택
꽃이 피면 뭘 해
······
만나야 할 사람
상념 속에 잠들어 있다면
천 년을 사모한 마음인들
하룻밤 꿈보다 못한 걸
손 흔들면 뭘 해
······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대를 기억하고 있는 들
먼지 밖의 없는 빈 도로는 차량 바퀴 메아리
차라리 사람 발길 닿지 않는 오지에 있다면
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
사랑한다 하면 뭘 해
······
무덤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고
늙음이 젊어져서 아이가 되고
그런 세상 아니고는 오늘 하루도
그냥 하루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 비우기
김 익 택
먹은 것을
자연스럽게 배출하듯
잘 산다는 것은
잘 비워내는 것이다
곡식을 거둬들여
유용하게 잘 쓰고
아이를 낳아 시집 장가
잘 보내고
삶의 끝
먹은 것을 비워내지 못해 결국 죽고 마는
흡혈 진드기가 아니라
삶의 그릇
깨뜨리지 말고
후손이 채우고 또 비우며 잘 사용 할 수 있게
꾸역꾸역 채우는 것 보다
얼마나 깨끗하게 잘 비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태풍전야
김 익 택
하늘의 발자국 소리가
대지를 저벅저벅 걸어가는
우울한 날
지렁이가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
새들은 먹이 원정을 떠나지 않고
배고픈 새끼들은
비 소리에도 노란 주둥아리를 벌리며
굶주림의 한계를 넘나들고 있다
사계는 대낮인데도 어두웠다
내일이면
바람이 지붕에 날개를 달아주고
전신주를 넘어뜨리고
나무 뿌리가 뽑힐지도 모르는데
대지는 고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