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주남지에서
김 익 택
벼 베고 텅 빈 논 바닥에
고개 푹 숙이고
모이 주워 먹기 바쁜 재두루미
찾아오지 않는 것 보다 나을지라도
저러다 사람이 주는 먹이에 길 들까 걱정이다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걸어가는
중년 부부 머리 위
펄럭 거리는 플랜카드 표어
철새들 살리려고 농부들 다 죽인다
사람이 중요한가 철새들이 중요한가
절규에 가까운 그 글 귀가
남의 얘기 같지 않아
잠시 생각에 잠기다 걸어 가는데
하늘을 뒤덮은 오리 떼
꽥꽥거리며 머리 위로 날라가고 있다
주남지 철새들
김 익 택
감히 들어 올 수 없고
사거리를 벗어난
저수지 한가운데
영하 7°C
가슴과 발을
물에 담그고 잠을 자는 철새들
생명을 지키기 위한 행위가
가혹한 형벌 같다
그래도
못 미더운 것일까
경계하는 소리들이
살을 에는
칼 바람 보다 날카롭다
주남지 철새들 - 2
김 익 택
날 저물고 밤바람 찬데
고니 오리
서로서로
생사확인 하는 것일까
그 넓은 주남지가
새소리로 가득하다
저 재두루미
김 익 택
저 두루미
상공 6천미터
영하 10°c
칼 바람 속 2천킬러미터 날아
찾아온 땅
창원 주남지
보이는 것은
황량한 들판과
삭막한 공장건물과 꽁꽁 언 저수지
그곳을 넘나들며 종일토록 잠자지 않으면
뭔가 열심히 쪼고 있다
온 몸 꽁꽁 둘러싼 채
엄마 손잡고 구경 온 아이들은
바리게이트 그 너머
식별 불가능한 거리에서
눈 찡그리며 시베리아서 온 진객 어디냐며
묻는 아이 실망하며 돌아간 뒤
모자라는 먹이 두고
괴성을 지르며
큰 날개 펼치며 부리로 쪼고
뾰족한 발 갈퀴로 할퀴며
싸우는 모습 보고 있으면
옛 시인 어느 분이
고고하다 우아하다 말은
언어도단 같아
그저 처연하기만 하다